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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트업디 Jun 19. 2023

‘빌런’ 단백질, ‘슈퍼히어로’ 단백질로 잡는다

[Startup:D] (주)셀리아즈 강경화 대표

전 세계 3억 명 이상이 퇴행성 망막질환을 잃고 있고, 이중 시력을 생애주기 내 완전히 잃는 경우는 15% 정도다. 이들은 예전의 시력을 되찾을 수 없다. 피부나 간과 달리 사람의 망막은 퇴행하면 다시는 재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예전 시력의 회복이 아니라 가능한 현재의 시력을 오래 유지하는 데 있는 이유다. 퇴행성 망막질환은 노화 또는 유전적 영향으로 망막세포가 퇴화해 시력손실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황반변성이나 녹내장은 노화가 원인이고, 개그맨 이동우 씨가 앓아 널리 알려진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발생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10대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한다. 바깥쪽부터 시력이 줄어들기 시작해 ‘바늘구멍’이 됐다가 결국엔 완전히 막혀버리게 된다. 운이 좋으면 사망 직전까지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도 있고 빠르면 30~40대에 시력을 잃는다.     

안타깝지만 시력을 복구할 수 있는 치료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다만, 약물로 망막 혈관생성을 억제하거나 안압을 낮춰 진행을 지연시킬 뿐이다. ‘지연제’는 있지만 시력을 복구할 수 있는 ‘치료제’는 없는 셈이다.     

인류가 망막을 재생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10여 년 전부터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해 망막세포를 만든 뒤 죽어가는 망막에 이식하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안착률이 낮고 부작용도 있어 사실상 실패했다. 전자 칩을 망막에 이식하는 인공망막도 같은 이유로 개발이 중단된 상태다.      

인간의 망막은 재생될 수 없는 걸까? 어류나 도마뱀, 도롱뇽 같은 양서류는 망막이 손상을 입어도 재생된다는 사실에 주목한 연구자가 있었다. 20여 년간 망막발달과 퇴행과정 중 호메오(homeo) 단백질이 세포 간 어떻게 이동하고 작용하는지를 연구한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김진우 교수다.      

호메오 단백질은 수정란에서 성체가 될 때 세포분열을 통해 기관을 발생시키는 유전자다. 그동안 세포 내에서 만들어져 그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김 교수 연구팀은 이 단백질이 세포막을 뚫고 외부로 분비된 뒤 이웃세포로 침투해 다양한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같은 호메오 단백질의 특성을 바탕으로 망막 재생 촉진 기술도 개발했다.     

김 교수가 호메오 단백질의 특성을 바탕으로 개발한 망막 재생 촉진 기술(물질 및 기작) 2건은 카이스트 ‘2020년 최우수기술’, ‘2021년 탑2’ 기술에 연속 선정돼 국내와 해외 5개국에 특허 출원된 상태다. 카이스트 창립 이래 2년 연속 기술상 수상은 그가 처음이다.


세상에 없던 혁신적 치료제 개발 위한 선택 ‘창업’

김 교수는 자신이 발견한 기술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국내 제약사들을 상대로 기술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인데다 완전히 새로운 기작(메커니즘)이다 보니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다.

“창업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어요. 김 교수가 제약사들을 여럿 만났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혁신적 치료제를 개발하려면 위험부담이 크다고 판단했나 봐요. 신약개발이란 게 오랜 시간 긴 호흡이 필요하잖아요? 빨리 시장에 내놓고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존 제약사를 통한 개발은 어렵겠다 싶었죠. 사실 후속 연구개발을 진행할 기반도, 망막을 연구할 기초연구자도 국내에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김 교수의 아내이자 공동연구자인 강경화 박사(전 카이스트 및 스위스 바젤대 연구교수)가 창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강 박사는 2022년 7월 1일 카이스트 문지캠퍼스 내 창업보육센터에 설립된 ㈜셀리아즈의 대표다. 강 대표는 남편인 김 교수와 함께 ‘망막발달과 퇴행과정 중 단백질의 세포 간 이동’을 연구해왔다. 역시 카이스트 연구교수로 망막재생을 연구하고 있는 이은정 박사가 연구소장으로 곧 합류할 예정이다.     

셀리아즈는 2022년 9월 미래기술지주로부터 7억 원의 시드투자를 유치해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재생되지 않는 인간의 망막세포, 그 원인을 찾다

카이스트 김진우 교수는 생명과학계에서 30년간 지속된 ‘호메오 단백질의 이동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주인공이다. 셀리아즈 연구소장으로 합류가 예정된 이은정 박사가 제1저자로, 강 대표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연구팀은 호메오 단백질 230여 개 중 70%를 스크리닝, 세포 간 이동이 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임을 증명했다. 다른 세포로 침투한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맞서왔는데 이를 판가름한 것이다.     

현상을 밝혀냈으니 이제 세포 간 이동의 기능과 의미를 알아야 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유전자재조합을 통해 돌연변이 생쥐를 만든 뒤 호메오 단백질의 이동이 망막의 발달과 퇴행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호메오 단백질이 가진 신경세포 재생능력을 이용해 망막을 비롯한 여러 조직의 퇴행성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호메오 단백질의 특성을 이용한 기술 중 하나는 루게릭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프랑스의 브레인에버(BrainEver)란 회사에 이전해 후속 연구가 진행 중이다. 글로벌 리서치 랩을 계기로 지금까지 교류를 이어오고 있는 알랭 프로솅(Alain Prochaintz, 전 콜레주 드 프랑스 총장) 박사가 설립한 회사다.     

그렇다면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의 망막은 왜 재생되지 않을까? 김 교수 연구팀은 물고기에서 힌트를 찾았다. 어류나 양서류는 망막세포가 손상을 입어도 재생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마침 미국 4개 대학 공동연구팀이 망막이 손상된 어류가 시력을 회복하는 데 있어 뮐러글리아(Müller glia) 세포가 주도적인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평소에는 작용을 하지 않다가 망막이 손상을 입으면 줄기세포로 활성화하는 건데, 이는 세포가 분열해 새로운 세포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의 경우에는 뮐러글리아의 활성화가 억제돼 있어 망막이 퇴행하면 다시 재생되지 않는 것이다.      

김 교수 연구팀은 뮐러글리아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단백질에 주목했다. 프록스원(Prox1)이란 단백질은 망막이 손상을 입으면 뮐러글리아에 침투에 축적되는데, 바로 이 단백질이 세포분열, 즉 줄기세포 활성화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여기서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프록스1을 제거하면 줄기세포가 활성화돼 새로운 망막세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망막세포 재생 막는 프록스1, 항체단백질로 잡았다

줄기세포 활성화를 억제하는 단백질을 찾았으니 이제는 해결책을 찾을 차례. 김 교수 연구팀은 유전적으로 프록스1이 발현되지 않는 돌연변이 생쥐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호메오 단백질의 새로운 기작을 통해 프록스1이 제거된 망막에서 뮐러글리아 세포가 활성화되는 걸 발견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유전자를 없애지 않고 뮐러글리아를 활성화하는 솔루션을 찾기로 했다. 프록스1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중화항체를 개발하는 게 그것. 하지만 기존 시중에서 판매되는 항체로는 프록스1 단백질을 잡아내지 못했다. 세포재생을 억제하는 ‘빌런’을 ‘슈퍼히어로’를 직접 만들어 무찌를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 연구팀이 제조한 세 종류의 항체 중 하나가 망막에 있는 프록스1 단백질의 작용을 억제할 수 있었다. 이 항체를 실험생쥐의 망막에 주사해 그 결과를 확인했더니 세포 밖에서 프록스1 단백질을 잡아채 뮐러글리아에 침투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유전자재조합으로 만든 망막색소변성증 모델 생쥐는 태어나면서부터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한 달이면 완전히 블라인드가 될 상태였죠. 그 생쥐 눈에 항체단백질을 주사했더니 두 달까지 시력을 유지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인간에 대입하면 청소년기에 최소한 3년 이상은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 거죠. 한 달에 세포 100개가 죽으면 10개 정도를 재생시킬 수 있는 정도인데요, 이를 100개, 그 이상으로 늘리는 게 셀리아즈의 목표입니다.”


퇴행성 망막질환 범용치료제 개발 박차

셀리아즈는 자신들의 고유한 기술로 퇴행성 망막질환의 범용치료제를 하루 빨리 개발할 계획이다. 우선 신약 후보물질인 항체단백질을 미국식품의약국(FDA) 희귀의약품(ODD)으로 지정받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망막색소변성증은 희귀질환인데다 어차피 치료제도 없는 터라 1·2상 임상을 패스트트랙으로 한꺼번에 진행할 수 있어서다.     

질환자가 많은 황반변성은 임상 절차가 까다로워 망막재생기술을 연계한 치료법을 기술 이전하는 걸 사업목표로 정했다. 치료제가 특허 만료돼 국내 바이오시밀러 업체가 복제약을 생산하고 있는 만큼 병행 치료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산불이 나면 기존 치료제는 물을 뿌려 불길이 번지지 못하게 하는 개념이라면 우리 기술은 황폐해진 숲을 새롭게 복구시키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퇴행성망막질환의 진행을 더디게 하는 걸 넘어 시력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플랫폼인 만큼 전 세계 제약사들과의 협업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셀리아즈는 프랑스 브레인에버와 기술협력을 넘어 공동법인 설립도 염두에 두고 있다. 유럽의 투자자금을 확보할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미국 제약사와의 기술이전 협의도 진행할 예정.     

“막상 창업을 해보니 신약개발이 히말라야 등반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가능하진 않지만 성공은 어려운,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은 목표 같은 거죠. 그 도전이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선한 의지가 포함된 것이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꿋꿋하게 올라가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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