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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꽃향기 Oct 31. 2022

달동네 고시촌 - 그곳에도 들꽃은 피네

문득 돌아보기 - 고시촌 원룸 살이의 시작

2021년 10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의 한 원룸.

좁은 골목들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고시원과 원룸들 사이에 내 보금자리가 있다. 마치 이곳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섬 같은 곳이다. 화려한 아파트와 멋진 초고층 건물들과는 거리가 먼 관악산 입구 언덕 끝자리에 자리 잡은 곳. 수 없이 자리 잡은 좁디좁은 1인 가구들에는 각자만의 사연을 지닌 정말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동네 전봇대에는 잠만 잘 곳이라고 적혀있는 10만 원대 고시원들의 전화번호가 즐비하다. 그곳에서 매일의 꿈을 꾸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고단한 하루를 보낸 후 곤한 잠을 청한다. 

내가 살고 있는 원룸은 2.3평이다. 가로 3.2 m, 세로 2.4m로 7.68 m2이라는 공간. 이 좁은 공간에 책상, 냉장고, 싱크대, 욕실이 다 들어간다. 


처음에 이곳에 올 때의 생각은 단순했다. 난 지금 우울한 삶 속에서 탈출할 공간이 필요하고, 나가는 돈도 100만 원 이상 일정 금액 정해져 있으니, 평수가 어찌 되었건 무조건 가장 싼 집으로 간다. 단, 여자이니 이 중 잠김이 되는 안전한 곳으로….

지방에 살고 있던 나는 이틀간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두고 무작정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원룸과 고시원이 가장 많다는 신림역 근처로 와서 방을 알아보았다. 신림동에서 알아볼 방은 처음엔 5곳을 적어두었지만, 하루에 다 알아보기엔 무리가 있어서 비슷한 곳을 추려서 다시 3곳으로 압축했다. 한 곳은 도보로 전철을 탈 수 있는 신림역 근처, 또 한 곳은 신림동 고시촌 쪽의 옥탑방, 또 한 곳은 가장 저렴한 원룸이었다.


신림역 근처의 원룸은 시장 근처의 상가 건물 3층이었는데, 1층에 고깃집과 지하에 PC 방이 있는 구조여서 외부인이 쉽게 출입할 수 있는 구조에, 어둡고 청소가 잘 되지 않아 지저분했다. 두 번째 방은 신림동 고시촌 입구로 버스를 타고 들어와 찍어준 주소를 가지고 찾아갔는데, 그곳은 부동산 중개인이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바로 원룸을 들어가 보라고 하여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옥탑방을 보러 왔는데, 옥탑방은 다 나갔다고 그 자리에서 말을 바꾸었다. 원하는 방도 아닌 데다, 중개인이 직접 와서 안내하지도 않는 태도가 미덥지 않았다. 3번째 방은 봉천역에 있는 부동산에서 소개한 원룸이었는데, 시간이 많이 늦어져 어두운 저녁에 볼 수밖에 없었다. 와 보니 건물은 좀 오래되었지만, 관리와 청소가 잘 되어 있고, 공동 출입문과 개별 원룸이 이중 잠금장치가 되어 있어서 안심이 되는 곳이었다. 난 이곳으로 결정하고 그날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계약서를 작성하려니 이전에 없던 월세에 난방비 3만 원이 추가된단다. 이런 식으로 월세를 올려 받는구나 싶었다. 2월의 세찬 바람이 부는 날 어치피 다른 곳을 다음날 보아도 다른 방들도 비슷한 양상 이리라 생각되어 그냥 계약하기로 했다. 


일주일 후에 나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이사라고 해보았자 입을 옷 몇 가지 넣어온 캐리어가 전부였지만, 신림동 원룸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오랜 기간 서울 생활을 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신림동에는 처음 살아보는 낯섦이 많았다. 

예전에는 직장 생활하기 전의 고시 준비생들이 많았기에 이곳에는 저렴한 식당이 많았다. 칼국수 2500원, 김밥 1500원, 백반이 3000원/3500원 등등… 2021년 짜장면 한 그릇에 5~6000원, 짬뽕 한 그릇에 8-9000원 하는 서울에서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이곳의 물가를 생각하니 다른 곳에서 커피 한 잔에 4-5000원 들여 사 먹는 것이 마치 죄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3-4000원의 밥 한 끼가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내가 이곳에 올 때는 딱 1년만 지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재 내 경제 사정으로는 보증금도 없는 상태에서 에어컨/세탁기 설치된 곳으로 이사 가기에는 무리가 따를 듯하여 고민이 많다. 어쩌면 이곳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아직도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할 부분들이 많다. 주로 살고 있는 연령층도 나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이전에 접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접해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보는 것도 내게는 큰 자산이 되리라.


요즈음 코로나 이후로 한국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밥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물가는 비싸지고 있다. TV나 인터넷에 나오는 세상은 모두가 부자이고, 모두가 화려하며,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것 같다. 정말 다 그런 것일까? 실제 우리가 처한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의 꽃은 또 피리라 믿는다. 향기 없는 거짓된 조화가 아니라 진짜 향기를 품은 들꽃 같은 수많은 삶들도 그 생명력 하나만으로 충분히 고귀하고 존중받을 의미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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