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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037. 양구인문학박물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양구인문학박물관>

- https://www.ymunhak.or.kr/

관람시간: 10:00~18:00
관람료: 3,000원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오전
문의전화: 033) 482-9800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서른일곱 번째, 양구인문학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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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인문학박물관은 '이해인 시문학과 김형석 안병욱 철학의 집'으로 2012년에 개관했다고 한다. 이후 양구인문학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두 개의 건물이 있는데, 전시관 1관은 이해인 수녀님의 전시관이고, 전시관 2관은 안병욱, 김형석 교수의 전시관이다. 각 전시관마다 세미나실, 휴식공관이 있고 2관에는 어린이 열람실도 있다.


사실 '문학관 투어' 중이라 당연한 얘기지만 양구인문학박물관은 오로지 이해인 수녀님의 '해인글방' 때문에 방문한 것이다. 만일 철학의 집만 있었다면 가지 않았을 곳이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던 중.고등학교 시절, 괜한 친근감에 수녀님이 시인이라는 이유로 이해인 시인을 좋아해 '민들레의 영토', '내 혼에 불을 놓아' 같은 시집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문학관이었다. 그런데 이해인 수녀님의 '해인 글방'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남아 있는 자료가 없다. 눈에만 담고 왔다. 관람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기도 했고, 사진이 없어 아쉽기도 했다.





양구인문학 박물관은 2012년 개관했고, 2018년 2관을 지어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을 개관하였다. 그리고 2024년 1관과 2관을 리모델링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새 문학관 같은 느낌이다. 전시 방식, 설명하는 글씨체나 기획 등이 멋진 미술관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관 1관인 이해인 문학관에 입장하면서 관람료를 내면 2관까지 같이 관람이 가능하다. 관람료가 3천 원인데, 관람료를 내면 '양구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준다. 이거 정말 좋은 시스템인 것 같다. 우리는 두 사람이니 6천 원의 상품권을 받았는데, 중간에 쉬면서 먹을 맛있는 쿠키를 샀다. 우리는 사실 박물관만 관람하고 양구를 스쳐 지나갈 관람객들이었는데, 결국 양구에서 6천 원을 사용하고 간 것이다. 지자체의 많은 문학관들이 무료 개방을 하고 있는데 유료로 바꿔서 지역상품권으로 되돌려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지역 소상공인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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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1관의 입구와 로비만 찍을 수 있었다. 1관에는 '이어짐의 시작 [해인 글방]'은 내년 4월까지 전시된다고 하는데, '해인글방'은 지난 2014년에 전시한 후 이번에 다시 열리는 전시라고 한다. 이후에는 어떤 전시를 하는지는 아직 정보가 없다. 아마 이해인 수녀님의 상설 전시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


이해인 수녀님은 1945년 강원도 양구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1964년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하셨다. 세례명은 '벨라뎃다'이고 수도자명은 '클라우디아'라고 한다. 해인필명이라고 하며, 천주교 잡지 <가톨릭 소년>에서 동시 '하늘', '아침' 등 추천으로 등단했다. 1968년 첫 서원을 하고 1976년 종신서원을 했는데, 수녀님의 첫 시집인 '민들레 영토'가 1976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많은 시를 발표했다. 수녀님은 세속을 사는 분이 아니어서 그분의 일생(수녀로서의 삶, 한 사람으로서의 삶, 시인으로 삶 모두)에 이렇다 할 에피소드들이 많지 않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는 문단의 흐름에 편중하지 않은 독립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수녀님의 시는 '순수한 영혼의 기도'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수녀님 스스로 당신의 시를 '기도하고 사랑하며 쓴 시'라고 말하며, 최근 후반부에 와서는 수술 등 여러 아픔을 겪으며 인생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을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 이해인, <민들레의 영토>


박완서의 단편 소설 '옥상의 민들레꽃'에서도 나타나듯이 민들레는 작고 연약하지만, 더없이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다. 박완서의 소설 속 주인공인 어린 '나'는 엄마가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귀찮아한다는 생각에 자살을 하려고 옥상에 올라간다. 그런데 옥상 한 구석에 '흙이랄 것도 없는 한 줌의 먼지에 허겁지겁 뿌리내리고 눈물겹도록 노랗게 핀 민들레꽃'을 보고 자신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사랑을 깨닫는 내용이 나온다. 민들레는 그런 존재이다. 한 줌 먼지가 모인 구석 어딘가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강인하게 살아가 노란 꽃을 피우고 바람결에 씨를 날려 보낸다.


그래서 민들레가 딛고 서 있는 '영토'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그리고 '애처로이 쳐다보는' 연민이나 '인정'도 거부하고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열매를 맺고자 한다. 바람의 노래를 듣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며 조금씩 영글어가 노란 꽃을 피우고, '당신의 맑은 눈물'이 꽃씨가 되어 멀리멀리 날려 보낸다. 그곳이 바로 '민들레의 영토'이다. 기다림 속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 '기쁨의 꽃씨'를 세상을 향해 날려 보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민들레의 영토'로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무엇으로든 어디에서든 피어나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해인글방'에 대한 간단한 인사글이 있었다. 그리고 수녀님의 연보가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었다. 영상으로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코너도 있었고 친필 원고, 출간 시집, 수녀님의 소장품과 그림, 시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수녀님의 인터뷰 영상도 볼 수 있었고, 전시를 감상하고 난 후 감상을 써서 적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다만, 사진이 없어 많이 아쉽다. 하지만 사진을 찍지 않아서 더 자세하게 전시를 보고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었고 편하게 감상하니 좋았다. 숙제가 없는 하루를 즐기는 느낌 같았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다녀와서 세세한 부분들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는 점이 큰 단점이기도 했다.


'해인글방'은 부산 광안리의 베네딕도 수녀원 안에 있는데, 수녀님이 직접 그 '해인글방'을 가꾸고 계시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신다고 한다. 여기 영구인문학박물관은 그런 소통의 공간을 확장하는 의미로 1년간 전시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해인글방'이 가까운 부산에 있으니 언젠가는 한번 '해인글방'을 가 보고 싶기도 하다.



1
처음으로 사랑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하늘색 원피스의 언니처럼
다정한 웃음을 파도치고 있었네

더 커서 슬픔을 배웠을 쩨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실연당한 오빠처럼
시퍼런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네

어느 날 이별을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남빛 치마폭의 엄마처럼
너그러운 가슴을 열어 주었네

그리고 마침내 기도를 배웠을 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파도를 튕기는 은어처럼
펄펄 살아 뛰는 하느님의 얼굴이었네.

4
아이를 달래는 엄마처럼
가슴이 열린 바다

그는
가진 게 많아도
뽐내지 않는다

줄 게 많아도
우쭐대지 않는다.

5
답답한 마음
바다에 내려놓고
탁 트인 마음 들고 온다

가득 찬 욕심
바다에 벗어 놓고
빈 마음 들고 온다.

7
저녁 바다에서
내가 바치는 바닷빛 기도는

속으로 가만히
당신을 부르는 것

바람 속에
조용히 웃어 보는 것

바다를 떠나서도
바다처럼 살겠다고
약속하는 것

8
바다는 온몸으로 시를 읊는 나의 선생님

대로는 높게
때로는 낮게

어느 날은 거칠게
어느 날은 부드럽게

가끔은 내가 알아듣지 못해도
멈추지 않고 시를 읊는
푸른 목소리의 선생님

- 이해인, 연작시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중에서


중학교 3학년 때 이 시를 처음 접했던 것 같다. 성당에 다녔고, 가톨릭 신앙이 깊었던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래서 더욱 수녀님의 시를 좋아했다. 이 시는 꽤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던 시였다. 바다가 얼마나 많은 노래를 하고, 바다가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아마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게 이때부터였지 않았나 싶다. 수영을 할 줄 몰라 물을 무서워했던 나는 발이 닿지 않는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늘 무서웠는데도, 거대하게 일렁이는 바다를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전시관 2관은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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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2관은 상설 1실 안병욱 전시관, 상설 2실 김형석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 1실 안병욱 전시관 입구에 안병욱 교수의 '인생론'이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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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무엇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행하는 가가 중요한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보람 있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안병욱, <인생론>


이런 명언들이 좋다. 심오한 진리, 현학적인 문장들보다 간결하면서도 기본적인 삶의 태도를 쉽게 전달하는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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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글은 말보다 생명이 길어 두고두고 남는 것이라고 하면서 글을 쓰는 일처럼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열정을 가지고 했던 일이 강연하는 것이라고 한다. 청중의 심금을 울리고 새로운 희열과 용기와 신념을 주는 강연을 하였을 때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강연은 나의 기쁨이요, 보람이다.



이렇듯 자신의 삶에서 열정을 쏟은 분야가 첫째는 강의 둘째는 글쓰기라고 한다. 아마도 대중과의 소통에 많은 의미를 두었던 게 아닌가 싶다. 뿐만 아니라 서예공부에도 열정을 쏟았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데, 많이 반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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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쓴 많은 에세이들과 서예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친필원고, 유품과 서재도 재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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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목할만한 것이 '안병욱 교수 어록'이었는데 와닿는 말들이 많았다. 에세이를 한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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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없는 생은 깊이가 없다. 사색이 없는 생은 얄팍하다. 지혜가 없는 생은 빈약하다. 성찰이 없는 생은 거칠다.

- 성실이란 참이다. 거짓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지성과 능력이 비범하여도 그 지식과 능력이 악한 마음에 지배될 때 인생과 사회에 해를 끼치는 악이 되고 만다. 지식과 능력은 그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니다. 선한 거지에 이끌리게 될 때 비로소 인생의 빛이 되고 힘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은 성실이다. 성실은 우리가 딛고 설 인생이 땅이고, 생활의 반석이다.

- 인생을 예술처럼 살아라. 이 말은 내가 지극히 좋아하는 말이다. 인생이라는 소중한 대리석이 나에게 주어졌다. 이 소재를 가지고 나는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이냐. 인생은 예술이요, 생활은 작품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마음에도 흡족하고 남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명작을 만들어야 한다.



상설 2실 김형석 전시실은 좀 더 최근에 꾸며진 것 같다. 조금 더 밝았고,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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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쓴 저작들에 대한 소개가 있다. 많은 수필을 썼다고 한다. 역시 안병욱 교수처럼 깊은 성찰과 사색적인 글을 많이 남긴 철학자라고 한다. 안병욱 교수는 2013년에 돌아가셨고, 김형석 교수는 현재까지 연세대 명예교수로 살아계신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김형석 교수의 전시실에 친필 원고유품이 더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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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지혜로운 학자들이나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 젊은이들에게 남긴 글들이 항상 눈에 들어온다. 지나고 보니 '젊음'을 이해하게 돼서인지 너무나도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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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점점 감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지만, 그럴수록 문제의식을 가진 올바른 지성인이 필요하다.
꿈이 없는 20대는 죽은 인생이다. 20대는 꿈을 꾸며 살아야 한다. 이상이 없는 40대는 방황하는 사람이다. 40대는 이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젊은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열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며, 그래야 우리 민족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인간은 마흔이 될 때까지 나와 내 가정을 위해 살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마흔에서 예순까지는 반은 가정을 반은 사회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그러다 예순이 넘으면 자녀들은 독립하고 그때부터 하는 일은 사회를 위한 봉사가 되는 법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더 값진 인생을 살며 늙을수록 소명의식을 갖고 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모두가 그런 인생을 살아주기를 바란다.

- 김형석, <요즘 세대들에게 바라는 점>


예순이 넘어 내가 하는 일들 중에서 일부나마 사회에 봉사하는 일이 있어야 할 텐데,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은퇴 이후에도 생계를 위해 바득바득 일해야 하거나, 잘 준비된 노후로 소비만 하며 사는 삶을 살지는 않아야 할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전시관 안에 또 다른 작은 전시관이 있는데 '김형석 컬렉션'이다. 김형석 교수는 평생에 걸쳐 한국 도자기, 특히 조신 시대 백자의 가치를 고찰하고 보존해 왔다고 한다. 그렇게 평생을 수집해 온 600여 점의 도자기를 기증했고, 그중 170점 정도를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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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 사라질 위기에 놓인 도자기들을 모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수집을 시작했다고 하며, 이 도자기들이 잊히지 않고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양구에 기증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값비싸지 않은 도자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결국 버려지고 사라질 위험에 놓인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이 소중한 유산을 보호해야 하는데, 마땅한 보호자가 없으니 저라도 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사동을 비롯한 여러 곳을 다니며 도자기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버려두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기에 도욱더 모으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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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과 두 철학자, 깊은 사색과 명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어쩌면 공통분모가 많은 세 인물의 박물관이었다. 인문학 박물관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한 줄 느낌

- 학창 시절 좋아했던(교과서에서 배운 작가가 아닌) 시인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 감회가 새로웠다.


한 줄 평

- 깊은 사색과 명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한 세 인물의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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