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게 뻥!
어릴 때 나는 얼굴에 하얀 버짐이 피어 있었다.
엄마가 장날에 사 오는 로션을 덕지덕지 발라도 사라지지 않는 버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로 기름기 있는 음식은 먹기 힘들었다.
빚 많은 우리 집에서 기름기 있는 음식은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다.
주 메뉴가 김칫국 혹은 볶은 김치였다.
사실상 설거지할 때 주방세제 따위는 필요 없었지.
우리 식구들은 마을에 상갓집이 있거나 칠순 잔치가 있지 않으면 기름진 음식을 먹기 힘들었다.
마을 잔치라도 벌어질라치면 잔칫집 입구에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눈치껏 나와 제 자식의 입안으로 전을 넣어주고는 했다.
그날은 동네 아이들의 입술이 기름으로 번뜩거렸다.
나도 아이들과 섞여 엄마를 기다렸다.
상갓집을 다녀온 아빠는 까만 봉지를 들고 왔다.
그 안에는 내가 좋아했던 육전이나 꼬치전이 들어 있었다.
기름진 냄새는 아빠가 들고 온 봉지보다도 먼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가끔 전통시장에서 그 냄새를 맡는다.
기름진 육전 냄새며 각종 전들의 냄새가 그때를 기억하게 한다.
하나라도 더 먹으려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음식을 삼켜 항상 저녁마다 엄마가 손가락을 따주었다.
그 밤에 겁이 많은 나는 홀로 사이다를 사러 가게를 다녀왔다.
사이다를 혼자 먹기 위해서는 무조건 혼자 가야 했다. 동생을 데려가면 나누어 먹어야 했기에 나는 두려움을 꾹 참아냈다.
엄마는 서랍 속에서 실패에 꽂힌 바늘을 꺼냈다.
그 바늘은 이불을 꼬매는 바늘이라 내 눈에 보기에도 굉장히 두꺼웠지만 사이다를 먹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손가락을 따야 엄마가 사이다를 사주었으니 말이다.
바늘이 손가락을 콕 찌르면 까만 피가 나왔다.
엄마가 까만 피를 힘껏 짜내고 나면 신기하게도 트림이 나왔다.
녹이 슨 병따개로 엄마가 사이다를 뻥, 하고 딴다.
엄마가 건네준 사이다를 마신 후 시원하게 트림을 하고 나면 잠이 들 수 있었다.
사이다를 다 마신 후 이미 바닥을 드러났음에도 혀 끝에 병의 주둥이를 대보았다.
달달한 사이다의 맛이 아직 혀끝에 느껴졌다.
아쉬운 나는 병 주둥이에 여러 번 입을 가져다 댔다.
괜스레 후, 바람을 불어 내기도 했다.
여전히 아쉽다.
돈 많이 벌면 사이다를 아주 많이 사서 실컷 먹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돈을 많이 벌지 않지만 이제는 여러 병을 살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다.
사이다는 한 병이면 족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