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열음 Aug 19. 2022

나는 예민한 사람일까

스타벅스에서 일을 시작한지 2주차. 단편으로 담기엔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모든 일들을 질질 끌어오는 건 내 정신 건강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그다지 건강한 글이 되지 못할 것 같다. 하나 확실한 건 올해 나의 목표를 이뤄가는 중이라는 것.


애시당초 이럴 계획이었나보다. 나의 올해 목표는 ‘단단한 마음을 갖는 것’. 어쩌자고 이런 중대하고도 어려운 목표를 세웠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뱉은 대로 값을 치르는 중이다. 마음이 단단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점점 명확해지는 신의 뜻을 알아가는 중이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꽤 편안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이 힘들었다. 감정이 요동쳐서 별 것 아닌 일에 갑자기 울기도 하고, 어떤 영상을 보고 엄마 생각이 나서 30분 동안 오열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대개 눈물에 익숙한 만큼 조절도 쉬웠는데 말이다.


그렇게 격동의 상반기를 보내면서 나의 정신의 유약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온전치 못한 사람임이 확실했다. 그리고 하반기를 맞은 지금, 색다른 혼돈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스타벅스를 너무 만만히 봤던 내 탓이다. 그냥 체계적인 카페 알바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그냥 (커피를 파는)회사원이 된 것마냥 온갖 레시피 시험과 근무 루틴을 익히는 중이다.


사실 일보다도 사람에게 적응하기가 더 어렵다. 우리 매장에는 오래 일할 마음으로 진급한 사람들이 많고, 잠시 알바처럼 다녀갈 나는 그들과는 다른 결에 머물렀다. 이미 친한 사람들 틈을 파고드는 것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오랜만에 깨닫기도 했고.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내게 문제가 있나 의심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나의 교회 새가족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었다. 청년부의 고인물이라 잠시 잊었던 낯섦의 감각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장소에서, 친해보이는 사람들끼리 모여있는 공간을 얼마나 어려워할 터인지. 그들에게 더 조심스럽지 못하고 더 애쓰지 않았던 나를 탓했다.


 5일을 나가야하는 근무 시간뿐만 아니라,   시간이 온전치 못했다.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레시피 시험을 준비하느라 빽빽한 엑셀표를 들여다봐야했고, 일을 가기 전까지 긴장한 상태로 간이 시험을 반복했다. 글을 쓰거나 일찍 일어나 필라테스를 가는 건 하든 안하든 상관 없는 곁들임 같았다. 직장인들이 온전한 나의 시간을 확보하고 사는  얼마나 부지런하고 피로하며 건강한 일인지 깨달았다.


근무하는 곳에는 내 또래가 몇몇 있는데, 한 명은 무지하게 조용하지만 일을 엄청나게 빨리하는 편이다. 손이 너무 빨라서 눈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한 명은 일도 적당히 잘하면서 사회생활을 끝내주게 잘한다. 엄청난 애교의 소유자이며, 신입의 실수에도 불편한 감정보다는 개선할 부분을 침착하게 일러주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에게서 가져갈 점도 명확했다. 예민하고 감정적인 사람에게서는 내가 고쳐야할 점을 엿보았고, 다정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에게는 솔직함과 다정함의 공존 가능성을 보았다. 나는 그렇게 솔직하고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스타벅스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내년 유럽 여행을 위해 돈을 모으겠다는 단일한 이유였다. 그것 하나만 보고 덥석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신중함이 부족했다. 학업과 이 일을 병행하는 게 얼마나 고단할지, 동시에 연애도 하고 교회도 다니고 자격증까지 따는 게 얼마나 벅찰지 따위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돈을 벌려면 무슨 일이든 시작해야 했고, 어차피 병행해야 했고, 어차피 벅찰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 맞는 일이지만 나는 무슨 일이든 침착하게 시작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자격증 공부를 하더라도 한 번의 방학에 서너 개의 결과물을 내려고 했다가 이도 저도 안 됐으니 말이다. 시작은 당차게 하고 끝은 맺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내겐 자주 있었다.


한번은 교회에서 커뮤니케이션 유형 평가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액션형이면서 피플형, 아이디어형이었다. 총 4가지의 종류가 있었는데 progress형만 최하위를 찍었다. 그니까 추진력도 있고, 관계도 좋아하고, 이상적인 사람이지만 그 과정이 촘촘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넓게 보지만 멀리 보지 못하고, 생각의 폭이 넓지만 깊지 못한 사람인 거다.


그렇게 나를 단련해가는 일련의 시간들을 거치며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스 그래햄의 묘비명처럼, 살아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공사중인 거니까. 그러니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일은 올해만으로 완성할 수 없는 일일 거다. 그걸 올해가 가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치자. 결국 시련이 나를 단련해가는 과정이라는 것만은 몸소 느끼고 있다.


오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던 중,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책을 포함한 몇 권을 집어들었다. 내가 고르는 책이 현재의 나를 말해준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고른 건 예민함에 대한, 자존감에 대한, 사랑에 대한, 하나님에 관한 책들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나를 말해주고 있음은 명백했다. 한번에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네 권이나 집어든 욕심까지도.


그러면서 친구와 말했다. 진짜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책을 집어들지도 않을 거라고. 왠지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나는 내가 예민한 걸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지만 매사를 예사롭지 않게 다루는 그 민감함이야말로 글을 쓰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본다. 예민하지 않으면 그 책을 집어들지도 않겠지만, 글을 쓰고 있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나는 예민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게 다행인 거라고.



_사진 출처: polyvore.com

작가의 이전글 Life is Orang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