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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Feb 27. 2023

D-6, D-17

나의 스물 다섯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 두 가지를 앞두고 있다. 디데이를 세어보는 것이 너무 오래전 일이라 몽글몽글한 기분이다. 무언가 날짜를 지정해놓고 기다리는 것은 즐거움과 설렘, 두려움을 모두 가져다주는 일이다.


첫째 디데이는 나의 퇴사일. 스타벅스를 그만두는 날이다. 지난 7개월 반 정도의 시간 동안 맵고 짜고 치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을 두고 보니 후회가 없다는 마음으로 이 날을 기다린다. 정말 지독하게 그만두고 싶었던 날들이 많았지만 버텼다. 버텨내고 말았다.


참으로 지독한 동시에 유약한 나의 근성을 맛보았다. 일하는 동안 나는 독기에 가득했다가도 수없이 무너지고, 하루하루 후회스럽기도 했다. 막학기와 졸업과 스벅과 회장과 연애와 관계의 그 모든 것에 나를 던져둔 것이 무모한 일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미래를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돈을 벌어서 여행을 떠날 것이니까. 그 여행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둘째 디데이다. 나는 3개월의 유럽 여행을 앞두고 있는 행복 예정자(?)다. 모두가 나를 부럽다고 말해.. 나는 스스로 이번 일 년을 갭 이어라고 부르며, 나를 찾는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전례없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그 시작은 여행이 될 것이다.


아빠의 아늑한 집을 떠나본 적 없는 내게, 첫 자취가 유럽의 지붕 아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큰 두려움을 안겨 준다.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설렘도 준다. 고작 2주 뒤면 나는 바르셀로나에 당도할 것이다! 스벅을 관두고 약 11일의 시간만을 보낸 후에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게 조금은 아쉽지만, 어쩌면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간 때문에 좋은 일이 많을 지도 모른다. 타임어택이라는 게 효율의 끝판왕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나는 일련의 계획들을 세워둔다. 이렇게 여행이 임박하더라도 진짜 만나야 할 사람들,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촘촘하고 예방적인 일들. 그리고 스타벅스를 마무리하고 그 시공간과 이별하는 일! 입사와 동시에 바라왔던 일이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한 게 사람의 마음인가부다. 마지막 일주일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촉촉하고 프레즐한 심정이 된다.


약 한 시간 뒤에 출근하면 마지막 월요일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내일은 마지막 화요일, 모레는 마지막 수요일….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시무시한 힘이 있다.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포용하고 감사하게 만드는 힘. 어쩌면 하나님이 나의 삶을, 매일을 그렇게 살아가라고 수없이 말씀하셨는데도. 실제로 눈앞에 두고 봐야만 감각할 수 있는 순간의 소중함.


어제 교회에서 나눔을 하던 중, 한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기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요즘, 현재라고 답했다. 현재는 present라는 동음이의어를 쓰니까, 그걸 자주 기억하려 한다고. 결국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디데이를 앞두고 있어도, 매일매일이 어떤 날의 디데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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