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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Feb 06. 2023

나의 아빠에게#02 축생일

우리 자매들에게는 징크스가 있다.

생일 당일이 아니라 미리 생일 축하를 해야 한다.

항상 생일 당일에 아빠가 사고를 쳤다.

그래서 생일 기분을 다 망쳐놓았다.

덕분에 우리 자매들은 미리 생일 케이크를 불고 파티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 내 생일에는 그러지 않았다.


역시 드러운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새벽, 괴성이 들렸다.

또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시집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

하루는 옆집 아주머니가 그러시더란다.


그 집 남자, 괜찮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 새벽에 갑자기 소리 지르고 그러잖아.
아직도 새벽에 소리 질러?



아빠는 그랬다.

뭔가 아빠에게 문제가 생기면 자다가 괴성을 질렀다.

그게 수면 중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항상 새벽이었다.

모든 식구를 깨우는 괴성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정말 감정조절이 힘들다.

금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족을 괴롭히는 아빠를 마음으로는 여러 번 교수대에 올리고 또 올렸다.


내 생일 새벽, 나는 또 괴성을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아침, 또 이어진 괴성.

이건 수면 중 지르는 소리가 아니다. 우리 괴롭히려고 지르는 소리, 의도적인 괴성이다.


나는 이성의 끈이 완전히 끊어졌다.

아빠에게 달려가 있는 대로 악다구니를 썼다. 목이 다 쉬었다.


어릴 적, 엄마는 아빠를 향해 악다구니를 썼다.

자주 싸웠고 엄마가 무언가를 던졌다.

난방비를 아끼느라 우리는 모두 한방에서 잤기 때문에 그 소음을 고스란히 들었다.

진작에 깨었음에도 자는 척을 해야만 했다.


어느 순간 엄마의 행동들을 언니가, 그리고 내가, 동생이 하고 있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는 모습은 내가 싫어하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이성을 잃고 내뱉는 독설들, 그게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가슴에 박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엄마에게 상처되는 말을 많이 했다.

모든 것이 엄마 탓처럼 느껴졌다.


왜 저런 사람과 결혼했냐.

정상이 아니라는 걸 정말 몰랐냐.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이혼했어야지.

엄마 아니었으면 아빠 빚 안 갚았다.


자식으로서 해서는 안될 나쁜 말을 너무 많이 했다.

그게 정말 불효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빠가 우리를 괴롭힐 때면 여지없이 그 말을 내뱉었다.


내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자

아빠는 미안하다, 고 말했다.


너희들에게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듣기도 싫은 말이다.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이다.


아빠에게 계속해서 화를 내지 못하는 건

아빠가 약자라는 것을 아니까 더는 못하겠더라.

그건 너무 비겁하잖아.


아빠가 강자였다면 나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진즉에 버렸을 것이다.

아빠는 여전히 약자였고 나약했다.

그래서 더는 못했다.


오늘도 밉다.

어제도 미웠다.


내일도 미우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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