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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Feb 01. 2022

2주만에 계획된 행복, 제주도

코지와의 코지한 여행


해질녘의 김녕 바다를 바라보면 없던 영감도 떠오른다. 새로운 가구와 새로운 공간, 무려 개인 디자이너의 손길이 담긴 원탁의 우드 테이블까지. 특히나 비오는 제주는 처음인 데다가 10 거리 편의점도 없는 시골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3 4일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울 만큼 철저하게 계획된 무료함과 한적함, 안정감이 이곳에 있다.


새로운 공간이 주는 느낌은 참 묘하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공간만 변했다. 그로 인해 마음이 들썩인다.

어지럽게 세상 속을 휘적이던 생각들이 차분히 가라앉고, 베낭 하나에 들어갈 만큼만 고민하고  그만큼만 생각한다. 이곳에 오는 내내 친구와 결심한 바로는 ‘버리고  ’. 정확히 무엇을 버릴지, 어떻게 버릴지도 모른  무작정 김녕으로 왔다.




 숙소에는 주변 마을을 훤히 내다볼  있는 통창이 있어, 창밖을 보는 재미가 있다. 돌담 하나로 바다를 막은 초록 지붕의 집에는 온갖 고양이들이 익숙한  기지개를 켜며 들어가고, 가끔씩 옥상으로 올라오는 주민분들과 눈이 마주친다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더랬다.



일상을 충실히 살아내는, 투박하면서도 소탈한 사람들이 김녕을 더욱 풍족하게 만든다.

특히 골목 어귀를 서성이는 모든 인물에게 애정이 느껴지는데, 어떤 아저씨께서는 우리 숙소 앞 작은 주차장에 서서

작은 골목길을 요리조리 운전해다니는 관광객들을 향해, 자진해서 손을 휘적이며 길을 안내하고 계셨다.

아침에 나갈 때도 계시기에 주민이신가 했더니 오후에 돌아올 때도 계시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주민이시겠지? 살짝은 경계하며 신기한 듯 바라보고 말았다.


이곳의 온도를 가득 담은 또다른 인물은 바로 감자탕 아저씨다.

제주도에서 유명하다는 고사리 육개장을 먹으러 근처 로컬 맛집을 찾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관광객이라고는 우리뿐, 가게에는 딱봐도 단골 손님으로 가득했고 우리는 어색한 웃음을 머금으며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야했다. 아무래도 가족분들이 운영하는 식당 같았고, 내가 시킨 고사리 육개장과 친구의 감자탕이 나오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아저씨께서 우리 앞에 서시더니, 걸쭉한 목소리로 대뜸 “감자탕!!!” 하고 소리를 지르신 것이다.

친구는 깜짝 놀라며 “네!!” 하고 감자탕을 받아냈더랬다.

아저씨께서 등을 돌리고 가시자마자 참을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고, 식당을 나와 드라이브를 하면서도 한참을 “감자탕!!!” 되뇌이며 웃고 말았다.  투박한 목소리가 오래토록 마음에 남았고, 우리는 갑자기 서있다가도 아저씨의 목소리를 따라 고성을 지르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느리고 안온한 여행이 가능할  있었던 ,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가끔은 비난하는 코지와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하루에  필요한 것은 커피, 노래, 개인시간, 조금의 자연과 사진뿐이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달라 이해할  없는 나의 요구에도 고개를 갸우뚱하며 찍어주는 코지,

살짝은 모자란 엔프제로 살아가는 우리는 다소 엉성한 계획을 세워가며 촘촘한 추억을 쌓아나갔다.


인생 첫 렌터카, 만 26세까지는 가지 못한 우리는 만 21세 이상을 기준으로 좋은 차를 검색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아직은 사회에서 우리를 보호해주는구나’라는 조금의 안도감과 함께 차를 렌트해왔다.

5번만에 기능시험을 합격한 나로서는 당장 운전을 꿈에도 못 꾸지만, 코지의 운전은 꽤 안정적이었고 우리는 제주의 동남쪽을 무사히 오갈 수 있었다.


코지 교수님 추천을 받은 사려니숲길, 커피와 감성을 위해 필수코스로 분류해두었던 블루보틀은 우리를 나른하게 하기 충분했고

마지막날 저녁에는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리라 다짐하며 숙소에 들어와, 나는 글을 쓰고 코지는 영어 공부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방금전 코지의 어머니가 그럴거면 제주도를 뭐하러 갔냐며, 비행기 타고 싶어서 갔냐는 귀여운 잔소리를 남기셨지만! 우리의 여행의 목적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행복을 찾기 보다는 무거운 마음 버리기 위해서,

나도 코지도 육지에서 가졌던 숱한 고민과 걱정들을 입밖으로 낼 즈음이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우리는 나름 바쁘게,  살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번뇌하고 고민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차림새를 단정히 하고 싶었다. 파도가 치더라도 돌담 하나 세워두고 나를 지킬  있도록,


 필요 없이 숙소 앞에  뚫린 바다만 봐도 ‘이거면 되는구나싶었다. 더하자면 조용한 숙소에서 각자의 할일에 집중하며 함께 호흡하는 ,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뜨아를 내려먹는 , 저녁에는 말도 안되게 맛있는 회와 흑돼지를 먹다가 입과 눈을  벌리고 서로를 쳐다보는 .

이번 여행의 모습은 이게 다였다!


스스로를 위해 여행을 선물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이 마음의 분주함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을 격하게 느끼며

제주에서의 마지막밤을 맞고 있다.


이제 집에 가기 싫지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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