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기다림

잃어버린 계절의 끝에서

by 프리지아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한 명씩 일어났고, 우리는 천천히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해 지기 전까지. 다섯 시 전에는 여기로 돌아오자.”

문을 열기 전, 민혁이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젯밤 우리가 그려 둔 지도에는 체크된 곳이 다섯 군데 있었다. 지금 머무는 곳에서 가까운 순서대로였다. 첫 번째 큰 건물은 재현이와 재민이가, 두 번째 건물은 나와 선우, 민혁이 가보기로 했다.

“조심해.”

나는 재민이에게 가지고 있던 손목시계를 건네며 말했다.

“응. 너도.”

재민이가 웃으며 답했다.

“가자.”

민혁이 나를 불렀다.

우리는 그렇게 두 조로 나뉘어, 아홉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출발했다.


우리가 도착한 건물은 역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커서 조금 놀랐다.

“4층이네… 한 층씩 가보자.”

선우가 고개를 들어 꼭대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어쩌면 기차가 있을지도 몰라.”

민혁이 답했다.

나는 두 사람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역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가게 안도 모두 비어 있었고, 불이 켜진 간판들만 덩그러니 번쩍이고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도 모두 멈춰 있었다.

이건 마치—

“재난이라도 난 것 같네.”

선우의 말에 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그러게. 다 부서져 있고 텅 비어 있고…”

민혁도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는 천천히 1층을 둘러보고, 2층… 그리고 3층까지 올라갔다.

마지막 4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던 순간이었다.

나는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을 느꼈다.

“왜 그래?”

갑자기 멈춰 선 나를 보고 선우가 물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3층 계단 맞은편에 있는 화장실 쪽을 바라봤다.

“뭔가 있어.”

분명히 있었다. 우리를 향해 있는 시선이었다.

나는 계단을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빨리 그곳에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 혼자 가지 마!”

민혁이 나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며 소리쳤다.

나는 최대한 빨리 달렸지만, 완전히 낫지 않은 발목 때문인지 결국 중간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괜찮아?”

뒤따라오던 민혁이 급하게 나를 붙잡으며 물었다.

“저기에…”

나는 여전히 화장실 쪽을 바라봤다.

‘빨리… 가야 하는데.’

이유도 모른 채 마음만 조급해졌다.

“업혀.”

선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같이 가보자. 그러니까 업혀.”

주저앉은 채 선우의 등을 바라보고 있자, 선우가 조금 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등에 업혔다.

선우와 민혁은 내가 말한 화장실 쪽으로 함께 가 주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더 볼 곳 있어?”

선우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니… 미안.”

나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괜찮으니까. 제발 말하고 같이 가. 혼자 다니지 않기로 했잖아.”

선우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말했다.

“응… 미안.”

나는 선우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작게 답했다.

“발목은 어때? 걸을 수 있겠어?”

민혁이 나를 위로하듯 물었다.

“괜찮아도 업혀 있어. 불안해서 떨어질 수가 있어야지.”

선우가 내 대답을 가로채듯 말했다.

“응… 조금만 더 있을래.”

나는 반성하는 사람처럼 조용히 말했다.

여전히 머리는 선우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나는 왜 갑자기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만약 정말 무언가가 있었다면, 어제 봤던 사람 같지 않은 존재… 아니면 괴물 같은 것일 텐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두려움보다 익숙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왜였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선우와 민혁은 4층까지 모두 둘러봤고,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제야 나는 선우의 등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기차도 없네.”

민혁은 창밖으로 보이는 텅 빈 기찻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게… 희망이라곤 없네.”

선우는 민혁이 메고 있던 가방을 열며 답했다.

가방 안에는 출발하기 전에 챙겨 온 음식과 물, 그리고 여러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일단 먹자.”

선우가 음식들을 꺼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1시야.”

민혁이 가방에서 알람시계를 꺼내며 말했다.

“아…”

나는 다시 벽의 시계를 바라봤다.

“시계가 멈췄구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이 세계가 다시 한 번 실감났다.


우리는 간단히 밥을 먹으며 지도를 펼쳤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한 곳을 더 가 보기로 했다.

“여기 어때? 좀 더 가까워. 돌아갈 시간도 생각해야 하니까.”

민혁이 지도 위 한 곳을 가리켰다.

지금 있는 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가자.”

선우가 가방을 다시 메며 말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꽤 큰 산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커 보여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이 산… 어디까지 이어진 거지?”

민혁이 끝없이 이어진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우리가 왔던 바다 쪽 같지 않아?”

선우가 확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돌아가자.”

나는 두 사람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상하게도, 저 산을 올라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애들이랑 다 같이 오자.”

나는 소매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래. 돌아가자.”

민혁이 먼저 몸을 돌렸다.

“가자.”

선우도 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일찍 왔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건 재민이었다.

“어. 우리가 갔던 건물은 역이었어. 아무것도 없었고. 너희는?”

민혁이 매고 있던 가방을 재민이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우리는 꽤 큰 건물이었는데. 영화관이랑 백화점… 같은 곳이었어.”

재민은 기억을 더듬다 재현이를 바라봤다.

“맞지?”

“응. 우리도 아무것도 없었어.”

재현이가 짧게 답했다.

재현과 재민은 건물이 꽤 컸지만 내부는 텅 비어 있었고, 시간이 남아 건물 뒤에 있던 공원까지 둘러보고 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보다, 이재현. 얘 발 좀 봐봐.”

선우가 내 옆에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나를 그 위에 앉혔다.

“왜? 또 아파?”

재현이는 곧바로 내 앞에 앉아 발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

살짝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올라왔다.

“더 부었네. 무리했나 보다.”

재현이는 나보다 더 인상을 쓰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그의 손에서 발을 살짝 빼며 말했다.

“올라가자. 업혀.”

그때 재현이 옆으로 민혁이 몸을 굽혔다.

나는 별 말 없이 민혁의 등에 몸을 맡겼다.

“먹을 거라도 좀 더 찾아볼까?”

재민이 가방을 챙기며 물었다.

“그래. 우리가 다녀올게.”

재현이가 선우와 재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와 나를 업은 민혁은 우리가 머물던 빈 아파트로 먼저 돌아왔다.


민혁은 거실 벽 쪽에 나를 조심히 내려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물었다.

“너 아직도 재현이 불편해?”

나는 놀라서 민혁을 바라봤다.

“그 일 이후로. 아직도 불편하냐고.”

민혁은 내 앞에 앉아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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