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주말에 아내의 중학교 친구 세명의 부부 모임이 있었다.
언제 만나도 편하고 즐거운 모임이었는데 이번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자발적 백수일 때는 오히려 당당하고 누구도 부럽지 않았는데 내 상황이 바뀐 것이다.
취업을 하고 싶은데 못하는 비자발적 백수가 되고 보니 뭔지 모르게 의기소침해졌다.
한 친구는 더 좋은 직장으로 스카우트된 스토리를 말하고, 또 다른 친구는 은행 퇴직하면 연금 받으며
택시 운전 할 거라는 말이 부럽게 느껴졌다. 연금도 없는 중년 백수가 되고 보니 예전처럼 마냥 즐겁지
않았다. 다들 만나면 항상 나보고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다고 부러워했는데, 이번에는 그 말이 왠지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마치 내가 백수임을 한 번 더 확인시키는 것 같았다.
힘든 모임을 마치고 오면서 내 기분을 말하니 아내가 놀란다. 다들 당신을 부러워하는데 왜 그러냐며
당신은 나 없으면 어딜 가도 왕따가 될 것 같다고 한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워낙 소심하고 자격지심이 많아
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면 주눅 들어 피해의식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어딜 가든 내 상태를
살피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힘들어한다.
오늘 오전 모처럼 날씨가 흐리고 덥지 않아 아내와 한강을 나갔다. 한강을 달리고 서울웨이브에서
요거트를 먹고 돌아와 함께 샤워를 했다. 다시 상쾌한 기분이 되어 아내가 준비한 오리김치찌개로 막내와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이런 중년을 보내면서도 내 못난 모습들이 중년의 황금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그나마 글쓰기를 통해 허무해 지려는 시간들에 황금을 입히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