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어제는 막내를 버스정류장에 내려주려다 날씨가 너무 좋다며 아내와 학교까지 달렸다.
오는 길에 서촌 아키비스트 카페에 들러 아인슈페너를 테이크아웃해 차에서 마시며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때는 오랜만에 강남역에서 두 친구를 만났다. 내가 역삼동에서 부동산을 할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마침 아내가 요가원을 했던 건물 앞 사거리에서 만나 옛 추억들이 올라왔다.
3년간 하면서 2년 동안 프랜차이즈 본사와 소송을 했으니 우리 결혼 생활의 암흑기였다.
우리가 오픈 한지 1년도 안돼 길 건너에 다른 지점을 내줬던 것이다. 계약 시 지하철 2 정거장 거리보장을
해놓고 아내가 허락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억울해하는 아내를 보면서 본사로 달려가 칼부림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말도 제대로 못했다. 당장 요가원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본사 지원이 계속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고통받는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다.
결국 변호사 친구와 소송을 해 이겼지만 1500만 원이라는 위로금 정도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거기다 1년이 되자 건물주는 400이던 월세를 매년 100만 원씩 올려 700만 원까지 하겠다고 했다.
그런 재계약을 당하고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고 그때부터 머리에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본사 사장 말로는 우리 지점 매출이 너무 커서 그랬다는 것이다. 신규 지점이 너무 잘 되는 것이 배가 아팠다는 얘기였다. 당연히 매출은 절반으로 떨어져 매월 적자를 내다 투자금을 모두 날리고 문을 닫아야 했다.
인간 본성은 사업관계나 친구관계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친구들도 경제적으로 차이가 벌어지면 불편해진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내 돈 투자하고 본사 갑질을 당하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사업으로 각인되었다.
친구관계도 내가 돈을 써도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친구 앞에서는 을이 되는 것을 느꼈다. 어제 만난 친구도
언젠가부터 불편해졌다. 만나면 항상 그 친구보단 내 형편이 낫다는 생각에 기꺼이 사고 싶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 의무인양 더 많은 것을 당당히 요구하는 모습을 보이자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서로 불편해진 관계를 눈치 없이 붙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