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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07. 2024

구박받을 나이

결혼 20년 차 일기

결혼 20년 차 일기   2020년  6월  9일


 엊그제 일요일에 모처럼 친구들과 행주산성에서 모임을 가졌다.

한 달 만의 외출이라 즐겁긴 했지만 아내가 일 하고부터는 눈치가 더 보인다.

이제는 아내와 평일에 다닐 수 없어 주말이라도 같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내가 일을 하면서 친구들 모임도 자제하다가, 이제 아내도 익숙해져 어쩌다 주말 하루정도는 나도 바람을 쐬고 싶어 진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런 내 모습조차 서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억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한 달 내내 집에서 아이들과 아내 뒤치다꺼리를 하다 가는데도 기분 좋게 보내주지 않으면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내의 작은 불만에도 연연하는 소심한 내 성격 탓인걸 알면서도 이럴 때면 화가 난다.


 지난 주말에는 쉽게 보내주는가 싶었는데 결국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아내의 구박을 들어야 했다.

다음날 일하는 사람을 새벽에 들어와 잠을 깨웠으니 아내의 구박은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서운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렇게 아내의 작은 투정조차도 포용 못하는 내 천성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내가 요즘 평안하다 보니 완벽한 아내를 원망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교육도 때를 놓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사춘기 아이들이 엄마를 껴안고 어리광을 피울 만큼 아이들과도 잘 지낸다. 자격지심 많은 백수 남편에게도 현명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나는 아내의 사랑을 갈구하며 연인 같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아내가 어쩌다 나에게 뭐라 한다고 뭐 그리 섭섭하다고 아내를 원망하는지 내가 참 못났다.

내가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면, 충분히 구박받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면 될 일이다.

아니 오히려 이제부터는 아내의 구박을 즐길 수 있는 중년의 여유로운 모습이 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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