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오늘도 아침에 막내를 논현역에 데려다주고 한강을 달리고 아내와 카페에 갔다.
시험 때는 학교까지 직접 데려다준 적도 많으니 극성 부모는 아닌가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누구보다 아이들 자립심을 강조하며 지나친 부모의 보살핌과 간섭을 경계했던 나인데 말이다.
난 고등학교 때 자가용을 타고 학교 정문에서 내리는 친구를 보며 부모가 자식을 망친다고 생각했다.
뭐든 자신이 직접 닥쳐보지 않고는 함부로 판단하거나 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랬던 내가 아이들 초중고와 학원은 거의 매일, 대학 입학해서도 시간이 되면 데려다주고 싶어 했다.
백수의 유일한 즐거움이다 보니 안 할 재주가 없었다. 아버님께서 옛날에 그렇게 나를 데려다주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그 피도 있는 것 같다. 다행히 그것이 아이들 독립심을 크게 저해한 것 같지는 않다.
큰 아이는 대학 내내 알바를 하며 자기 용돈을 벌고 우리 결혼기념일까지 챙기고 있다.
대학 입학 후 20주년에는 아르바이트비로 멋진 곳을 예약해 줘 아내와 울컥하기도 했다.
오늘도 알바를 데려다주는데 딸아이가 LG 가을 야구를 보러 잠실에 가자고 한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 잠실 야구장을 몇 번 데리고 갔던 추억 덕분에 아이들도 LG팬이 되었다.
아내가 야구를 싫어해 아이들하고만 가느라 더 자주 못 간 아쉬움이 있다. 나도 너무 젊어 정신없던
시절이었지만 유일하게 잘한 일이었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는 아빠가 만들어 줄 수 있는 추억들이 많지만,
아빠들도 그때가 가장 바쁘고 힘든 시기라 놓치게 되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델다주는 끝이라고 했다가, 지금은 대학 졸업 때까지만 도와준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말로는 대학 졸업 후에는 부모 지원도 끝이라며 독립을 준비하라고 하지만 과연 글쎄다.
사랑을 더 주고 싶어도 그 사랑이 아이들에게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갈등을 한다. 그런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봤기 때문일 것이다. 델따주는 내 만족을 위한 사랑일 것이고, 아이들 자립심에는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나, 하늘나라 아버님 추억은 나를 델따주 하시던 모습으로 남아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