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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꽃향기 Oct 31. 2022

2021년 여기는 서울

2021년 여기는 서울


 한 동안 지방살이를 하다가 2월에 서울에 올라오면서 그동안 가지 않았던 옛날에 서울 직장생활을 하면서 살던 곳들, 자주 가던 곳들을 틈틈히 가 보았다. 추억도 돌아보고, 세월의 흔적도 느껴보고 싶었다. 그 중에 반포에 있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정말 역사도 오래됐고, 내가 옷이나 가방, 기타 액세서리가 필요하면 늘 가던 단골집들이 즐비한 곳이어서 두 서너번 다녀오게 되었다. 새롭게 리모델링하여 많이 쾌적해졌지만, 코로나 시국의 여파로 장사가 예전만 하지 못한 것 같다. 예전엔 없었던 구제 옷들을 파는 곳도 몇 군데 있었다. 

 사람들의 지갑 사정이 많이 안좋아진 모양이다. 내가 있는 작은 원룸에는 옷가지를 놓을 공간도 행거 한 칸이 전부여서 정말 입을 옷 몇 가지만 놓여 있었고, 요즘은 옷 사는 것도 시큰둥하여 거의 옷을 사지 않았는데,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의 옷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3000원에 상의 3개, 아무거나 고르면 되었다. 헌 옷인가 생각했는데, 아니다. 새 옷들이었다. 아무래도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시국으로 해외로 수출도 못하고, 국내 내수 시장에서도 팔지 못한 옷을 그냥 창고 보관비 정도 받고 팔고 있는 듯했다.


중국산도 아니고 국내산 의류를 3개나 살 수 있다니… 놀라웠다. 반팔 원피스 하나, 맨투맨 티 하나, 흰 셔츠 하나, 이렇게 3개를 골랐다. 주인 아저씨가 너무 친절하셨다. 최근에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수출이나 교류도 제한적인 요즘 우리나라에서 의류업에 종사하시는 자영업자분들은 정말 활로를 모색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요식업이나 기타 모든 산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기가 찾아올 때 아무런 안전판 없이 가장 취약하게 모든 피해를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의 자영업자들… 2000년 대 이후 중국의 급부상으로 전세계 제조업이나 영세한 자영업 분야는 엄청난 쓰나미를 겪었고, 아무래도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인해 무너진 기본 토대는 복구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신발 산업, 의류 산업, 기타 등등의 우리나라 70-80년대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평생에 걸쳐 쌓아온 장인의 기술을 이제 쓸 기회조차 박탈당한 상태로 말이다.


 예전에 신발을 만드는 구두 공방이 즐비했던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구두 장인들을 다룬 다큐를 TV에서 보았는데, 예전에는 싸구려 중국산 신발들과 가격 차별화를 두었지만, 지금은 그들과 똑같은 가격을 받아도 일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을 듣고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유통 마진 때문에 대형 상가들이나 대형 브랜드들도 점점 중국산 신발에 의존했을 것이고, 그렇게 신발 산업의 기반은 고사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다이소를 가면 어떤 물건을 사던 무조건 국내산인지 다른 나라 산인지를 꼼꼼히 확인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나라 제품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어떤 상품 분류대에서는 한국 상품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아니면, 가장 찾기 좋은 곳에는 중국산이 진열되고, 정말 찾기 힘든 후미진 곳에 한국산이 놓여있어서 겨우 찾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중국산을 알아보는 쉬운 방법은 디자인이 화려하거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즉, 한국산 제품들은 디자인 개발에도 역량을 쏟기 힘들다는 반증일 것이다. 다이소에 가면 가격이 좀 비싸도 무조건 한국 제품을 사는 편인데, 어쩌면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먼 훗날에는 사치가 될 수도 있으리라. 

요즘에는 마트에서 파는 과자들도 우리나라 브랜드가 아니면 어디서 온 젤리인지 과자인지 일일이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남아산일 수도 있고, 중국산일 수도 있다. 가격은 한국산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유통 마진이 상당한 것 같다.


아이들이 먹는 간식거리까지도 동남아, 중국에서 들어오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 영세업체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갈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과자업체나 사탕업체들을 보면 그 역사가 100년도 넘는 가족 기업들이 많고, 그 자부심도 대단하다. 또한 사람들도 애정을 갖고 그런 기업의 사탕이나 과자를 산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역사가 바탕이 된 가족 기업들이 많지 않아 많이 아쉽다. 아이들에게도 전통이나 역사는 중요한 무형 자산이자 저력이 될 수 있는데, 보존되지 않고, 파괴되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것만이 최선인 것처럼 변해가는 시류가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모래성을 쌓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무조건 빨리 변하고, 바뀌고, 속도감있게 진행하는 것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가장 좋은 것처럼 여기는 세태는 그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을 도태시키고, 낙오자처럼 여기며, 배려하지 않는다. 빨리 변화하고, 인터넷화, 온라인화시키는 것이 좋지 못한 것은 각 문화와 기술적 유익성을 누리지 못하는 세대와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린 세대가 서로 단절되게 만들고, 소통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를 넘어서 세대 간의 반목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가 된다.


세대 간에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살아온 삶을 기억하며, 환경과 산업 등 새로 살아갈 세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주고, 공존하며, 가장 합당한 세대 간의 절충안을 찾아가는 노력이 너무나 필요한 시대이다. 자원 하나 제대로 없는 이 좁은 국토에서 인적 자산이 가장 큰 재산이자 저력이 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기술과 역량을 지닌 성실한 국민들이 일한 만큼 보람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독립을 성취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의 미래도 밝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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