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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과 우연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무슨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다. 아니면 인연인가?

어제 정오를 지나 막내를 논현역 버스정류장에 내려주고 아내와 예전에 갔었던 압구정 카페에 들렀다.

그 건물 뒤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모르는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내 이름을 부르며

형님 아니냐고 하는 것이었다. 국민대 법대 91학번 동기이자 나보다는 4살 어린 친구였다. 난 군 제대 후

학력고사를 보고 입학을 해 현역 동기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워낙 붙임성이 좋아 졸업 후에도 동기들 경조사 때 얼굴을 보거나 이따금 연락을 해왔던 친구였다.

주차장에 있던 내 차량이 자기 회사 사장님 차량과 동일해 전화번호를 찍었는데 내 이름이 떠서 자신도

놀랐다는 것이다. 아내는 인사만 하고 먼저 집으로 가고 그 친구와 세 시간 넘게 서로의 근황을 얘기했다.

쿠팡 임원으로 있다가 5년 전 공인중개사를 따고 이 건물에 있는 부동산중개법인 이사로 왔다고 했다.

요지는 내가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경력이 있으니 자기 회사에서 함께 일하자는 것이었다.


취업을 알아보고 있었고 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은 부동산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무엇보다 회사가 집에서 가깝고 출근 부담도 없어 최상의 조건이었다. 일단 아내와 상의를 해보겠다며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내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절박한 상황이 아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예전처럼 열심히 일할 것 같지도 않고 지금 나이에 그래서도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근을 하면 또래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아내에게 떳떳할 수도 있겠지만 썩 내키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이거다 싶을 때는 무모하리만큼 달려갔지만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

시작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열심히 사는 것 보다는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나마 삶에 후회가 없는 건 인생 방향을 잡는 순간만큼은 최선의 노력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편하게 일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5년 후만 생각해도 의미 없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연을 인연이라 믿고 달려가 보고 싶지만 중년 이후의 방향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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