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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Feb 16. 2024

스트레스를 넘어서라

(부제; 스트레스를 쉽게 넘어설 만한 대응 논리와 기준을 가져라)


스트레스를 쉽게 넘어설 만한 자신만의 대응 논리와 기준을 한번 가져 보아라!

     

“아무리 극심한 스트레스에도 당황하지 말아라.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라. 

  결코 피하려 하지 말아라.

  당신이 피할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낙오자로 만든다.

  아무리 숨어있어도 언젠가는 스멀스멀 다시 올라와 당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정면 돌파를 택하고, 그 스트레스를 넘어설 만한 자신만의 대응 논리와 기준을 한번 만들어 보아라!”          



  우리 생(生)에서, 아마 가장 큰 적은 삶의 이런저런 ‘스트레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계에서는, 자기 생존을 위해 꼭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서로 소유를 다투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때로는 상대가 가진 것에 대해 시기나 질투의 심정도 있을 수 있을 것이므로, 이러한 과정에서의 여러 갈등이나 경쟁, 다툼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때로 집안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을 수 있고, 때로 친인척 간 갈등으로 머릿속이 멍해지기도 한다.

  또, 회사 일로 인한 스트레스로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룰 수 있고, 때로 돈 때문에, 때로 자리 때문에, 때로 승진 때문에 온통 머릿속이 질려버리기도 한다.

  또한, 복잡한 대인관계 속에서는 꼭 자기와의 맞수가 한 명 이상 등장하여 어떤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 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가, 급기야는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결국은 심정적으로 모두 녹다운 되어버리기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억울한 것은, 때로 별일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도, 온통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기도 하고, 심하면 심장이 벌렁벌렁할 때도 있고, 잠도 잘 안 올 때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나중에 시간이 좀 지나, 자기 마음의 평정을 잘 이루게 되면, 그때서야 당시에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다며,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은 것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그 당시에 당신의 마음을 그렇게나 졸이고,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과도히 감정을 소모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길은 결코 없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정말 중요한 점은, 이러한 스트레스는 정말이지, 자기 정신을 좀먹고, 신체적 건강을 아주 크게 약화시키고, 삶 자체를 송두리째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나아가 자기 수명까지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간혹 이러한 스트레스는 심한 우울증이 불러와 삶의 질 자체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여러 병증이나 자살까지 빚게 할 수 있으니, 그 유해성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트레스를 우리에게서 완전하게 없앨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비교적 용이하게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스트레스를 쉽게 넘어설 만한 자신만의 대응 논리와 기준을 가져라!”(그림;blog.hubspot.com/service)


             

  첫째, 머리 아픈 일에는 그 처리 방법에 대한 판단 기준을 명확히 설정해 보아라.   

 

  가령, 상대가 나에게 A라는 행위를 이러이러한 이유로 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데, 나는 A라는 행위를 또 다른 이유로 결코 못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을 한번 가정해 보자.

  아마, 서로 간의 실랑이와 감정싸움으로, 서서히 불안감이 몰려올 수 있다. 머릿속이 매우 어지러울 수 있고, 때로 온통 하얗게 질려버릴 수도 있다.

  심지어는 전신에 기운이 빠질 수 있고, 온갖 무기력증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잘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스트레스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다시금 기운을 내고, 그 해당 건의 본질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차분한 마음으로 대책을 만들어내면 된다.

  그리고, 그 대책의 시작은 바로, 해당 사태에 대한 판단이나 처리 기준을 잘 정하는 일이다.

  즉, 상대가 B 이상의 조건을 수용한다면 내가 기꺼이 양보를 할 것이고, B 이하의 조건을 들고 나온다면, 내가 양보할 마음이 결코 없다는 등의 기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기준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공개적 논쟁을 벌여서도 결코 밀리지 않을 정도의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러한 기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어버릴 것이고, 그래서 상대의 공격이 점차 심해질수록 금방 무너질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단, 그렇다고 하여, 그 기준을 너무 세밀하게 잡지는 말아라.

  그 기준을 너무 세밀하게 잡으려 하다 보면, 그 세밀하게 챙기는 자체가 다시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그냥, 크게 크게 기준을 잡아두는 것이 좋겠다. 마치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통으로 굵직굵직하게 잡아두면 된다.

  혹여 부족하거나 틀린 점이 있다면, 언제라도 수정하면 될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기준을 정확히 세운 후에는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공개를 하여라.

  당신이 말로든, 글로든 적절한 방법을 통하여 잘 공개하게 되면, 상대도 이를 인지하게 되고, 이를 서로 넘지 않아야 할 최소한의 경계선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선은 서로를 지켜줄, 특히 당신의 고통을 더 이상 덧나게 하지 않게 할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최대한 잊어버려라.

  가능한 한 그 일을 바로 잊어버려라.

  바로 잊어버리기 어렵다면, 재미난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뭔가 몰두하고픈 일을 찾아 거기에 집중해 보아라.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상대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이런저런 조건을 마구 내세우며 온통 당신을 또 혼란스럽게 하더라도 쉽게 흔들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당신이 처음 세워둔 그 기준을 당분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기준이라는 것이 너무 쉽게 양보되거나, 이리저리 쉽게 바뀌게 되면, 처음에 그 기준을 잡을 당시의 목표한 바를 제대로 이루어 내기 어려울 것이니 말이다.     


  당신은 애초부터 그 기준을 세울 때, 아주 탄탄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서, 이미 그 누구에게도 논리상 지지 않을 만한 자신감을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협상 도중에 혹은 그 일이 완전히 해결되기 이전에, 절대 조급해지거나, 예민해지지 말고서, 매우 태연하고 당연하게 사태를 잘 관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잘 풀려나갈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은 모든 일을 다소 푸근하고 관대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너무 당신의 주장만을 강조하여 내세우거나, 상대에게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 것마저도 양보하지 않는 쪼잔함을 보여서는 결코 안 되겠다.

  즉, 양보가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흔쾌히 양보를 해주고,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두말없이 내려놓는 것 또한 아주 좋은 선택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나중에 상대로부터도 더 큰 것도 양보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당신이 진정, 몸 담고 있는 분야의 ‘프로’라고 한다면, 언제라도 이만한 정도의 아량이나 배포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 제삼자적 관점을 가져라.     


  매우 스트레스성 사건일수록, 보다 더 제삼자적 관점을 견지하려 해 보는 것이 좋다.

  내 생각에는 A가 맞는데, 상대방은 왜 이를 몰라줄까?

  내 생각에는,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A 외에는 답이 없는데, 왜 상대가 반대를 하고 있는지 등을 고민하기 이전에, 일단 제삼자적 관점을 취하여 A라는 행위에는 어떠어떠한 장점이 있고, 또 어떠어떠한 단점이 있는지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잘 따져 보라는 것이다.

  그래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여, 매사 실수가 적어지고,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초기에 바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자신의 철저한 생각을 잘 정립한 후라면, 아마 양보할 것은 흔쾌해 양보할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이 끝까지 주장해도 될 것은 더욱더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다.

  혹은, 서로 관점의 차이나,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로 인한 문제였다면, 서로 보다 쉽게 타협이나 절충이 가능할 것이다. 

  당신은 이미 그 건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해 보았고, 많은 논리도 가지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처럼, 스트레스가 매우 큰 일이나, 온통 혼란스런 문제라고 하더라도, 너무 자아에 몰입하지 말고, 제삼자인 타인이 바라보듯이 잘 관조해 본다면, 모든 일이 보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해석될 것이므로, 당신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서서히 해결의 실마리도 보이게 될 것이며, 점차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이 수렴되어 가기도 할 것이다.


  셋째, 움켜잡아 지키려 하지 말아라.     


  자기주장이 아무리 맞다고 하더라도, 자기 것을 꽉 움켜잡고서 무조건 지키려 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

  그렇게 너무 집착스럽게 움켜잡으려 하면 할수록, 당신의 합리성이나 균형감은 점차 무너져 갈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또한, 아무리 맞는 주장이라고 하여도, 그 지키려 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조바심이나 조급증이 생겨나고, 이는 결국 아집이나 고집으로 성장하여 타인의 눈에는 마치 비합리성 내지는 이성을 잃어버린 듯이 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이른바 자기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어야 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의 모든 주장이 허탈한 실망감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스트레스를 자신감으로 넘어서라!”(그림;.bing.com/images)


           

  이럴 것이라면, 차라리 자신이 원하던 바를 놓쳐도 괜찮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을 최대한 가져 보아라.

  그리고, 여기서도 ‘자신감’이 매우 중요하겠다고 하겠다.

  가령, 아래와 같은 강한 자신감을 스스로 가져보는 것도 매우 좋겠다.   

  

       “내가 현재 가진 것을 잘 누리거나 추구하다가, 그것이 나와의 인연을 다해 기꺼이 내어놓아야 할 상황이라면, 또 그러한 변화된 상황을 마음으로 인지하게 된다면, 언제라도 흔쾌히 내어놓을 수 있고, 나는 또 다른 것, 더 위대한 것을 다시 추구해 나가면 된다.”     


  만약, 스스로 너무 자아에 빠진 인간이 된다면, 그래서 너무 무리한 언변이나 자기주장을 내세운다면, 타인의 눈에는 마치 자기 욕심이나 잇속만을 챙기는 인간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많은 질투와 견제가 뒤따를 수 있어서, 자기 것을 끝까지는 제대로 못 챙기게 될 수 있을뿐더러, 주변에 신망까지도 모두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이 있다.

  자신이 현재 가진 것을 가능한 한 자랑하지 말아라.

  보통은 당신이 자랑을 하게 되니, 상대방은 당신이 가진 것을 드디어 알게 되고, 그래서 질투나 질시를 하게 되고, 탐을 내게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아예 자랑을 하지 않는다면, 항상 겸손하고, 당신의 마음이 늘 낮은 곳으로 향할 수만 있다면, 당신이 가진 것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도, 그것을 지키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이렇게 되면, 괜한 주변의 시샘이나 상대의 눈독을 막아, 가진 것을 지켜내기도 그만큼 쉬워지고, 굳이 움켜잡아 지키려는 극단의 마음을 가질 필요도 거의 없을 것이니, 스트레스는 당연히 거의 없거나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넷째, 걱정은 일종의 ‘자가면역 질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자가면역 질환’이란 자기 몸의 세포와 조직 등을 자신의 것으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외부의 적(세균, 바이러스, 진균, 미세먼지, 중금속, 기타의 비정상적인 물질)으로 잘못 인식하여, 안 해도 될 공격을 하게 되고, 그래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질환을 뜻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로 인해 우리 몸에는 염증, 세포 손상, 조직 및 장기 손상 등의 엄청난 결과가 초래할 수 있다.  

   

  우리의 ‘걱정’을 이러한 ‘자가면역 질환’에 한번 비유해 보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그 패턴이 사뭇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즉, 세상에는 걱정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거의 없을진대, 괜히 안 해도 될 걱정을 사서 하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결국 자기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고, 몸까지 상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걱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소중한 몸과 마음을 자기 것으로 제대로 못 챙기고서, 스스로 마구 공격하게 되고, 그래서 많은 상처와 고통을 남기게 되는 것이니, 지극히 소모적이고, 마치 지나친 ‘자기애’의 부작용에 해당된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는 대부분,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이를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즉, 아무리 걱정을 안 하려고 해도, 그 걱정스런 마음을 제대로 극복할 수가 없는 상황이 많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만약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나는 괜찮다,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고는, 그 최악의 경우를 차분히 대응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즉, 최악의 상태가 도래하더라도, 나는 괜찮고 아무 문제없지만, 그래도 “더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미리 만들어 놓기 위해서, 또 보다 더 나를 케어해 내기 위해서, 나는 이러이러하게 준비하겠노라!”라는 등의 화두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걱정은, 매우 차분한 가운데, 합리적인 대응과 관련된 집중력으로 바뀌어, 보다 큰 극복의 힘, 스트레스 탈출의 힘을 발휘해 낼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다섯째,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아라.    

 

  어떤 일이나 문제로 인한 나중의 결과가, 나에게는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모두 좋을 만한 구조를 미리 만들어 놓아라.

  즉,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되어도 모두 괜찮다면, 그만큼 당신의 마음은 아주 편안하고, 스트레스 같은 것은 최소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좋지 못한 방향으로 사태가 흘러가더라도 문제가 없고, 결코 개의치 않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안할 수 있겠는가?     


  미리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여라.

  아예 이러한 구조 혹은 프레임을 미리 만들어 놓아라.

  그래서 그 어떠한 결과도 당신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두어라.

  가령 결과가 A로 나오면 이래서 좋고, B로 나오면 저래서 좋을 수 있고, A도 B도 아닌 C로 나온다고 한다면, 또 다른 좋은 점이 있도록 미리 일의 구조를 만들어 두어라.

  물론, 모든 일에 대해 이러한 구조를 만들어 내기란 그리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A, B, C 각각의 결과가 나올 경우, 그러한 각각의 경우를 차분히 해석하여 “그럴 경우, 나는 어떻게 대응을 하겠다!”라는 방책을 잘 마련해 두면 된다. 그 정도만 되더라도 충분히 스트레스는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는, 이제 마음을 놓아라.

  절대 스트레스 같은 것은 던져버려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도,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당신은 그 모든 경우에도 좋을 수 있거나, 최소한 그 결과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방책을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새옹지마!”(그림;.sohu.com/a)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를 최대한 용이하게 넘어설 수 있는 방책에 대해 여러 가지를 좀 살펴보았다.

  그런데, 혹자는 이러한 방책을 두고, 우유부단이나 어불성설과 쉽게 비교하려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방책은 가히 우유부단이나 어불성설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히 알려진 사자성어 중에서는 ‘새옹지마’가 여기에 가장 비유될 만할 것으로 보인다.     


  ‘새옹지마’란, ‘새옹’이라는 노인이 잘 기른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 슬픈 일을 당했을 때도, 그 말이 다시 암말을 데리고 오는 행운이 생겼어도, 자기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다치게 되는 화를 입었을 때도, 그로 인해 아들이 전쟁터에 출전하는 것이 면제되는 좋은 일이 있었어도, 항상 무덤덤하고 태연자약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고사를 잘 의역해 보자면, 새옹 노인이 말을 잃어버렸을 때나, 그 말이 다시 암말을 데리고 왔을 때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다쳤을 때나, 그로 인해 다행히 군대 징집을 피하는 행운을 얻었을 때도, 이 모든 희로애락에 이웃 사람들은 그때그때 일희일비하여 그 감정을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었지만, 그 당사자인 노인은 어떠한 경사에도, 어떠한 애사에도 결코 호들갑을 떨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서, 자기 마음의 중심을 굳건히 잡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그 의미를 좀 더 추가해 보자면, 무엇보다 이웃에게는 항상 겸손함을 견지하여, 아무리 좋은 일이 생겼어도 결코 거만해지거나 자만에 빠지지 않고, 아무리 나쁜 일이 생겼어도 스스로 일희일비하지 않아, 결코 스트레스 같은 것을 거의 받지 않고서, 그냥 어떠한 호들갑도 없이 조용히 내일을 꾸준히 준비해 나가는 것이 좋고, 또 기대도 해 보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해석해 볼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 ‿ ‿ ‿ ‿ ‿ ‿ ‿ ‿ ‿ ‿ ‿ ‿ ‿ ‿ ‿ ‿ ‿ ‿ ‿ ‿ ‿ ‿ ‿


스트레스를 넘어서라. 

머리 아픈 일에는 그 처리 방향에 대해

당신의 판단 기준을 잘 세워 두어라.

그러고는 아예 잊어버려라.

당신 일에만 집중하여라.

     

제삼자적 관점을 가져라.

객관적이고 이성적 성찰을 잘하여라.

너무 자기주장에 빠지지 말고서,

차라리 타인의 마음을 챙겨라.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너무 움켜잡으려 하지 말고,

당신의 합리성이나 균형감은 잘 챙겨라.

조바심이나 조급증을 경계하여라.

아집이나 고집도 경계하여라.

차라리 자신감을 가져라.     


당신의 자랑을 최소로 줄여라.

차라리 겸손하고, 낮은 곳을 향하여라.

상대의 시샘이나 속셈을 잠재우고,

다가올 화를 면할 수 있다.

걱정도 없앨 수 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게

미리, 당신 일의 프레임을 만들어 놓아라.

상대가 아무리 공격을 해 오더라도,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당신은 언제나 편안하다.     


세상에 길흉화복은

그 누구도 가히 예상할 수가 없다.

세상 희비에 마음 졸이지 말고,

그냥 당신 가치에 집중하고,

내일을 기대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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