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고백

잃어버린 계절의 끝에서

by 프리지아

엄마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아빠는 살아 있었지만, 마지막 기억은 좋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이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말하던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혼자 살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소중한 건 결국 다 사라진다고.


그래서 더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 찬영과 친구들을 만났다.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래도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욕심을 냈다. 어쩌면 그 사고도… 내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거 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무서웠다.

“사고 났을 때… 희미하게 기억이 있어.”

버스에서 튕겨 나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을 때였다.

힘겹게 눈을 떴다. 그때 내 앞에 찬영이 있었다. 찬영이는 나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하지만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다. 내 얼굴을 확인하고 무언가 말을 했다. 하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눈만 뜬 채 찬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찬영은 그런 나를 보며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먼저 눈을 떴고, 말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

“근데 왜… 내가.”

말이 끝나지 않았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그런 말이 어딨어.”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재현이가 갑자기 말했다.

“왜 너냐고?”

재현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우린 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재현이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단 한순간도 너랑 찬희를 비교한 적 없어.”

“너랑 찬영이 둘 다 눈 못 뜨고 있을 때도, 너가 깨어난 순간에도.”

재현이의 눈이 붉어져 있었다.

“우린 한 번도 그런 생각 한 적 없다고!”

거실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감정이 격해지자 상황을 정리한 건 민혁과 선우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벽에 등을 기대 주저앉았다. 언젠가 내 진심을 말하는 날이 온다면, 이런 식은 아니길 바랐었다.

나는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최악이야…”




졸업여행을 가기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꽤 머네.”

나는 재현이의 대학과 내가 합격한 대학의 위치를 비교하며 말했다. 버스로 삼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가까운데?”

재현이는 내 휴대폰 화면을 힐끗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주 갈게.”

자주 온다는 말에, 나는 굳이 왜냐고 묻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재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도 그 시간을 더 오래 이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현이도 같은 마음일 거라고, 자연스럽게 믿고 있었다.

“응. 나도.”

나는 재현이를 보며 웃었다.

내 웃음에 답하듯 재현이도 부드럽게 웃었다. 그 미소가 참 예뻤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행복하다.

나는 그렇게 재현이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뒤, 우리는 다시 한없이 멀어졌다.

나는 휴학을 했고, 선우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도록 재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가끔은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찬영의 얼굴이 따라 떠올랐다.

마치 누군가 속삭이듯이.


‘너는 행복해지면 안 돼.’


그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방 안에 가둬버렸다. 밖으로 나가지도,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끌어내 준 사람은 선우였다. 거의 1년을 붙어 다니듯 함께 지냈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하게 됐다.

이제 선우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다고.

그래서였을까.

이 이상한 세계에서 재현이가 나를 챙겨주고 말을 걸어올 때마다, 나는 조금 어색해졌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걸…

민혁에게 들켜버렸다. 민혁이 눈치챘다면, 분명 재현이도 느꼈을 것이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민혁이었다.

“밥 좀 먹어.”

민혁은 간단한 먹을거리를 들고 들어왔다.

“너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애들이 많이 서운한가 봐.”

민혁은 재민과 재현을 대신해 말하는 것 같았다.

“알아…”

나는 작게 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민혁은 내 앞에 앉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고 있던 날 말이야. 재현이가 너 업고 눈 내리는 도로를 삼십 분 동안 달렸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민혁은 그날의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갔다.


민혁과 선우, 재현, 재민은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어서 사고 직후 버스 안에서 눈을 떴다고 했다. 옆으로 넘어간 버스에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밖으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나와 찬영을 찾았다고 했다.

우리는 앞쪽 자리에 앉아 있었고, 사고 충격으로 버스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애들은 눈이 내리는 도로 위를 흩어져 우리를 찾았다. 그리고 도로 끝에서 우리를 발견했다. 그때 나는 물론이고, 찬영이도 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산길이었고 눈도 많이 내리고 있어서 구급차가 바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래서 재현이는 나를 업었고, 민혁은 찬영을 업었다. 그리고 다 같이 도로 아래쪽으로 달렸다.

“나는 숨이 너무 차서, 선우가 찬영이를 대신 업고 달리기도 했어.”

민혁은 잠깐 말을 멈췄다.

“근데 재현이는… 끝까지 너를 업고 달렸어.”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놓으면 사라질 것처럼.”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눈을 떴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입원실 문을 세게 열며 뛰어 들어오던 재현이.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때 나는 단순히 생각했다.

‘내가 꽤 오래 눈을 못 떴구나.’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나를 안고 필사적으로 달리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그때 재현이가 느꼈을 감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을 것이다.

“너가 우리를 피했던 것도, 우린 네가 많이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어.”

민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큰 사고였잖아. 그리고 우린 결국 찬영이를 지켜주지 못했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근데 그게 되도 않는 죄책감 때문이었던 거면…”

민혁은 피식 웃었다.

“넌 진짜 멍청했던 거야.”

“미안…”

나는 작게 말했다.

내 죄책감에만 갇혀 있었다. 나와 같이,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었을 아이들의 마음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됐어.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밥 먹고 좀 쉬어.”

그는 고개 숙인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방을 나갔다.

나는 그대로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문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다시 문이 열렸다. 들어온 건 선우였다.

“누워서 자.”

선우는 조용히 이불을 펴며 말했다.

“너 그날 이후로 말도 안 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을 때, 진짜 죽을 맛이었거든.”

선우는 내 팔을 살짝 잡아 얼굴을 가린 팔을 내려놓게 했다.

“우리 다신 그때로 돌아가지 말자. 내가 어떻게 데리고 나온 건데.”

나는 고개를 들어 선우를 바라봤다. 어두워서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넌 그때… 왜 나를 찾아왔어?”

나는 조용히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나를 찾았을까. 선우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난 너랑 거리 두는 거 못 해.”

선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잘 모르겠을 땐 그냥 나 믿고 내 옆에 있어.”


잠깐의 침묵.

“그거면 돼.”

‘옆에 있으라니.’ 특별한 이유도, 설명도 없었다. 그냥 옆에 있으면 된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얼른 자.”

선우가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내일은 안 가본 곳 가기로 했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선우는 방을 나갔다.

나는 선우가 깔아 두고 간 이불 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쩐지,

오늘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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