비 오는 한강과 입시의 추억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이번 주는 오전에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다 오늘은 비가 퍼붓고 있다.

아침마다 흐리고 시원해 아내와 한강을 나갔는데 달리다 보면 비가 떨어져 중간에 돌아오곤 했다.

어제도 불안한 마음으로 나가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 아내에게 건네주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잠수교에 이르니 소나기가 떨어지기 시작해 처마 있는 벤치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

요 며칠 아내와 비를 맞으며 뛰던걸 생각하면 아주 즐거운 기다림이었다.


어제 큰 딸은 모교인 진선여고에 가서 선생님들을 만나 뵙고 밤늦게 돌아왔다. 대학 동기가 벌써 진선여고

선생님으로 취업해 선생님들과 함께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진학부장 선생님은 고 1 때 담임이셨는데 재밌는 일화를 우리 부부에게 선사해 주셨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 사교육이나 대학을 크게 신경 안 썼는데, 아이가 학급회장이 되어 아내가 학부모 모임을 주최했다. 학교가 대치동이라 대부분 엄마들은 각종 학원과 입시 정보를 꾀고 있어 아내는 학부모 모임을 가면 항상 주눅이 들어 돌아왔다.


전교권 학생 엄마에게 우리 아이는 중앙대 다빈치전형을 넣으면 된다는 말을 듣고 너무 고마워하기도 했다.

학부모 설명회에 갔다 진학부장 선생님이 아내에게 달려와 우리 아이가 서울대를 갈 거라고 말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3등급 중반 내신이던 아이에게는 너무 뜬금없고 황당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딸아이가 나에게 이화여대를 갈거라 했을 때도 나는 아내에게 저렇게 공부를 안 하면서 꿈도 야무지다고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랬던 아이가 3학년이 되어 어느 날 연고대에 수시 접수를 했다고 해서 한번 놀랐고, 수능 전 연대 수시

1차 합격 소식에 우리 부부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런데 수능 시험날 채점을 하더니 네 문제를 틀렸다며 2차 면접을 안 가도 된다고 하여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서울대는 꿈도 꾸지 않아 제2 외국어를

응시도 않으려다 선생님 권유로 아랍어로 시험만 본 덕분이었다. 이런 인연이 그 선생님과 있던 터라

아이는 졸업 후에도 여러 번 찾아뵙고, 우리 부부도 가끔씩 감사 문자를 드리곤 했다.


오늘은 러닝을 나가지 못해 마루에 나와 글을 쓰며 옛 추억에 젖는다.

지금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익숙해져 그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권태로워할 따름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얼마나 내가 행복한 사람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모든 불행은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할 때 찾아온다는 쇼펜하우워의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정답 없는 인생에서 하루하루 감사함을 찾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