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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Jan 27. 2022

글은 아무 때나 쓸 수 있잖아

글쓰기를 선택하고 또 선택한 24년간의 여정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 글과 연이 깊었다. 결혼기념일 선물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 전집을 선물 받은 엄마, 여름 냄새가 날 즈음이면 우리 집은 미숫가루 한 잔과 책 한 권을 습관처럼 달고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긴 학교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콩, 너는 죽었다>를 시작으로 시집들을 섭렵했으며, 각종 글쓰기 대회에서는 걸핏하면 상장을 가져왔더랬다. 시인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던 10살의 소녀에게 "그거 하면 돈 못 벌어"를 시전 하신 아빠의 말을 제외하면, 나는 앞으로 쭉 글을 쓰라는 천명이라도 받은 듯했다.


그렇게 순수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어느 날, 교회에서 한 선생님을 만났다. 문예창작과에 다니며 출판사를 목표로 하던 그녀에게 나는 무언의 이끌림을 느꼈고, 자연스레 그 길을 걷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기뻐하기는 커녕 내게 장문의 메일을 선사했다. '출판사를 가기 위해 꼭 문예창작과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다면 나는 너를 응원하겠다.'는 일리 있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무척이나 섭섭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크지도 어리지도 않은 18세의 나는 아빠와의 질긴 전쟁을 시작했다. 문예창작과를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온라인 과외라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방 한 구석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온라인이 최선이었지만, 월 40만 원이라는 거금은 평범한 한부모가정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시켜달라'는 이기적이고도 당연한 호소를 통해 나는 개인 과외를 쟁취했다. 비록 사립대냐 국립대냐의 문제는 남아있었지만 당장은 글을 배울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섰다.


그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에 사는 내게,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백일장 참가의 경험은 잊지 못할 도전의 추억이 되었다. 2시간동안 창작시를 배출하고 그 자리에서 심사결과를 들어야 하는 가혹함은 아직도 나를 떨리게 하지만 말이다. 치밀하지 못한 나는 실수를 일삼곤 했는데, 한번은 세종대왕~문학상을 '세종대학교'라고 착각해, 장대비를 무릅쓰고 온동네를 뛰어다닌 적이 있다. 지금보다도 더 어렸기에 가능했고, 무지하고 두렵기에 신비로웠던 2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문예창작과 진학을 포기했다.







수능을 앞둔 3개월간 공부에 전념하다 보니, 이제는 질려버린 '입시글 생산'보다 공부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빠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폭탄선언을 하고, 나는 재수의 길을 선택했다. 그 역시 재수학원을 갈 형편은 되지 못했기에 근처 독서실을 다녀야 했다.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많이 겸손해졌고 아빠와 타협하는 법을 배웠으며, 본가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할 만큼 성장했다. 그렇게 지방 국립대 경영학부에 진학해 글과는 전혀 관련없는 길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천명을 어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비록 이렇게 정제되지 않은 글을 쓸지라도 배우고 다듬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왔으므로. 끄적거리던 시를 공모하거나 SNS에 업로드해보았지만 별다른 내면의 성과가 없었다. 남에게 증명하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할 때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글과 동떨어진 삶을 살 것인가.' 그것이 일생을 좌우할 고민이 되었고, 나의 자아정체성을 찾기 위한 사춘기가 시작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스물 한 살에! (사춘기에 대한 기록은 이후에.)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출판사 진출을 목표로 두었다. 출판 마케터냐 편집자냐의 고민은 아직 남아있으나 글을 쓰기로, 또는 글과 가까워지기로 결심한 인생인 만큼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갖기로 했다. 요즘 글을 잘 못 쓰고 있다는 나의 핑계에, '글은 아무 때나 쓸 수 있잖아. 그게 매력 아니야?'라는 따갑지만 명쾌한 해답을 내려주었던 지인 덕에 부끄러운 글을 써내려간다. 누구든 필자를 만나면 채찍질을 해주어도 좋다.


글을 쓰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나의 면면이 속속들이 공개될 것이다.  나는 부끄러움을 잠시 접어 두고 기꺼이 당신들을 맞이하겠다.


나의 부족한 생애를 종종 열람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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