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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036. 박인환 문학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박인환 문학관>

- http://parkinhwan.or.kr


관람시간: 09:30~18: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문의전화: 033) 462-2086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서른여섯 번째, 박인환 문학관이다.


문학관이 정원부터 잘 꾸며져 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문학관 같아 보였다. 2012년에 개관한 문학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깨끗했고, 10년에 넘는 세월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2020년에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정원 조형물부터 눈길을 끈다. 딱딱하거나 무겁지 않은 조형물들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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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정도만 알고 있는 작가이다. 그리고 해방 이후 모더니즘 시인이라는 정도.

'목마와 숙녀'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기억이 있다. 뭔가 멋진 문장이 매력적이었지만 시는 어려워 이해하지 못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또 예전에 가요 통기타 악보집이나 통기타 교본을 사면 '세월이 가면'(박인희의 곡)이 있었는데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는 가사가 좋아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런데 그 곡이 박인환의 시였다는 것은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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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구 유리벽에는 역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과 중문 사이, 집으로 치면 현관 같은 곳에 '박인환 시인의 고향 인제'라는 안내와 함께 간략한 '작가 연보'가 있다.


박인환은 1926년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에서 태어났다. 1936년에 서울로 이사를 했고, 중학교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 후 학업보다 영화, 문학, 독서 등에 심취했다고 한다. 이후 자퇴, 전학, 편입을 거쳐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광복을 맞아 학교를 중퇴하고 1945년 서울 중로 3가에 서점 '마리서사'를 개업했다고 한다. 그때 박인환의 나이 20세였다. 그리고 이듬해 '국제신보'에 <거리>를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이후 왕성한 활동을 한다. 특히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과 5인 합동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하는데, 이 시집이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집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이 시집이 해방 이후 후기 모더니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3년 뒤 서점은 폐업을 하고, '자유신문사'를 거쳐 '경향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중 6.25 전쟁 발발했고 1951년 26의 나이로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1953년 휴전이 되지 서울 옛집으로 돌아왔으나 1956년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31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대표작 두 작품이 모두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작품이라는 점이다. '목마와 숙녀'는 1955년 30세에, '세월이 가면'은 1956년 3월에 발표했고, 며칠 뒤 그는 갑자 찾아온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절정기에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절정기를 향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전시실은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은 1940년대 후반 서울 명동에 시인이 개업했던 서점 '마리서사' 주변의 명동 거리를 재구성해 놓았다. 해방 직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구성이었다. 박인환 문학관은 '문학'이라는 소재에만 국한하지 않고 작가와 관련된 삶의 모습당시 종로의 모습을 함께 구성해 놓아,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작가의 삶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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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시인은 아버지께 3만 원, 작은 이모에게 2만 원을 얻어 서점을 열었다고 한다. 마리서사의 '마리'는 일본 모더니즘 작가의 작품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프랑스 시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따왔다고도 하는데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마리서사에서는 주로 문학, 예술분야의 서적들을 취급하였는데 김광균, 김기림, 김수영 등 문인, 예술인들과 이곳에서 교류했고, 한국 모더니즘 시 운동의 발상지였다고 한다. 그리고 부인 이정숙 여사도 여기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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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옥'은 김수영 시인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빈대떡집인데, 이곳도 '마리서사'와 마찬가지로 현대 모더니즘 시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꼽히는 곳이라고 한다. 당시 청록파를 중심으로 한 자연예찬의 서정성, 이념 대립에 따른 목적성에 대한 반발로 1930년대 모더니즘을 계승하는 후기 모더니즘의 운동이 일어났는데, 현대 문명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며 현대 문명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바로 그 '후기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여기 '유명옥'에서 이루어진 듯하다. 시인 김수영, 박인환, 김경린, 임호권 등이 모여 후기 모더니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하며, 동인지 [신시론] 제1집이 발간되는 밑거름이 된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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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박인환 시인이 자주 다니며 예술가들이 어울렸던 다방, 술집 등 장소에 대한 소개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박인환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박인환은 상당한 멋쟁이였다고 한다.


저녁이 오면 하루의 일과를 마친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편안한 분위기 그리고 싼 술값과 후한 인심 덕에 이곳 포엠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가난했지만, 항상 말쑥하게 차려입고 다녔던 멋쟁이 시인 박인환도 포엠과 함께 있었습니다.


박인환은 늘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양복을 잘 차려 입어 모델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절마다 계절에 맞는 옷을 찾아 입었다고 하고, 계설마다 마시는 양주의 종류도 달랐다고 할 정도니 상당한 멋쟁이였다. 그가 명동거리에 나타나면 시선이 집중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전시는 2층에도 이어진다.


2층에는 술집인 '경상도집' 하나가 전시되어 있고 그 옆으로 작가에 대한 전시가 있다. 그리고 1층의 명동거리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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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집'은 박인환이 1956년 '세월이 가면'을 쓴 장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당시 박인환이 '경상도집'에서 작곡가 이진섭, 가수 임만섭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은데, 박인환이 시를 즉석에서 썼고 이진섭이 역시 그 자리에서 작곡을 했고, 그 자리에서 임만섭이 그 곡을 불렀다고 전해지는데 그냥 전해지는 이야기인 듯하다. 어쨌든 이 노래는 '명동의 엘레지', '명동의 샹송'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후 가수 박인희가 다시 불렀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세월이 가면'은 바로 박인희의 노래이다.


경상도집에 밀린 외상을 갚기 위해 시를 쓰고 노래를 작곡했다는 설이 있는데, 그래서일까? 모더니스트 박인환의 대표적인 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서정적이다. 하지만 모더니스트라고 해서 꼭 모더니즘만 해야 되는 건 아니니까. 좋은 서정시임은 분명하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 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밴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 박인환, <세월이 가면>


노래 세월이 가면 (박인희, 길병민)
https://youtu.be/Emm4VV08C5A?si=b1e_-FGSMYHTKD6x


2층 계단을 올라가 '경상도집'을 만나면 조그만 공간에 '작가 연보''시세계'가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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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이는 사진 만큼이 '시인' 박인환에 대한 전시의 전부다. 처음 이 공간을 만났을 때 사실 당황스러웠다. 여기는 '문학관'인데 박인환의 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실망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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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환 연보, 시 세계, 번역가 박인환, 영화평론가 박인환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박인환의 시집, 그의 글이 실린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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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난 시인이 이 세상에 무엇을 얼마나 남겼을까를 생각해 보면, 사실 그에 대한 전시가 조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유품도 없었고 다만 그가 남긴 작품만 시집과 잡지들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실 실망감을 안고 문학관을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다른 문학관에서 문득 생각했다. 문학관이 꼭 작가 연보, 작품, 시세계, 유품, 집필실... 이렇게 꼭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로만 구성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살았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던 장소들, 그리고 대중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질 방식으로 전시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1층의 종로 거리 전시를 통해서 오히려 '박인환'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작가였는지 더 선명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그래서 박인환 문학관은 문학을 좋아하든 하지 않든, 박인환을 알든 모르든, 어느 누가 찾아와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문학관이 아닌가 싶다.




한 줄 느낌

- 31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젊은 멋쟁이 시인의 삶을 시각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한 줄 평

- 문학을 좋아하든 하지 않든, 어느 누구라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인상적이고 참신한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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