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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할 결심

중년 백수 일기

by 일로


어제저녁 아내와 침대에 누워 TV를 보다 우연히 "이혼할 결심"이란 프로를 봤다.

스타 부부들의 가상 이혼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였는데 부부들의 실제 갈등 상황을 실감 나게 보여줬다.

특히 정대세 부부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아내가 좀 조용히 하라는데도 나 혼자 계속 구시렁대며 볼 정도였다. 어쩌면 나의 20년 전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대세 선수의 순박하고 착실한 모습을 좋아했기에 더 안타까워했는지도 모르겠다.

명서현 와이프를 처음 봤을 때도 정대세 선수가 결혼을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시어머니에게 엄청난 모욕을 당하면서도 1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유지해 왔다는 것조차도 놀랍고 신기했다.

인간관계는 넘지 말아야 할 정도가 있고, 그 선을 뛰어넘는 경우에는 일반 상식을 적용해서는 안된다.


처가살이하는 남편이 자신의 꿈은 나고야에 온 가족이 모이는 거라는 발언을 할 때 아내는 없는 사람이었다.

상담했던 정신과 의사도 명서현 씨한테 완벽주의라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시어머니께 보내라는 조언을 하는데 화가 나려 했다. 저런 당연한 말을 하면 부부 갈등의 골만 더 커지기 때문이었고 예상대로였다.

천륜이 있어 인간 도리를 지켜야 한다는 기본 전제는 요즘 세상에는 맞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아이들을 위해 할머니를 만나게 해 주라는 패널들 조언도 와닿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의 사랑이고 그것은 부부의 화목을 전제로 하고 있다. 부부 사이가 안 좋은 상황에서 아무리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과 환경을 만들어 준다 해도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 남편은 아내의 행복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결혼 10년 차 정도까지는 아내와 이런 것으로 불편해했던 것 같다. 시어머니께 전화를 왜 한 번도 안 하냐는 둥, 혹시 어머니가 서운하신 일은 없었는지 신경을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다.

정작 가장 큰 효도는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지 부모님께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도 자식의 행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부모라면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며 사는 것이다. 그 시어머니는 자신이 남편과 시댁에 한대로 받는 것이고, 자신이 며느리에게 심은 만큼 거두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어리석은 자가 나오면 상대방은 희생당하고 고통받는다. 그 고통으로 인해 가정이 깨어진다면, 그것까지도 그 시어머니의 업보가 된다. 이 대목에서 안타까워도 자식은 부모와 자신을 위한 단절을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주위에 보면 부모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자식들이 부모와 분리되지 못한 성인이 된 경우를 종종 본다.

결혼 후에도 끊임없이 부모와 배우자 사이에게 힘들어하고 갈등한다. 특히 요즘은 대부분 외동이다 보니

더 그런 것도 같다. 사실 나도 대학생이 된 딸들을 아직도 걱정하고 간섭하고 싶은 어쩔 수 없는 부모이다.

하지만 항상 생각한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이고 이제부터 각자의 인생을 살고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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