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계절의 끝에서
눈을 떴을 땐, 창밖에 해가 떠 있었다.
밤새 무거웠던 공기가 조금은 옅어져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길을 따라,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때였다.
골목 끝, 오래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관.
불은 꺼져 있었지만, 유리창 안쪽으로 희미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왜?”
재현이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저기.”
대답은 짧았지만,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유리창 안에 보이는 낡은 액자들, 천장에 매달린 조명, 벽을 가득 채운 빛바랜 사진들.
어딘가 이상하게 익숙했다.
“가볼래?”
재현이 말했다.
“다 같이.”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상하게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발은 이미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있었다.
문을 밀자, 종소리 대신 낮은 마찰음이 울렸다.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먼지가 떠 있고, 공기는 오래 묵은 종이 냄새로 가득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벽 한쪽에 놓인 테이블, 정리되지 않은 필름 통, 빨래집게로 걸려 있는 인화지들.
“…뭐지.”
낯선 공간인데, 가슴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느낌.
“이상하게… 익숙하지 않아?”
내 말에 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나는 한 발 더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서 본 적 있는 구조였다.
창문 위치.
책상 배치.
암막 커튼이 달린 안쪽 공간까지.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맞춰지다가—
“……아.”
숨이 멎었다.
“동아리실이야.”
내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고등학교 때… 사진 동아리실.”
정적.
재현이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렸다.
“말도 안 돼…”
선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왜 여기서 그게 나와.”
그때,
“……이거.”
재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재민은 한쪽 선반 앞에 서 있었다.
손에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낡은 바디, 모서리의 긁힌 자국, 스트랩에 남은 작은 흰 실밥.
찬영이 쓰던 카메라와 똑같았다.
재민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같아.”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찬영이 거랑.”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그때, 안쪽에서 민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여기 좀 봐.”
우리는 급히 안쪽으로 향했다.
작은 테이블 위에 인화된 사진들이 흩어져 있었다.
오래돼서 색이 바래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
운동장 같은 배경. 웃고 있는 모습.
얼굴은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 같지 않아?”
재현이 낮게 말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는 사진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야…”
재민은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일단… 가져가자.”
민혁이 먼저 말했다.
“여기 오래 있고 싶지 않아.”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사진 몇 장과 그 카메라를 챙겼다.
문을 나서는 순간, 등 뒤에서 공간이 조용히 숨을 죽이는 느낌이 들었다.
골목으로 나오자 해는 이미 더 높이 떠 있었다.
그런데도, 등골이 서늘했다.
우리는 말없이 집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마치,
뒤에서 누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재민의 목에 걸린 카메라가 달그락, 작게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이상하게도 오래전의 여름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