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계절의 끝에서
사고가 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뜬 나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찬영의 얼굴을 보며 분명 깨어날 거라고 믿었다.
찬영과 나와 달리 크게 다치지 않았던 애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찬영이 깨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사고 이후 재활과 치료 때문에 1년을 휴학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찬영을 보러 병원에 갔다. 선우는 합격했던 대학교 등록을 취소하고 재수를 한다며 나와 함께 병원을 다녔다.
“나 너랑 같은 학교 갈 거야.”
병원에 가던 길, 선우가 말했다.
“왜? 너 붙은 곳도 체대로 유명했잖아.”
내가 묻자 선우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아는 애 한 명쯤 있으면 든든하지 않아?”
나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나 때문인 것 같았다.
그 후로 나와 선우는 일주일에 다섯 번은 병원을 찾았다.
“재민이가 왔다 갔나 보네.”
나는 병실 옆에 놓인 사진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 혼자 깨어났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퇴원한 뒤에는 애들을 피하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매일 집에 찾아와 밥을 먹자며 나를 밖으로 끌어낸 건 선우였다. 덕분에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시간은 줄어들었다. 공허함도 조금씩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애들을 마주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선우도 그걸 느낀 것 같았다.
항상 다른 애들이 오는 시간을 피해서 나와 병원에 와 주었다.
“가자. 오늘 민혁이랑 재현이도 온다고 했어.”
선우가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는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백선우?”
선우의 이름을 부른건 민혁이었다.
“뭐야. 너네 빨리 왔네.”
민혁 옆에는 재현이도 있었다.
선우는 자연스럽게 한쪽 팔로 나를 자기 등 뒤로 숨기 듯 보냈다.
나는 그의 등 뒤에서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응… 생각보다 일찍 마쳐서…”
재현이가 말을 흐렸다.
어째서인지 그의 시선이 나에게 향한 것 같았다.
나는 끝까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실, 사람들과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모두가 나를 비난할 것 같았다.
나는 선우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겼다.
“우리 먼저 갈게. 다음에 보자.”
선우는 바로 인사를 하고 나를 데리고 병원을 나왔다.
“괜찮아?”
병원을 나서자마자 선우가 물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찮아. 집에 가자.”
선우는 더 묻지 않고 조용히 내 옆을 걸어주었다.
그 다음 날, 전화가 한 통 왔다.
사고가 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찬영이가…”
선우였다.
오늘은 병원에 가기로 한 날도 아니었다.
선우는 민혁에게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고. 데리러 오겠다는 말에 나는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곧바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나를 찾은 건 재현이었다.
나는 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다리 위를 걷고 있었다.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무작정 걸었던 것 같다. 누군가 뒤에서 내 팔을 잡아당겼고, 나는 그대로 그 사람 품에 힘없이 안겼다.
“하…”
안도의 한숨이었다.
강하게 끌어안은 탓에 고개를 들 수는 없었지만, 재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향기, 숨소리, 목소리.
아마 내가 병원에 오지 않자 선우와 민혁, 재현까지 나를 찾으러 다녔던 것 같았다. 재현은 내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사람처럼 한 손으로 나를 꼭 붙잡은 채 다른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찾았어. 응, 바로 갈게.”
전화를 끊은 뒤 그는 내 어깨를 잡고 나를 조금 떼어냈다.
“미안해. 너무 늦게 왔지.”
재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의 눈을 바라봤다.
“찬영이 보러… 안 갈 거야?”
재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후 이야기는 흐릿하다.
재현이는 말 없는 나를 데리고 찬영의 장례식장으로 갔다. 나는 그저 찬영의 사진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민혁이 내 손을 잡고 잠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벤치에 나를 앉힌 뒤 그가 말했다.
“울어.”
나는 그를 바라봤다.
“참지 말고 울어. 너 한 번도 안 운 거 알아?”
사고 이후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사실은 넘쳐나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너도 눈 못 뜨고 있을 때 우린 이미 알았어. 찬영이 힘들다는 거.”
민혁이 조용히 말했다.
“너한테 말 못 했지만… 찬영이 많이 다쳤어. 더 아프지 않아야지.”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내가 울면… 정말로… 끝인 것 같잖아.”
갈라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울어. 찬영이도 그걸 바랄 거야.”
민혁은 조용히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한참을 울었다. 엉엉 소리를 내기보다는, 울음을 참고 눈물만 계속 흘렸다. 그 옆에서 민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함께 있어 주었다.
그게 민혁만의 위로 방식이었다.
“불편할 게 뭐 있어…”
나는 살짝 민혁의 눈치를 보며 답했다.
장례식장 이후로 선우와 민혁은 종종 만났지만, 재현과 재민은 여전히 마주치지 못했다.
재현은 가끔 집 앞까지 찾아왔지만 나는 만나지 않았고, 재민은 오랫동안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더 먼저 다가가지 못했다. 나와 재민을 번갈아 살펴주던 다른 애들에게도 많이 미안했다.
“너 잠깐 이리 와봐.”
민혁이 나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왜?”
나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말해. 너 아직도 재현이랑 재민이 불편하지?”
민혁은 다그치듯 물었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이래.”
나는 민혁을 피해 다시 거실로 나가려 했다.
문을 여는 순간, 민혁이 나를 붙잡아 다시 자기 쪽으로 돌렸다.
“이젠 좀 사실대로 말해.”
민혁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너 찬영이 마지막에, 병원 오던 날.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재현이가 찾았을 때 왜 그 다리 위에 있었냐고.”
답답하다는 듯 이어지는 질문이었다.
모두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다들 내 눈치를 보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더 미안해졌다. 어쩌면 나와 같이 힘들었을 아이들에게, 나는 또 하나의 짐이었을지도 모른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병원에 갔었어.”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3년이 지나서야 꺼내는 이야기였다.
“병원에 갔었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어.”
나는 민혁의 눈을 보지 못했다.
“왜?”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너희가… 울고 있었어.”
나는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날, 병원에 도착해 찬영의 병실 앞까지 갔다. 하지만 문을 열지 못했다. 이미 나보다 먼저 도착한 애들이 병실 안에 있었다.
재민을 달래고 있던 선우.
조용히 울고 있던 민혁과 재현.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지금 들어가면, 모두가 나를 탓할 것 같았다. 그럴 애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이 모든 일이 내가 나타나서, 나와 함께해서, 내가 깨어나서 생긴 일이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사실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 나 때문이라고.
그래서 문을 열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병원을 뛰쳐나왔다.
“그냥 걸었어. 생각 없이 걷다 보니까… 거기였어.”
나는 끝내 얼버무리듯 말했다. 말을 마치자마자 도망치듯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멈춰 섰다. 방 문 앞에 선우와 재현이, 재민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 들었겠지…’
나는 눈을 찌푸렸다.
“잠깐 얘기 좀 하자.”
나를 붙잡은 건 선우였다.
나는 선우에게 이끌려 거실로 갔다.
모두가 둘러앉았다.
나는 민혁을 원망하듯 쳐다봤지만, 민혁은 늘 그랬듯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내가 너 혼자 땅 파고 있는 거 알아도 모른 척했어.”
선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근데 이렇게까지 깊게 파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고 이후에 우리 피했던 거… 네가 힘들어서라고 생각했어.”
재민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그냥 기다려주자고 했었고. 근데…”
재민은 잠시 말을 멈췄다.
“…우리 때문이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봐.”
민혁이 덧붙였다.
“너 혼자 무슨 생각 하고 있었던 거야.”
이건,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이야기였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아니… 나 때문이야.”
마침내 깊게 묻어둔 이야기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