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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Feb 15. 2024

조문을 다녀왔다

직장 상사의 배우자께서 돌아가셨다.

배우자님은 말기암이셨고 병간호를 하시느라 상사는 이미 살이 많이 빠지신 상태였다.

반쪽이 된 얼굴로 상주가 되어 홀로 빈소를 지키고 계셨다.

여쭤본 적은 없었지만 자식이 없으신 것 같았다.

흘러가는 말이라도 한 번도 자제분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개인사는 묻지 않는 것이 철칙인지라 그저 마음으로 추측만 했다.

홀로 빈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니 그게 맞았구나, 새삼 생각했다.


조문을 끝내고 음료라도 마시고 가라 하셔서

테이블에 놓인 캔 식혜를 땄다.


먼저 한 잔을 따라드리고 나도 남은 것을 따랐다.

딱히 목이 마른 것도 아니었는데 한숨에 다 마셔버렸다.


고생 많으셨어요,라는 나의 말에

그건 괜찮은데 보람도 없는 고생이라 그게 그렇네, 하셨다.


고생의 끝이, 간병의 끝이 배우자의 죽음이라는 게

그 마음의 공허함을 내가 헤아릴 수가 있을까.


내가 죽을 것 같으니까 갔나 봐, 하셨다.

병 간호하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왜 아니겠어.


언젠가 구운 고구마가 생겨 드렸는데

우리 집사람이 너무 맛있게 먹었다며 고맙다 하셨다.

고구마를 집사람이 너무 맛있게 먹었다며

좋아하셨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사모님은

항상 뒤통수가 눌려 있었다.

막 눕다가 일어난, 머리카락이 납작해진 뒤통수.

긴 시간을 누워 계신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하셨다.


눌린 머리를 연신 쓰다듬던,

펴지지 않는 그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사모님의 손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래도 환자라는 건 말하지 않으면 모를 만큼

밝게도 인사하셨는데.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허무의 무게감을 한 움큼 들고 나온다.


한숨은 깊어지고

눈동자는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삶의 끝을 생각해 본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면

나는 지금 받는 스트레스니

고민이니 하나도 하지 않을 테지.


나는 그 마지막 날에 무엇을 하려나 싶다.

아마 가족과 있으려고 할 테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한테

고마웠고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할 것 같다.


엄마 덕분에 나의 삶이

더 행복했고 좋았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빈소에 홀로 앉아 계시는

상사를 뒤로 걸어 나오는데

나는 아마도

상사의 마음을

평생을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자의 죽음을 나는 겪지 못할 테니까

그게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최근에 상을 당하신 지인이 생각났다.

내가 참 좋아하는 분인데

산 사람은 또 살아진다고 하신 그 말이

남은 사람이 할 일이 많다는 그 말이

떠올랐다.


남편분이 말기암이셨고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캐리어에는 풀지 않은 남편의 짐이 있었다.


아직 치우지 못했다고

언젠가는 치워지겠지 하며

서둘러 치울 생각 없다고 하셨다.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렇게 조급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그 모든 걸 그저 내 때에 맞추면 되는 것 같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 같다.


잘 견디시길 기도했다.

잘 이겨내시길 기도했다.


나의 바람이

그분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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