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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Dec 09. 2022

우산 아래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산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아직은 하복을 입는 계절이었다.


최근에 빨간 우산을 샀기 때문에 비 오는 날이 나는 좋았다.

낡은 우산일 때에는 비 오는 날이 너무 싫었는데

우산 하나에도 이렇게 감정이 뒤바뀐다.


학원 수업을 막 끝나고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빨간 우산을 꺼내 펴면서

좋아하는 그 애를 생각했다.


짧은 찰나, 그 아이부터 떠올랐다.


우산은 가져왔을까,

그 애와 우산 쓰고 집에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나 정말 착한 아이가 될 거야,

그런 말 같지 않은 소리들을 하면서

천천히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걸었다.


같이 쓰자, 나 우산 없어.


거짓말처럼

그 아이가 내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고

설레는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산이 작았기에 그 아이가 우산을 들었고

우리는 더 가깝게 몸을 붙여 걸었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그 길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비가 멈추지 않고 내리길,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서 오래도록 그 아이와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너무 떨려서 기억도 못할 테니까.


그 일이 있은 후

학원이 끝나면 약속이나 한 듯이 함께 걸었다.


그게 내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정말 오래도록 좋아했고 오래도록 잊지 못했던 그 아이.


공중전화에 수화기가 올려져 있으면

당연하게 가서 그 아이의 집 전화번호를 눌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전화를 받기 전에 나는 수화기를 계속 들고 있지 못하고

다시 공중전화 위에 올려놓았다.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그 설렘과 아픔이 모두 추억이 되었다.


우산 아래 나란히 걸을 때의 설렘을 기억하며

비가 오니까 비를 핑계를 몇 자 적어본다.


여전히 나는

비가 오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산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는

그런 상상.


추신 : 정신 차려, 현실에서 강동원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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