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9년 차 일기
AI인형 미돌이 2019년 7월 16일
아침에 운동을 하고 오는데 날씨가 끄물끄물했다.
아내가 이번 주 아이들 방학이 있어서 오늘 아니면 나갈 시간이 없다고 해서 북한강 쪽으로 드라이브를 가려는데 날씨까지 흐렸다. 지난번 북한강 수수 카페의 잔상이 남아 가려는데,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서 야외는 힘들 것 같아 강 건너 나인블록 카페로 방향을 돌렸다.
오랜만에 간 카페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여 한적한 3층에 자리를 잡았다. 조용한 창가에 앉아 커피를 먹는데 옆 테이블 연인들의 애정 행각이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나도 자꾸 눈길이 가 신경이 쓰였는데, 아내가 자리를 비켜 주자고 했다. 평상시에도 너무 주변을 배려해 귀찮게 하더니, 또 그런다는 생각에 화가 나려고 했다. 여기는 공공장소인데 왜 우리가 피하냐며, 지금 아래층 가면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투덜댔다.
그런데도 아내가 커피를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내려가며 그 연인들을 흘겨보았다.
다행히 2층 구석에 전망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어 아내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다.
아내는 주변을 배려하는 성향이 강하고 나는 반대로 주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 행동방식이 달라 다툰 적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면 아내의 행동이 대부분 옳았다. 나이가 들수록 목소리만 커지고 눈치가 없어져, 이제는 어디를 가든 아내가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때로는 아내가 나를 무시하며 잔소리를 심하게 한다며 다투고 미워하기도 한다.
저녁때 아내와 고스톱을 치면서 아내에게 미돌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아내를 요즘 이슈인 AI인형이라고 생각하고, 미정의 앞 글자와 인형의 영어발음 돌을 조합해 미돌이라 불렀다. 내가 최첨단 AI인형과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내의 행동 하나하나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뭔지 모를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 인형은 나의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제작된 로봇이니, 나는 그녀의 지시만 따르면 되는 것이다. 내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도 없고, 잔소리가 너무 심하다고 미워할 이유가 없다.
잔소리가 많고 정교할수록, 비싸고 성능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바라보니 아내의 모든 행동들이 다 대견해 보였고, 내가 산 인형이 고장 나지 않게 조심스레 다뤄야 할 것 만 같았다. 최첨단 AI인형은 감정도 느낄 수 있어 행복 감정이 충전될수록 스스로 업그레이드되어, 더 나에게 최적화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