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나비야
실로 오랜만에 나비를 보았다.
세 마리가 나란히 밥 마중을 나올 때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누구 하나만 빠져도 왜 안 보이나 걱정부터 앞선다.
나비가 지난 금요일부터 보이지 않아서 왜 나비는 오지 않는지 걱정이 되었다.
가장 두려운 순간을 염려하고 있다. 나비를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오늘 보여서 참 다행이다.
다행인데 가까이서 나비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나이 듦,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윤기가 나던 털은 푸석해지고 점점 체구가 왜소해지고 있다.
나비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내가 보지 못하지만 나비는 보이잖아. 그래서 마음이 아파.
이별 준비를 해야 하잖아. 이기적인 준비다.
순전히 나를 위한 내 마음 덜 다치기 위한 이별의 준비.
나비가 오지 않는 어떤 날이 온다면 아직은 오지 않은 그날이 너무도 서글퍼진다.
있을 때 잘해야지.
있을 때 맛있는 간식도 주고 살짝 머리도 쓰담쓰담해주고(이런 제길, 쓰담쓰담을 허락해준 게 최근이란 말이다.)
있을 때 잘해줄게.
그러니까 오래 내 옆에서 더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나비야, 이제 아가 좀 그만 낳으렴. 네가 올해도 새끼를 또 낳았다는 제보를 받았어. 이런 말 가혹하지만 언제까지 낳을 거니, 늙었단다 너도. 새끼 낳으면 말이라도 해주던가, 미역국이라도 끓여주게.)
너의 밥 마중을 나는 오래도록 보고 싶다, 나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