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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관계에 올인하라

중년 백수 일기

by 일로

나이가 들수록 그나마 나 자신에게 기특한 건 단 하나 부부관계에 올인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내가 그렇게 올인했다고는 할 수 없고 그저 최대한 아내와 잘 지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물론 아내와 나이 차이가 있어 결혼 후 10년 정도는 아내가 나에게 다 맞췄다고 할 수도 있고,

오히려 아내가 결혼생활 내내 나에게 올인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삼십 대의 거칠 것 없던 야망과 패기는 모두 사라지고 이제 남은 거라곤 어눌한 말머리와 기억력,

눈치 없이 커진 목소리, 편협하고 성급한 행동들 뿐이다. 내가 꿈꾸던 경제적 부도, 사회적 위치도, 명예도 아무것도 이뤄 낸 것이 없다. 사십 대를 지나면서 그런 절망과 현실 순응의 터널을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아내와 한마음으로 열심히 헤쳐 나가다 보니 힘들었던 순간들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겨졌다.



내가 그려왔던 중년 이후의 삶에 그나마 비슷한 건 부부관계와 화목한 가정이 아닌가 싶다.

내 능력과 기질이 대단한 사회적 성과를 내기는 많이 부족한 사람임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그 약함 덕분인지 아내에게만큼은 진심으로 사랑받는 남편이 되고 싶었다. 내가 젊어서 당겨 쓸 수 있는 많은 즐거움과 쾌락들을 최대한 남겨 두었다가 나이 들어 아내와 조금씩 꺼내어 쓰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사십 대의 공허한 터널을 지나오면서도 아내와 관계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적어도 아내는 나로 인해 불행하지 않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진 것 같다.

아이들에겐 평균 이하의 아빠였던 것 같은데 아이들은 잘 컸고 우리 부부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사람이 살면서 부부관계만 성공해도 어쩌면 그다지 후회 없는 삶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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