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월하 이태극 문학관
관람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문의전화: 070-8885-3434
#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이태극 문학관 라이딩 영상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서른여덟 번째 월하 이태극 문힉관이다.
월하 이태극 문학관은 강원도 화천에 있다. 문학관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 기억에 많이 남는 문학관이기도 하다. 도심을 완전히 벗어나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데 차량도 거의 없고 사람도 보이지 않아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깊고 외진 곳에 문학관을 지어 놓으면 누가 와서 관람할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도착해 보면 의외로 큰 건물이 기다리고 있다. 규모가 꽤 컸다. 문학관은 2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에는 연구실과 다목적실, 사무실, 생활관이 있고 2층에 휴게실과 전시실이 있다.
1층의 한쪽에 디카시가 전시되어 있는데 조금 더 크게 출력해서 전시했으면 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진과 글씨가 겹치면서 가독성이 떨어져 언뜻 눈에 들어오지 않아 슬쩍 흘려 보고 2층으로 올라갔다. 디카시는 중요한 관람 요소가 아니기도 하고...
2층 올라가는 길에 '월하시조문학상' 수상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실 '이태극'이라는 시인을 전혀 알지 못했다. 문학관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이름이었다. 이미 '월하시조문학상'이 21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제법 큰 규모의 문학관과 21회에 이르는 문학상까지, 나는 모르지만 현대시조에서 꽤 유명한 분인 것 같았다.
게다가 '천관문학관(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15)'에서 만난 '시조 미학의 혁명가'로 불리는 김제현 시인도 '월하시조문학상' 제2회 수상자였다. 김제현 시인이 월하시조문학상 수상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태극 시인의 문학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2층에 올라가면 작은 로비가 있고 입구와 출구가 구분되어 있다.
들어서면 제일 먼저 흉상과 그의 대표 시 중 하나인 '교차로'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선과 선의 흐름이여
손과 눈의 견줌이여
여기는 네거리
네 내가 섰는 곳
우러러 구름길 보다
발길 다시 옮는다
그래 밝고 흐림의
지울 수 없는 교차로
웃다 울다 가는
삶의 도가니 속
굽어서 날빛을 찾는
발길 다시 옮는다.
- 이태극, <교차로>
교차로, 길과 길이 만나는 사거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북적거림,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길 잃은 청춘의 방황, 희망과 절망, 밝음과 어둠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런 교차로의 특성은 여러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사용했는데,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에서 '네가 지금 간다면, 어디를 간단 말이냐?'에서도 그렇고, 김소월의 '길'에서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 복판에 내가 섰소'에서 보듯이, 교차로(사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방황의 공간이면서 새로운 곳을 향할 수 있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공간을 상징하는 소재로 흔히 쓰인다. 그래서 그 문장들이 이제는 진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태극의 '교차로'는 조금 다르다. '교차로'를 구태하지 않은 언어들로 표현하고 있는데, 참신한 문장들 속에서 익숙한 이미지가 교차하며 잔상을 남긴다.
'교차로'를 감상하고 나면 이태극 시인의 연혁과 생가, 유품과 그의 일생을 보여준다. 이어서 그의 학자와 시인으로서의 성장과정을 보여준다.
이태극 시인은 1913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양구에서 보통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춘천에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까지는 강원도청 농무과에서 근무하다 초등 교원시험에 합격하여 1934년부터 10년 정도 교사로 근무했다고 한다. 광복 이후 춘천여자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35살의 나이인 1947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하여 늦깎이 대학생이 된다. 대학 졸업 이후 1953년 이화여대 국문학과 조교수로 부임했고, 1955년 시조 '산딸기'를 발표하면서 등단한다. 1960년 유일한 시조전문지인 <시조문학>을 창간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하며, '한국작가시조작가협회' 창립에 큰 역할을 하였고 '한국문인협회' 안에 시조분과를 둘 것을 주장하여 초대 시조분과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시조에 대한 그의 열정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의 교단생활, 취미생활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석에도 취미가 있었고, 바둑과 여행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한쪽 끝에는 시조의 개념과 흐름, 그리고 현대 시조의 특성과 함께 바닥에는 유명한 현대 시조들이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박재삼(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7) 시인의 시조가 있었는데, 나는 박재삼의 감성이 너무 좋다.
한빛 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구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않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 박재삼, <내 사랑은>
시인의 작품들과 시집들이 전시되어 있다. 감각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보기 좋았고 시선을 끌었다.
특히 '서해상의 낙조'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둥 원구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 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큰 바위 피로 물들며
반나마 잠기었다.
먼 뒷섬들이
다시 환히 얼리드니,
아차차 채운(구름)만 남고
정녕 없어졌구나.
구름 빛도 가라앉고
섬들도 그림 진다.
끓던 물도 검푸르게
잔잔히 숨더니만,
어디서 살진 반달이
함(군함)을 따라 웃는고.
- 이태극, <서해상의 낙조>
김제현 시인에 이어 이태극 시인까지 현대시조 시인을 알게 되면서 현대시조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 시는 평시조 3수가 하나의 시로 연결된 '연시조'다. 초, 중, 종장의 각 장을 2행으로 배열하고(1구를 1행으로 배치) 각 장을 모두 연으로(1장 1연) 구분하고 있는데 이런 형태는 1960년대 일어난 시조 부흥 운동에서 시도된 것이라고 한다. 이 시는 일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일몰이 끝나는 순간까지를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역동성이 어쩌면 자연의 순리, 우리의 삶을 함의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일몰의 끝에서 월출로 이어지는 마지막 수의 종장이 인상적이다. 소멸의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딛고 탄생의 환희를 드러내는 그 종장 하나가 만들어내는 극적 반전이 반달처럼 미소 짓게 한다.
집필실과 원고들, 그리고 데뷔작인 '산딸기', 한국의 시조시인 명단과 '세계 여러 나라의 문자'들을 소개한 전시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출구 쪽에 전시된 '문학과 문자' 코너의 '세계 여러 나라의 문자'는 왜 전시가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태극 시인은 국문학자이면서 시조시인이다. 그가 문자를 연구한 사람도 아닐 텐데 뜬금없이 세계 여러 나라의 문자를 소개하고 있었다. 의아한 부분이었다.
이번 '월하이태극 문학관'에서 한 명의 작가를 알게 되었고, 현대시조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뜻깊고 의미 있는 탐방이었다. 게다가 문학관 가는 길이 너무 좋아 특히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이라면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코스이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건물과 전시물에 대한 관리가 조금 필요할 것 같다는 점이다.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였는지,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건물에 진한 습기가 느껴졌다. 습한 기운 때문인지 1층은 쾌쾌한 냄새가 났다. 다행스럽게도 전시물이 있는 2층은 습기 관리가 좀 되는 듯했지만, 곳곳에 빛바랜 흔적들이 있었다. 약간의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홈페이지가 많이 아쉬웠다. 더 많은 작가에 대한 정보와 문학관에 대한 정보를 담으면 좋을 듯하다.
찾아보니 문학관이 너무 외진 곳에 있다는 평이 많았다. 외진 곳에 있어서 가는 길이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바이크로 달리는 내내 그 길이 너무 좋았다. 외진 곳에 있어서 문학관이 더 좋아 보이기도 했다. 한적한 곳에 있는 문학관이다.
이태극 시인은 대중에게 더 알려져야 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이태극 문학관도 더 많이 알려져야 하는 문학관이다. 문학관 측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파로호를 끼고 있는 문학관이니만큼 휴양시설 같은 것과 연계할 수도 있을 테고, 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홍보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줄 느낌
- 현대시조를 조금 더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뜻깊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한 줄 평
- 한적한 곳에 있어 가는 길이 너무 좋았던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