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여름날의 기억

잃어버린 계절의 끝에서

by 프리지아


운동장 한쪽, 아무도 없는 그늘에서 찬영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교복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눈을 살짝 가늘게 뜨고.

“초점은 이렇게 맞추는 거야.”

찬영이 내 손을 잡아 렌즈를 돌려주었다.

“흐릿하면 안 돼. 네가 보고 싶은 걸 또렷하게 만들어야지.”

나는 뷰파인더 너머로 운동장을 봤다.

세상이 작은 네모 안에 갇혀 있었다.

“셔터는 세게 누르지 말고, 숨 멈췄다가, 이렇게.”

찰칵.

그 순간,

나는 카메라보다도 찬영이를 더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

빛이 그의 얼굴 옆선을 따라 번지고 있었다.

눈이 반짝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의 찬영은 정말로 빛나고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들고 있을 때 사람이 이렇게까지 환해질 수 있구나, 그때 처음 알았다.


며칠 뒤,

동아리실에선 작은 암실 냄새와 종이 마르는 소리가났다.

책상 위에 인화된 사진들이 흩어져 있었다.

“와, 이거 누구야? 잘 나왔다.”

민혁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내 얼굴이었다.

햇빛을 등지고 웃고 있는 모습.

“역시 최찬영”

재민이 찬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말했다.

그때 재현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거 내가 찍은 건데.”

재현의 말에 잠깐 공기가 멈췄다.

나는 괜히 그 사진을 다시 내려다봤다.

빛을 등지고 웃고 있는 나.

“뭐야, 너였어?”

재민이 피식 웃으며 재현의 어깨를 툭 쳤다.

재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귀 끝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그때 선우가 사진 더미를 뒤적이다가 툭 끼어들었다.

“야, 나도 있어.”

“뭐가.”

민혁이 비웃 듯 말했다.

“내가 찍은 거. 얘 제일 예쁘게 나온 거.”

선우가 한 장을 번쩍 들었다.

웃고 있는 내가 옆모습으로 잡혀 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어지고,

눈이 살짝 감긴 채로 웃고 있는 순간.

“이건 내가 찍은 거야”

선우는 괜히 덧붙였다.

“왜 다들 너만 찍냐.”

민혁이 슬쩍 웃었다.

재민이 그때 다른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이건 또 뭐야.”

민혁과 내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었다.

체육관 앞, 땀에 젖은 채로 웃고 있는 우리.

나는 몰랐다.

저런 표정으로 웃고 있었는지.

“오.”

민혁이 그 사진을 보고 짧게 소리를 냈다.

그리고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구도 좋네.”

입꼬리는 분명히 올라가 있었다.

“야.”

선우가 바로 반응했다.

“왜 둘만 이렇게 잘 나와?”

재현도 아무 말 없이 그 사진을 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되게 잘 찍혔네.”

근데 그 말은 사진이 아니라, 그 장면 자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건 누가 찍은 거야?”

내가 묻자, 찬영이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웃었다.

“그건 내가 찍었지.”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그 순간, 동아리실 창문으로 들어온 빛이 찬영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카메라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고,

웃고 있던 그 애는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사진 위로 웃음이 겹쳐졌다.

“아, 다음엔 나랑도 찍어.”

“질투하냐?”

“아니거든.”

“완전 하네.”

그때는 그냥 시끄럽고 웃겼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를 너무 많이 남기고 있었다.

몰랐다.

그게 이렇게 소중해질 줄은.




드디어 우리가 머물던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재민의 목에 걸린 사진기와 손에 쥔 사진을 보며 그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내가 먼저 씻는다”

민혁이 먼저 말을 꺼내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 명씩 재정비를 했다.

지난 밤의 흔적을 모두 지운 후 거실에 모였다.

“이게 왜 여기 있을까”

우리는 모여앉아 가져온 사진을 보고 있었다.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며 침묵이 이어졌다.

“이 세계는.. 우리와 관련이 있는 걸까”

재민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민혁이 물었다.

재민은 어제 산에서 본 공터 이야기를 했다. 재민이 그 공터가 우리가 갔던 곳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민혁과 재현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것 같았다.

“어..”

선우가 갑자기 당황한 듯 보였다.

“왜?”

나는 두리번 거리는 선우에게 물었다.

“아.. 아니야”

선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을 돌렸다.

“몰랐어.. 그 공터가 우리가 갔던 곳이라니.. 학교 옆에 있던 곳 맞지?”

“응. 맞아”

선우의 물음에 재민이 답했다.

“나도 처음엔 몰랐어. 산에서 내려오고 생각났어.. 어제는 미안.. 다들 나때문에”

재민은 어제 일을 생각하는 듯 보였다.

괴물들에게 쫓기던 걸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그에게 말했다.

“맞아. 어제 일로 알게된게 많잖아”

재현이 동조했다.

재민은 고맙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럼 내일은 선우랑 재민이가 갔던 방향으로 올라가보자. 그 공터에 뭔가 있을지도 몰라”

민혁이 말했다.

‘벚꽃나무..’

나는 혼자 생각했다. 공터에서 무언가를 보게된다면 그건 벚꽃나무일 것이다.


우리는 그제서야 미뤄뒀던 허기를 채웠다.

밥을 다 먹고는 지난 번 선우와 갔던 마트에 다 함께 가서 필요한 것들을 더 가져오기로 했다.

다 함께 마트에 가서 카트에 물건을 싣고 웃으며 돌아오는 길은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함께 있으면 늘 웃음이 끊이질 않던 그 때처럼.


집으로 다시 돌아와 나는 재현이와 함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봤다. 옥상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이 세계는 여전히 뭔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사실 .. 처음부터 익숙한 느낌이었어..”

나는 옥상 난간에 나란히 서 있던 재현에게 말했다.

재현이와 함께 눈을 떴던 그 도로도, 재민이를 발견한 바다도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었다.

“재민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까.. 처음에 갔던 영화관이랑 역도.. ”

재현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함께 갔던 영화관, 기차역.. 바다.. 공터..

“그럼 여긴? .. 이 아파트는.. ”

나는 말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심장이 세게 뛰었다.

난간을 잡고 있던 손은 심장을 움켜잡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에 호흡이 빨라졌다.

“말도 안돼…”

재현도 많이 놀란 눈치였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알고있었다.

아파트 앞에 보이는 놀이터,

마트,

공원..

여긴..


내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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