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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Apr 05. 2024

'일상의 중독'을 미워해라

부제 : 일상의 중독에서 해방되려면,(그림;.healthline.com)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독’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래되어 온 알코올, 담배, 마약, 독성물질 등의 아주 강한 중독 유발 물질에 의한 중독도 있고, 종교나 주의(主義) 등의 특정 이론에 대한 사상적 중독도 있으며, 기타 탄수화물 중독, 스마트폰 중독, SNS 중독, 게임 중독, 명품 중독, 스포츠 중독, 각종 미디어(스포츠 관람 및 시청, 영화 관람 및 시청, TV 시청, 라디오 청취 등) 중독, 기타 신종 도파민성 중독 등에 해당하는 신생 ‘일상의 중독’도 굉장히 많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나도 다양한 종류의 중독 현상들은, 정신적 의존증의 일종으로서, 그 누구도 자기 내면을 잘 들여다보게 되면, 의도치 않게 숨어든 크고 작은 한두 개 이상의 중독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누구도 이러한 중독 현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즉, 누구나 자기 평소의 생활상에 비추어 내면을 잘 들여다보게 되면, 이런 유사한 중독 혹은 준중독 현상이 한두 개 이상쯤은 충분히 있을 수 있을 것을 것인데, 이를 잘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자기 생이 훨씬 더 자유롭고, 여유롭고, 넉넉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러한 중독 현상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스스로 그것을 깊이 즐기다 보면, 자신의 ‘의지적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는 점과 순간적인 쾌락 외 삶의 다른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그 중독에 취한 이후에는 어김없이 큰 후회 혹은 상실감이 몰려와 자기 정신을 온통 갉어먹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특히, 위에 언급한 여러 중독현상 중, 자기 ‘일상의 중독’은 요즘의 발달한 시민사회에 접어들어 더욱 엄청나게 많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강한 중독 유발 물질에 의한 중독이나, 종교나 주의(主義) 등의 특정 이론에 의한 사상적 중독 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의 심각한 병적 중독성을 경계하여, 많이들 조심하고 있는 편이지만, ‘일상의 중독’에 대해서는, 이것이 정말 중독이 맞는지, 아닌지가 헛갈려 할 수도 있고, 별로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서 무감각해지기도 하며, 이렇게 정확한 인지가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의외로 많은 피해를 겪게 되는 것이니, 그 실질적인 타격은 더욱더 클 수 있다.  


“SNS 혹은 매체 중독”(그림;.healthline.com/health/social-media-addiction)



 그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빠져들고 있고, 또 그로부터, 자기도 잘 모르는 사이에, 아주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여러 ‘일상의 중독’을 위주로 하여, 중독의 전반적인 해결책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일상의 중독’도 아주 위험함을 제대로 인정하자.     


 일상의 중독에 대한 해결책 역시, 그 위험성에 대한 인지와 그것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함이 기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일상의 중독도 심각한 중독 현상임을 제대로 인정하여, 그동안 자신이 부족했음을 마음으로부터 제대로 인정하게 된다면, 이미 거의 절반은 해결되었음이다.

 여러 중독현상 중 그래도 가장 가벼운 편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는 ‘스포츠 미디어(시청 및 관람) 중독’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프로야구 게임 시청에 다소 중독이 되었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그러면, 거의 매일 그 프로야구 게임을 보기 위해 하루에 약 두세 시간 가까이 허비해야 한다.     


 겨울철이나 월요일 등 게임이 없는 날도 일부 있지만, 아주 소중한 자기 생활상의 두세 시간을 일상적으로 까먹는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특히, 프로야구 외에 타 스포츠(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를 동시에 즐긴다면, 이런 시간상의 소비는 그 몇 배수 이상으로 증가하게 된다.

 또, 자주 경기장을 찾아 관람까지 하는 경우라면, 그 시간의 투자는 엄청나게 더 커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응원하는 선수들의 옷도 사야 하고, 야구 글러브, 야구공, 각종 응원도구, 간식비 등도 거의 기본일 것이니,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자기 머릿속에는 실망감과 배신감 등으로 가득 차게 되고,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대(보통은 업무 직후의 시간대 혹은 휴일 낮 시간대)에 이러한 심리적 영향력이 큰 게임에 몰입하다 보면, 생활 리듬마저도 완전히 잃어버리기 쉬워, 그 직간접적인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만약 이러한 중독이 더욱 심해져, 해외 스포츠 경기까지 보기 위해서 밤새도록 TV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경우라면, 이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자신이 프로야구 마니아로서 여러 응원팀에 소속되어 그 나름의 가치를 그 안에서 찾으려 하는 경우이거나, 각별한 취미 혹은 사업상의 목적을 가진 경우라면, 그리고 그야말로 날밤을 새는 지나친 중독에만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나름의 의미는 충분히 있을 수 있겠으니, 이런 경우까지 마냥 나쁘다고만은 할 수가 없겠다.

 그러나 만약, 일반 시민들이 무심코 관련 매체들의 상술에 빠져, 자신의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고, 엄청난 감정을 소모하며, 그 경기의 승패에 따라 스트레스 리듬이 심히 오르내린다고 한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겠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점은,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스포츠에 빠져 지내는 것이 아주 큰 문제임을 제대로 인지 및 인정을 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현대 사회에는 워낙 여러 유혹이 많고, 자기 주변에도 자기처럼 그렇게 유사한 스포츠나 게임 등에 빠져 사는 이웃이 흔할 것이니, 가히 문제의식이 전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소중한 시간의 허비나 금전적 지출이 점차 많아져도 후회하려는 마음은 그때그때 잠깐 동안에 불과할 것이고, 돌아서서는 바로 그 심각성을 잊어버리게 되고, 또다시 반복적으로 그런 중독물에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일상의 중독 문제는 스포츠를 포함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속칭, 3S(sports, screen, sex) 모두에서도 아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스포츠(sports) 중독은 광의로 게임중독, e-스포츠 도박 중독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screen) 중독은 핸드폰 중독, 인터넷 중독, SNS 중독 등과 거의 연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성적 매체(sex)에 의한 중독은 폭력물, 성적 희롱 및 폭력물 등의 인간 말초적 자극 매체를 모두 그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더군다나, 요즘은 이러한 3S에 더하여, 식탐, 탄수화물중독 등의 음식물에 의한 중독도 매우 심각한 실정이라, 우리의 실질적 건강 수명을 엄청나게 위협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즉,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가파르게 길어졌지만, 그래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더 중요할 수도 있는 건강수명 자체는 크게 좋아지지 못했으며, 그래서 인생 말년에 병원과 약물에 의지하며 보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평가가 많다.     


 이러한 모든 자기 일상의 중독 문제에서는, 무엇보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왜 이러한 생태로 빠졌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하고, 또 스스로 그 심각성을 자인할 수 있어야 함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원인은 매우 하찮을 수 있다.

 그냥 자기도 모르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어서, 그러한 일상의 중독성 행위에 자기만 속 빠지는 것이 싫어서, 그냥 즐기다 보니, 친구를 따라 하다 보니 그랬을 수 있다. 


 이렇게 중독의 원인 혹은 그 시작점은 대개 미미하지만, 중독의 현실은 참으로 심각하게 당신을 망가뜨릴 수 있을 것이니, 당신 일상의 크고 작은 중독 상태가 참으로 문제가 큰 상태 혹은 병적 상태임을 스스로 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중독 현상을 점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 혹은 단초를 마련할 수 있게 될 것이니 말이다.    

          

“밤새도록 스포츠를 시청하는 미디어 중독”(그림;techprincess.it/vamping-un-ragazzo-su-tre-di-notte-sul-web)


     

 둘째, 일상의 중독물을 매우 미워하고, 또 억울해하자.  

   

 이런 중독과 같이 아주 나쁜 증상에는 그 복수를 단단히 해 주어야 하겠다.

 즉, 자신이 겪고 있는 ‘일상의 중독’의 문제성을 제대로 인정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제 그것을 미워하고, 스스로 매우 억울해하여야 할 것이며, 그래서 그 복수를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악물고 이로부터 탈출하려 한번 해 보아라.     


       “내가 그동안 그러한 허접한 중독물 하나에 빠져, 과연 허비한 시간이 얼마이며, 소비한 돈이 얼마이며, 낭비한 감정이 얼마이며, 인생 전체적 손실은 과연 얼마나 큰 것인가?” 

    

 이렇게 진심으로 잘 생각해 보고, 그 앙갚음을 한번 제대로 해주도록 당신의 생활 패턴을 바꾸기 시작해 보아라.     

 이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당신의 굳은 의지, 꺾이지 않는 정신 등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밀고 나갈 수 있는 그 구체적 필요 방법은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아주 천차만별일 것이다.

 어떤 이는 자신의 각오를 대외에 공표하여, 자신의 의지를 더욱 굳히려 한다.


 즉,    

 

       “내가 분명히 술과 담배를 끊을 것이니 모두들 잘 보세요. 만약 내가 다시 그런 것들을 하게 되면, 한 턱 크게 내겠습니다!”,   

   

       “내가 다시 그 게임을 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내가 그 경기장에 다시 가면, 내 성을 갈겠다!”,    

  

       “그런 도박을 다시 하게 되면, 겨울에 맨 몸으로 한강물에 뛰어들겠소!”     


         과연, 이런 식인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성격상 대외적인 공표는 잘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신의 용품을 모두 버리려 하는 스타일도 있다.

 가령, 담배를 다시 태우지 않기 위해, 아까운 담배 몇 보르, 라이터 등의 담배 관련 용품을 모두 버리려 하거나, 술을 끊기 위해 자기 집에 보관 중이던 귀한 술을 모조리 처분해 버리거나, 야구장에 가지 않기 위해 야구 방망이, 야구 글러브, 야구공, 선수복, 응원도구 등을 모조리 처분 혹은 버리거나, 낚시를 하지 않기 위해 아까운 낚시도구를 모두 버리려고 하는 등으로 행동하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 그 각오와 용기는 가상하지만, 그러한 금단의 다짐에 실패라도 하게 되는 날이라면, 그 버린 용품이 너무나도 아까워 올 것이다.

 또, 이러한 금단의 맹세와 실패가 여러 번 반복이라도 되게 되면, 그때마다의 손실도 엄청 커져 가게 된다.

 그 실패시마다, 자신이 버리거나 처분한 용품들을 다시 비싼 가격을 지불해 가며 사야 할 것이니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내기를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도 있다.

 즉,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아래와 같이 내기를 제안하는 이도 적지 않다.     


       “내가 담배를 끊으면 당신이 내게 십만 원을 주시고, 내가 만약 담배를 못 끊으면 내가 당신에게 이십만 원을 주겠습니다.

         어디! 자신 있으시면, 내기를 한번 해 보시죠?”,      


       “내가 다시는 프로축구 경기를 응원하러 경기장에 가지 않을 것이니, 나와 내기를 한번 해 보겠는가?

         일인당 십만 원 이상의 식사를 걸겠소!”  

   

         매사 이런 식인 것이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중독의 재발이 염려되는 장소나 물건을 멀리하려 한다.

 이를테면, 중독 증상을 떠올리기 쉬운 장소나, 떠올리기 용이한 물건 등을 멀리하여, 가능한 한 거기에 근접하지 않으려 한다.

 가령, 자기가 지나치게 중독성으로 즐기던 물건이 없는 장소를 선호한다거나, 자주 몰입하던 스포츠 경기장 주변에는 아예 가지 않도록 자기 생활 동선을 관리하려 하고, TV 드라마나 영화 시청 중독을 끊기 위해 TV나 컴퓨터가 아예 없는 장소를 선호하려고 하는 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체적인 방법 자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개인마다 그 대처 방법이 엄청나게 다를 수 있어서, 아주 천차만별일 것이니 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의 중독 현상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 및 인정하고서, 그러한 중독 행위들이 다 부질없고 아무 의미도 없음을 잘 깨닫고서, 또 이를 제대로 미워하고, 스스로 억울해하며, 진심으로 그러한 문제에 당차게 대적하려는 마음을 제대로 굳혔느냐는 등의 문제일 것이다.     


 아마 이렇게 하여, 위의 첫째 및 둘째 방책을 모두 제대로 실행하게 되면, 당신은 이미 그 극복을 위한 약 80퍼센트 이상의 능선을 넘었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마음의 허영으로부터 벗어나자.     


 아마 중독현상 중 특히‘신종 도파민성 중독’의 경우에는 자기 마음의 ‘허영’부터 잘 극복할 수 있어야만, 이를 제대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처음에 과시욕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이유로 명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인간의 쾌락 중추가 아주 자극적으로 반응하여 결국 ‘중독 메커니즘’이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마음의 허영심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결코 이를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술적·문화적·지적 허영심(딜레탕트)으로 인한 중독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전문가나 비전문가 수준이 절대 안 되지만, 고상한 예술품을 기어이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구매하려 하고, 들을 줄도 모르는 음악회에 애써 참석하여 그 모습을 찍어 SNS에 올리려 하고, 이해도 못하는 고상한 작품을 즐기거나 뽐내려 하고, 자기도 제대로 이해 못 할 정도의 지나치게 어려운 전문 용어를 입에 달고 살려고 하는 사람 등이 생각보다 무척 많다.

 이른바, 딜레탕트적 중독증세인 것이다.     


 이 역시, 모두 자기 마음의 허영심이 그 바탕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그 허영심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자기 열등감이나 자격지심, 집착스런 마음, 자기 편견 등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자기 중독 증세를 받치고 있는 여러 허영의 문제들을 제대로 치료해주지 못한다면, 거의 자기 중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어렵게 된다.     


 이러한 허영으로 인한 중독 증세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스스로 자기 마음을 아주 고요하고 낮은 곳으로 보내어 안정감을 찾은 후, 서서히 자기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에 잘 접근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결국, 자기 자존감, 자신감, 균형감 등을 잘 회복하고, 자기 삶의 가치도 재정립해 보는 것이 좋겠다.

 즉, 이러한 자기 ‘마음의 허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일단은 자기 처지에 안 맞는 비싼 사치품을 구매한다고 하여, 어울리지도 않는 명품을 구매한다고 하여, 짝퉁 물건으로 온몸을 휘두른다고 하여, 아주 고상하고 어려운 말을 애써 쓴다고 하여 자신의 실제 존재 가치가 높아지지는 않음을 잘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만의 또 다른 방법을 통하여, 자기 자존감, 자신감, 균형감 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아주 다각도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이지, 잘 생각해 보면, 허영심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그러한 부분도, 그러한 일부의 개연성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고 한없이 커지게 만든다면, 염치도 없이 무작정 하늘로 솟구치게 만든다면, 그로 인한 피해나 당신 생활상의 제약은 오롯이 당신 스스로가 책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항상 이를 적절한 자기 통제하에 둘 수 있도록 잘 제어해 나가야 하겠다.   

     

 넷째, 중독물을 더 큰 몰입물로 덮어버려라.    

 

 자신이 간절히 벗어나고자 하는 중독물이 있다면, 이를 더 큰 몰입물로 덮어버리도록 한번 해 보아라.

 단, 도파민 중독성 몰입물이 아닌 것으로 말이다. 즉, 그 중독물을 대체할 수 있는 더 강한 대체물을 잘 만들라는 것이다.

 만약, 그 대체물이 너무 단순하거나, 그냥 대체를 위한 대체물이면 그 효과가 매우 적을 수 있다.

 그동안 중독물의 흡인력과 그 금단현상이 워낙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판 자체를 크게 흔드는 것이 좋다.     


 먼저, 그 1단계로서, 당신의 위치, 동선 및 시간 관리를 좀 해보아라.

 즉, 그동안 그 중독이 잘 행해진 자리에는, 그 동선에는, 그 시간대에는, 당분간 그것을 결코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도록 해 보아라.

 가령, 늘 퇴근길에 술을 즐기는 경우라면, 최근 후에 갈만한 행선지를 마련하여, 항상 거기에 갈 수 있도록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또,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별생각 없이, 무의미하게 게임이나 스포츠를 시청하고 있었던 경우라면, 그 시간대에는, 그러한 행위를 원천적으로 할 수 없는 컴퓨터나 노트북이 없는 장소로 가서 다른 일에 심취해 보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도, 본인의 의지력이 약하여, 도중에 포기할 가능성도 꽤 클 수 있다.

 결국, 최종적인 성공의 관건은, 그 대체물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그 2단계로서, 몰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을 잘 잡고서, 또한 그것을 생장하는 일에 열중해 보아라.

 즉, 퇴근 후 TV시청으로 프로축구,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 등을 늘 즐겨야 할 시간이라면, 이러한 시간대에는 주변 카페에 들러, 당신의 최애에 한번 몰입해 보아라.

 당신의 최애는 그 무엇이라도 좋다.

 물론, 당연히 가장 몰입도가 높은 것일수록 좋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결코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몰입도라는 것도, 그 정도가 결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당신이 발전시키기에 따라서, 생장시키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더 증가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좀 몰입해 보다가 도저히 안 된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그 몰입도 자체도 당신이 계속 추가로 키워나가야 하고, 생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을 잘 깨달아야 하겠다.     


 또한, 기존의 중독물에서 자꾸 벗어나려 애쓰는 것보다, 중독의 후유증에 해당하는 금단증상과 맞서 이겨내려고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새로 발굴한 대체물에 보다 더 몰입하여, 기존의 중독물에 대한 관심을 덮어 버려라.

 그래서, 기존의 중독물에 신경을 쓰려야 신경을 쓸 틈도 없고, 정신도 없고, 이유도 없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대체물에 아주 심취해 버려라.  

   

 이렇게 하여, 아마 새로운 대체물에 대한 적응의 정도 혹은 심취의 정도가 당신 성패의 관건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새로이 발굴한 대체물에 아직 제대로 몰입하지 못해 중독증 탈출에 실패한 경우가 발행한다면, 이때에는, 절대 변명 같은 것을 늘어놓지 말아라.

 변명은 늘어놓으면 늘어놓을수록 당신을 더욱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더욱 타당하다고 믿게 만들 것이니, 차라니 자신의 부족함을 단번에 인정하고, 재도전에 임하는 것이 좋다.

 오로지 더욱더 올인하여, 더욱더 몰입하여 재도전하는 것만이 당신을 최종 승리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극성을 부리고 있는 스포츠 도박”(그림;.ideastream.org/health)



 다섯째, ‘배수의 진’보다는 ‘절실함’으로 접근하자.     


 아마 중독을 극복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배수의 진’ 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아무나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배수의 진’을 칠만한 그러한 기회는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든 운이 아주 좋아야 이러한 기회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니, 다소 기대하기 어려운 방법일 수 있다.     


 가령 극단적인 예를 한번 들어보면, 평소 목이 안 좋고 기침이 잦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당장 담배를 끊지 않으면, 장차 폐암으로 사망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배수의 진’을 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배수의 진을 치고서 끊고자 한다면, 이는 워낙 의지를 강하게 만들어서, 그만큼 금단 현상을 이겨낼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나, 이러한 특별한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반드시 끊어야 한다는 외부적인 당위성이나 명령 같은 것을 받아내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러한 ‘배수의 진’을 대신하여, 차라리 자기 마음속에 스스로 큰 ‘절실함’을 한번 만들어 보아라.

 ‘절심함’이라는 것은, 자기 깊은 내면의 잠재된 고민과 희망사항, 필요사항 등을 잘 관조해 보게 되면, 누구라도 차츰 만들고 키워나갈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절실함은 그 당위성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절실함의 구체적인 내용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한 후, 거기에 대해 진정 간절한 의미 부여의 과정이 매우 중요할 것이며, 이러한 제반 과정은 순전히 당신의 몫일 것이다.

 때로, 강한 자존심, 자존감, 자긍심, 책임감, 경쟁심리 등이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는 각 개개인마다 모두 다를 것이니, 어떠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절실함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획일화된 정답은 결코 없는 것이다.

 또, 중독을 잘 이겨내고 나서, 자신이 결국 이루고자 하는 미래의 비전이나 미션, 희망, 약속, 가치나 꿈의 실현 등을 잘 재정립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어쩌면, 오늘날의 중독이라는 것은,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법이나 최소한의 도덕적 범위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인간 개개인의 자유 선택의 영역이기도 하고, 권리이기도 할 것이니 말이다.

 타인이, 그 누구라도 가히 뭐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온갖 중독 현상에 갇히어, 자신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아까운 자기 시간과 감정, 금전 등을 마구 까먹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겠다. 심하면, 아주 비극의 상황일 수도 있다.   

  

 모쪼록 독자님들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여러 중독 현상으로부터, 특히 스스로도 감지 불능이 되기 쉬운 ‘일상의 중독’으로부터, 자신을 온전히 해방시켜, 보이지 않는 깊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진정 자유롭고, 진정 해방되어 있고, 진정 가치 있는 자기 생을 잘 일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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