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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Jun 12. 2022

참기 힘들 때도 있잖아

오늘은 참기가 힘들다. 나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것들을. 좋은 의미로 말고 토할 것 같은 쪽으로. 나는 남에게 불만을 표현하거나 서운함을 밝히기가 어렵다. 먼저는 아빠에게, 그리고 친구와 지인들에게도. 물론 아예 안 하진 않는다. 백 번의 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내 표정을 보고 이미 서운함을 알아차릴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 표정은 이미 욕을 시작했는데 정작 입은 조용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한 때는 표정까지 제대로 감추고 싶었다. 아예 포커페이스로 내 섣부른 감정을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그냥 참는 건데, 물론 감정이란 게 훅 올라왔다가 훅 꺼지기 마련이지만 아무 말도 못하면 내 속은 어쩌지. 그래서 지금은 표정을 감추기보다 말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보려고 한다. 근데 그게 무지하게 어렵다.


다소 어이가 없지만 남자친구에게는 이런 서운함을 잘 표현할 줄 안다. 아마 내가 처음부터 이런 것들을 감추지 않기로 다짐하고 관계를 시작했기 때문일 거다. 물론 오빠한테도 말보다 표정이 앞서나갈 때도 많다. 그래서 오빠는 내가 뚱해있으면 답답해할 때도 있다. 이미 서운한 건 다 보이는데 미지근하게 괜찮다고 하고 마는 내 버릇 때문이다.


하지만 더 어릴 때부터 관계를 이어온 사람들이나, 태어날 때부터 나를 돌봐준 아빠한테만큼은 그런 말이 잘 안 나온다. 아마 내가 상대로부터 거절당하거나, 어색한 상황을 만드는 걸 꺼리기 때문일 거다. 그런 것도 건강하게 해결할 줄 아는 게 진짜 어른일 텐데. 이유 없이 나에게 예민하게 구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않는 예민한 것들을 나한테만 쏟아놓는 사람, 내가 불만이 없는 줄 아는 사람 등등…. 생각만 해도 갑갑하다.


가끔은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게 많아질 때가 있다. 어느 날은 그의 모든 게 사랑스럽다가, 어느 날은 모든 게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 나도 이렇게 뒤에서 치사하게 굴지 않고 면대 면으로 딱, 서서 내 불편함을 쏟아놓고 싶은 마음이다. 관계가 오래 지속되려면 그게 더 건강한 쪽일 테니까.


그래서 오늘은 교회를 다녀왔다가, 열무비빔밥을 먹고 풋살 구경을 갔다가, 내일 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오래된 빨래를 개다가, 참을 수 없는 마음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아마 미루고 미뤄뒀던 마음이 훅 치밀고 들어온 걸 테다. 어제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재방송을 보는데, 축 늘어져있는 동백이에게 엄마가 말했다. 쫄지 마, 쫄지 마라. 네가 쪼니까 만만하지.


그렇다, 난 쫄보였다. 누군가의 예민함에 쫄았고, 그 부당함에 쫄았고, 나의 작아짐 때문에 쫄았다. 그래서 만만의 콩떡이 되어버린 거다. 이왕 떡이 될 거라면 단단한 송편 쯤이 좋겠다. 물렁하지도 터지지도 않는, 알맹이를 꽉 쥐고 고상하게 서 있는 송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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