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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Nov 21. 2022

짝꿍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내 짝은 4학년 담임 선생님의 딸이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선생님 자제들이 그렇듯 음악시간에 피아노 반주를 했고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나와 짝이 되자 책상을 손뼘재기 했다.

그러고는 이 위치가 정확히 반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여러 번 손뼘재기 했다.

금을 그었고 넘어오면 한 대씩 때리자 했다. 금이 그어진 곳에 자신의 자를 두었다. 그 자로 손바닥을 때리자고 했다.

내가 넘어오자 자로 손바닥을 때렸고 본인이 금을 넘을 때는 너도 때리라고 했지만 나는 자를 들어 때리는 시늉만 했다.

시늉이라도 하지 않으면 때릴 때까지 빨리 때리라고 짜증을 냈다.


한 번은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 단둘이 남았는데 무슨 이유로 늦게까지 교실에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집에 가려고 교실을 나섰는데 신발장에 신발이 없었다. 내 신발과 그 아이의 신발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 아이는 4학년 교실로 가서 엄마에게 말했고 언니 오빠들을 시켜 신발을 찾게 했다.

누군가 우리의 신발을 숨긴 것이다. 교실 밖으로 나온 배수관에서 신발을 찾은 기억이 난다.

끝내 내 신발은 찾지 못해서 누군가 건네준 실내화를 신고 울면서 집에 갔다.

다음날 학교에 와보니 내 신발이 있었고 나는 신발을 신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당시 내가 그토록 신고 싶었던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보다도 내 낡은 운동화가 너무 반가웠다.

왕자가 나타나 유리구두와 낡은 운동화 중 어떤 걸 신을래,라고 물었다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내 운동화에 발을 넣었을 것이다(어차피 나는 무도회에 신고 갈 드레스도 없었고 우리 엄마는 계모가 아니었고 나는 착하지 않았기에 요정이 나를 도와줄 리 없었고).


3학년이 되기 전에 그 아이는 전학을 갔다. 그 아이와 친하게 지냈던 반 친구에게 편지가 왔다.

학교로 그 편지를 가지고 와서 편지 내용을 공유했다. 그러다가 대뜸 나를 불렀다.


은영이가 너한테 미안하대. 못되게 군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하네.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냥 듣기만 했다.

무언의 동의였다. 나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것에 대한 무언의 동의. 너는 못된 아이가 맞다는 결론.


나는 전혀 착하지 않았다. 가만히 당하고 있으면 상대가 더 나쁜 아이로 보인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내가 손바닥을 맞음으로써 그 아이가 나쁘게 보이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주눅 든 표정과 약간 겁을 내는 듯한 행동은 상황을 더 극대화시킨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었다.

내면에서는 나도 그 아이의 손바닥을 강하게 치고 싶었고 큰소리로 화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나는 피해자인 척 겁먹은 눈을 하고 말 그대로 못된 아이에게 당하는 착한 아이인 척을 했다.

마음속으로는 그 아이를 비난하고 손바닥을 힘껏 내리치는 상상을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선생님의 딸인 그 아이가 나에게는 강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강해 보이지 않았다면 내가 순순히 손바닥을 그 아이에게 내주었을까.


피해자가 아니라 나는 비겁자였는데

피해자의 탈을 쓴 비겁자였는데

그 탈을 인식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이러니 나에게 요정님이 찾아오지 않았지!

이러니 나에게 산타할아버지가 찾아오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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