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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r 07. 2022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1

남자친구가 새로운 블루투스 스피커를 선물받았다.

이사 기념으로 형이 준 꽤나 고급의 스피커였는데,

내가 근 한달간 매달렸던 자소서 첨삭 값이랑 맞먹는 정도였다.

역시 직장인은 멋지다.


아무튼 그 비싼 물건을 보고만 있을 수 있나, 들어봐야지.

당장 “레미제라블”을 연결해서 안방을 영화관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레미제라블도, 제인 에어도, 해리 포터도 본 적 없는

꽤 당황스러운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그러한 고전들이 우연히 찾아올 기회가 없었고

누군가 보라고, 꼭 봐야 한다고 언질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내게 고전은 봐도 좋고 안 봐도 좋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유년 시절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꼭 봐야 하는, 그런 것이다.

먼저 다가가야만 접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만약 엄마가 있었다면 온갖 책을 다 섭렵했을 것은 확실하다.

(엄마도 어지간한 독서광이었다.)


여하튼, 엄청난 사운드로 장장 두시간 반 가량의 명작을 시청한 후

갑자기 반대쪽 안방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쿵”

“헙?.. 이게 무슨 소리야?”

“쿵 쿵 쿵”


정확히 두 번 그 소리가 들린 후 벽에 귀를 대어보자 어떤 부부의 싸움 소리가 들렸다.

그들 자신의 문제인지, 우리가 그 싸움의 시발점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등에 식은땀이 절절 나기 시작했다.


2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그런 말을 했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남들보다 두 배는 큰 목소리 탓이다.

늘 화통 사운드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맘 먹고 발성을 내지르면 옆에 있는 사람 고막 쯤은 문제도 아니다.

아무래도 오랜 교회 찬양단 생활로 단련된 복식 호흡 때문인 듯하다.


오빠를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그랬다.

“아우 귀 아파”, “승희야,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돼”

이런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던 터라 사운드를 좀 조절할 줄 알게 됐나 보다.

나도 모르게 커지는 목소리를 붙잡으며 타인의 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겪어 보니 귀가 아픈 게 생각보다 큰 고통이더라.)


나는 주목받는 게 좋으면서도 싫었다.

쉽게 달아오르는 얼굴로 인해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본성은 조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을 기쁘게, 웃게 하는 게 좋았고

덕분에 중고교 시절은 체면을 버리고 재미를 택했다.


누군가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큰 목소리가 생명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목소리가 축복이자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더는 남용하지 말아야지, 너무 아끼지도 말고.


어쩌면 지금의 내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오빠를 만나게 해준 목소리니까.

(오빠는 나를 교회에서 처음 보고 “목소리 진짜 큰 애”라고 생각했댔다.)

그러니,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


사랑해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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