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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Jan 30. 2023

나의 아빠에게 #01 좋아하는 기준

어릴 때는 분명 아빠를 많이 좋아했다.

악몽을 꾸면 아빠 품에 안겼고 그 품이 따뜻했다.


모르는 단어나 한자가 있으면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그럼 한 번도 망설이거나 모른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정말 척척박사처럼 다 말해주고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럼 그런 아빠가 어찌나 자랑스럽던지.


언제부터였을까.

자랑스럽던 우리 아빠가 양심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 말인가.


감히 가난을 인식하면서부터라 말하고 싶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나의 가난, 그 책임을 나는 아빠에게 찾았다.

우리의 가난은 게으른 아빠 때문이고

우리의 가난은 끝나지 않는 아빠의 사업 실패, 아빠의 보증 때문이었다.


노동을 하는 아빠는 작업복을 입었지만 항상 책을 읽었다.

아침이면 신문부터 펴 들었고 잠들기 전 항상 일기를 썼다.

시사 상식이 풍부했고 역사에 관해서는 정말이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아빠는 계속 실패를 했다.

벌이는 일마다 다 실패했고 급기야 다단계까지 했다.

아빠는 아빠의 실패 요인을 엄마에게 찾았다.

가장 대우를 해주지 않아서, 아침 출근하는 사람을 제대로 보필하지 않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대었다.


그리고 아빠는 정말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우리에게 했다.

우리를 방으로 불러서는 너희 엄마랑 이혼을 하겠다고 했다.

너희는 누구와 살지 선택하라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모두 울었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혼을 정말 하는 거구나, 했다.

그러나 그 일이 반복되자 나는 말했다.


얘기 다 하셨으면 나가볼게요.


그리고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절대 따라가지 않아.’


후로는 아빠가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아빠가 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변해서.

우리 입으로 이혼하시죠 그냥, 그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입으로 말만 안 했지 표정으로는 이미 여러 번 그 말을 했다, 나는.


이혼 얘기 안 해서 좋다 생각했더니 이제는 엄마 험담을 시작했다.

일을 하러 간 엄마 험담을 하는 아빠가 더 싫어졌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엄마를 험담하는 게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남편과 다섯 명의 자식, 그리고 시아버지까지 먹여 살리는, 12시간 주야간 맞교대를 하는 엄마 욕을 하는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

엄마 험담은 결국 자식에게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 되었다.

그 결과는 아빠에 대한 경멸이었으니까.


엄마는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아빠 욕은 하지 않았다(못다 한 그 욕을 지금 하고 계신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엄마 욕을 하는 아빠가 더 싫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상황이었다면 엄마는 정말 수백 번 짐을 싸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엄마는 아빠를 버리지 못했다.


가끔 엄마는 머리만 좋지 써먹을 줄 모르는 머리라고 아빠를 평했다.

머리는 좋은데 그 머리를 써먹을 줄 모른다며 답답하다 하셨다.

엄마가 말하는 써먹을 줄 아는 머리는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아빠는 자신이 부잣집에 태어나 누가 아빠를 뒷바라지해 줬다면

정말 한자리했을 거라고 하신다


우리 자매들도 가끔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아빠가 공부 욕심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저 머리로 공부에 열을 올려서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가려고 했다면

우리는 아빠의 빚은 억대가 아닌 몇 백억 대였을 것이고

아휴,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우리 자매들을 위한 하나님의 큰 그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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