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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Feb 23. 2024

네 생의 끝자락까지 아름다울 수 있어라

(부제; 이 땅에 네 가치를 일구어라!)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자.

당신은 생의 끝자락에 즈음하여 무슨 말을 하려는가?

무슨 보람을 말하겠는가?

무슨 행복의 말을 하겠는가?

생의 끝자락에 즈음하여 당신이 일구어낸 생의 모습에 과연 기뻐할 수 있겠는가?

감사의 낮 빛을 하고, 생을 초월한 무지갯빛 희망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생의 끝자락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라, 그날 자신 있게 내어놓을 당신만의 가치를 하나하나 축적하며 달려가라!       

   

당신은 과연, 생의 끝자락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무슨 보람을 말하겠는가?

무슨 느낌을 받겠는가?

무슨 표정을 짓겠는가?

또, 무슨 회한을 늘어놓겠는가?    

 

이러한 질문은 아마, 우리 인생의 궁극적 질문일 것이며,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마, 자기 생의 끝자락에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되면, ‘A’라는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 삶이 너무 후회된다. 모두에게 너무 미안하다!

 너희들은 부디, 내처럼 후회하는 인생을 살지 않도록 하여라!”     


그런데, 다른 ‘B’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특별한 표정이 별로 없고, 밋밋한 느낌의 얼굴로) 나는 그래도, 그동안 행복했고,

  모두들 고마웠어요!, 잘 살아요!”   

  

 또 다른 ‘C’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뭔가 아주 편안함이 느껴지고, 아주 밝고 환한 느낌의 표정으로)

  나는 그동안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내 삶은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이 모두가 사랑하는 우리 ㅇㅇ덕분이었어요!, 정말 정말 고마웠어요!”    

  

 ‘A’는 아마 그동안의 자기 생을 돌이켜볼 때, 후회나 회한이 매우 큰 사람일 것이고, ‘B’는 가장 평범한 경우이기는 하나, 그 말투가 너무 밋밋하여, 그동안 삶의 아쉬움이 말의 행간에 다소 묻어있는 경우라고 평할 수 있겠다. 

 ‘C’는 아마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아낸 경우일 것이며, 모두들, 누구나 이러한 생을 살고 싶어 할 것이 아니겠는가?     


“네 생의 끝자락까지 아름다울 수 있어라. 이 땅에 네 가치를 일구어라!”(그림;.discovery.com/science)


              

 그렇다면, 지금부터, 오늘부터, 당장이라도 준비를 시작해 보아라, 바로 시작해 보아라.

 빠를수록, 젊을수록 좋다.

 당신은 우리의 생이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누구는 아주 ‘촌각’이라고도 표현하지 않던가?

 삶의 끝자락으로 갈수록 당신 운신의 폭은 점차 좁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위의 ‘C’라는 케이스에 도달하기에 너무 멀어져 있을 수 있다.

 그러니, 그 준비를 조금이라도 더 일찍 시작하는 것이 당연히 더 좋다.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사실, 우리의 문제는 생이 짧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모든 인생의 영화가 너무나도 덧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마치 자기가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마치 끝까지 자기가 가진 것을 움켜잡을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아주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누구나 당장 이러한 마음에서 탈피해야 한다.

 좀 더 자기 생의 끝자락을 제대로 인식하고서, 보다 더 본질에 충실하게 살아, 마지막 자락에 웃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차곡차곡 준비해 나가는 삶이 과연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준비에 그 누구의 삶도 결코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모두 정신을 잘 차리고서, 자기 생의 의미 있는 막바지, 행복하고 희망찬 막바지를 위해 협조하여야 하겠다.     

 그럼, 우리가 자기 생의 끝자락까지, 아주 여유로움과 행복감을 느끼고, 항상 가치 있고 고귀한 말을 건네며, 자기 마지막 삶의 영상을 아름다운 무지개 빛으로 쳐다볼 수 있으려면, 과연 어떻게 살아내어야 할 것일까?     

 첫째, 적어도 30년 이상의 안목을 가져라.     


 사실 우리가 살다 보면, 30년은커녕 당장 일이 년 정도의 안목을 가지기도 벅찰 때가 많다.

 이는 보통, 자기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이나 욕심에 너무 매달리려 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보면, 더 좋은 선택지가 얼마든지 많이 열려있을 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삶의 모습들이라고 하겠다.


 요즘의 한 세대는 보통 30년이다.

 자신보다 한 세대를 더 살아낸 자기 부모의 모습을 보면, 자기 앞길을 어느 정도 예상해 볼 수 있고, 또 미루어 자기 미래의 모습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그 좋은 점을 최대한 더 빛나게 하고, 우려 점을 꾸준히 극복해 나가려 하는 것이 좋겠다.     


 가령, 자기 심신의 무슨 병에 있어서도, 요즘은 가족력, 유전성 질환 등이 많아서, 자기 부모의 약한 부위를 잘 참조하여, 스스로 잘 개선하고 대비하여 나간다면, 자기 건강을 계속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 되어줄 수 있다.

 또, 자기 부모 생의 실패 사례를 잘 참조해 보면, 자신은 그 사례를 피해 나갈 수 있을 것이기에, 생의 여러 위험 요소를 사전에 잘 예상하고, 미리 방지해 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자기 부모의 장점을 잘 참조하여, 이러한 특성을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면, 자기에게 내재한 재능을 십분 발휘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도 아주 분명하다고 하겠다.    

   

 간단한 예를 한번 들어보자.

 첫 번째 예로, 어떤 일에 도전해서 일이 년은 많이 벌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떠나야 할 직장이라면, 사실 도전할 가치가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의 벌이가 매우 적다고 느껴지기는 하지만, 앞으로 점차 더 많이 벌 수 있는 상승 추세가 내다보이고, 더군다나 10년 이상을 꾸준히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이 직장에 도전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할 수 있다.

 일이든, 사업이든, 돈벌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 추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니 말이다.     


 두 번째 예로, 만약 당신이 이미 어느 정도 먹고살 만큼 벌어놓은 상태라면, 계속 더 많이 벌겠다고 일에 너무 매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돈벌이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두세 번째 가치로 내리고서, 돈벌이는 별로 안 되어도 자신이 평소 갈구하던 분야 혹은 동경하던 분야를 선택하여 여기에 매진해 보는 것이 자기 생의 마지막 자락까지 꾸준히 행복감을 쌓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령, 문학, 스포츠, 예술, 놀이, 봉사 등의 자기 관심이 매우 크고, 스스로도 그 가치를 가장 크게 느끼는 분야 중에서 적절히 선택을 잘하여 매진하게 된다면, 자기 생에서 자기만의 가치를 훨씬 더 농후하게 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돈이라는 것은 요물 혹은 속물과도 같아서, 조금만 욕심을 내어도, 조금만 잘못 다루게 되어도, 조금만 틈새를 보여주어도, 어김없이 아주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극히 경계를 해야 할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테면, 비싼 차, 비싼 집은 허영이기 쉽다.

 우리는 이미 소형차 혹은 11호차만으로도 충분히 불편 없이 살 수 있고, 서민 주택에서도 얼마든지 편안하게 살 수 있다. 단지 그놈의 알량한 마음의 허영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자랑 좀 안 하면 어떤가?

 폼이 좀 안 나면 어떤가?

 진정한 자랑은, 진정한 폼은 자기 내면으로부터 참을 수 없이 올라오는 그러한 것이어야 하며, 남들에게 들킬까 봐 스스로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 그러한 자부심, 자긍심 혹은 자신감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것은 마치 안 먹어도 살이 찌고, 안 벌어도 마음의 부자이고, 자랑을 하지 않아도 자부심으로 가득 찬 자기 인생의 가장 큰 히든카드가 되어줄 수도 있다.  

                 

“적어도 30년 이상의 안목을 가져라!”(그림;.discovery.com/science)



 둘째, 이 땅에 당신의 좋은 자취를 많이 남겨라.     


 세상을 살아가며, 스스로 좋은 자취, 흡족하고 보람 있는 자취, 생각만 해도 행복한 자취를 많이들 만들어 놓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인생일 것인가?

 좋은 자취라고 하여, 너무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남들에게 작은 친절을 하나 베푸는 것, 무엇인가 작은 하나를 양보해 주는 것, 크고 작은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작게나마 도와주는 일,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확신이 부족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응원의 말 한마디 등, 이러한 일상의 작은 것들도 모두, 충분히 당신이 이 땅에 뿌려놓을 수 있는 좋은 자취가 되어줄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을 유교에서는 주로 ‘덕(德)’으로,

 불교에서는 ‘선업(善業)’이라고,

 힌두교에서는 ‘선한 카르마’라고 많이들 칭한다.

 이러한 용어는 사실, 자신의 현재 발자취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생산해 내는 원인으로서의 의미가 매우 강하다.

 즉, 자신이 세상에 덕이나, 선업 혹은 선한 카르마를 많이 베풀게 되면, 나중에 크게 복을 받을 것임을 인류의 경험으로 암시해 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악덕, 악업, 악한 카르마를 많이 행하게 된다면, 미래에 결국 화를 불러와, 필연적으로 불행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 주는 가르침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은 이 세상에 우연히 던져져 왔지만, 과연 보람 있는 자취, 기억에 많이 남는 자취, 스스로도 매우 흡족할 만한 자취들을 보다 많이 남겨놓아, 나중에 당신이 당신 삶의 끝자락을 대할 때, 모든 것이 매우 아름다울 수 있기를, 당신 얼굴에서는 편안한 미소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본다.     


 셋째,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일만 하여라.     


 우리는 자기 생에서 결코 작은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가치를 별로 못 느끼는 일에는 더욱 연연할 필요가 없다.

 큰 것에만 매달려도,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일에만 매달려도 부족한 게 우리 생의 시간 눈금이 아니던가?

 마음이 동하지 않은 일이라면, 진정으로 하기 싫은 일이라면, 천만금을 준다고 하여도, 그냥 싫다고 하여라. 용기를 내어 보아라. 

    

 물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듯이,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을 통이 작은 인간으로, 아주 보잘것없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기 시작하면, 자신은 점차 더욱더 초라해져 가기만 할 것이니, 차라리 이러한 굴레를 과감히 벗어나도록 해 보아라.

 당장은 다소 배가 고픈 한이 있더라도, 진정 자신이 하고픈 일에 올인해 보아라.

 그러면, 점차 사정은 좋아지고, 삶의 형편마저도 당신의 뜻을 따라줄 것이다.    

 

 신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이상의 재주를 공평히 주었다고 하니, 무엇에든 당신의 뜻과 마음을 다한다면, 여러 형편마저도 당신에게 수렴해 올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매사 작은 것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여라. 아예 신경 쓰지도 말아라.   

  

 우리 속담 중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의 교훈처럼, 무엇이든 정신적으로 자기 마음이 동해야 좋은 것이며, 객관적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아무리 좋아도, 자기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이는 결코 ‘큰 것’ 혹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평안감사마저도 당신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아주 ‘작은 것’ 혹은 ‘가치 없는 것’으로 취부 하여, 결코 그런 것에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내는 것이 훌륭하겠다.     


 가령, 직장에서 아주 좋은 보직 혹은 여러모로 유리한 자리를 권유받았더라고, 자신이 감당해 내기 어렵거나, 껄끄러운 자리라서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당장의 욕심을 자제할 것을 신중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

 바로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그러한 자리를 선뜻 받아들였다가는, 나중에 그 자리를 제대로 감당해 내기 어렵게 된다면, 그래서 여러 관계 조직원들과 불협화음만 생기게 된다면, 아주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직장에서든, 일반 사회생활에서든, 모쪼록 자기 가치를 느끼는 일을 잘 찾아내고 여기에 집중하여 사는 인생이 매우 매력적일 것이니, 생의 여러 유혹이나 욕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말고서, 오로지 스스로가 설정한 자기 가치에 충실한 생에 열중해 보는 것이 참으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생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넷째, 부끄러움을 알아, 더욱 당당해지라.


 누구나 세상을 살며, 깨끗하게만 산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과거의 자기 말이나 행동이, 자기도 모르게, 친구나 이웃에게 큰 상처를 주기도 하고, 여러 크고 작은 피해를 주기도 하여,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과연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처신이 매우 부족했던 점, 부끄러운 점 등이 많을 수밖에 없다.     

 

 즉, 누구나 자기 과거를 잘 돌이켜보게 되면, 전혀 부끄럽지 않을 만한 그런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나 모두 스스로 반성하며 살아야 한다.

 누구나 모두 타인에게 사죄하며 살아야 한다.

 빚진 것이 있다면, 계속 쌓이기만 하기 이전에, 모두 모두 얼른 갚아라.

 빌린 것이 있다면, 미리미리 마음의 이자까지 쳐서 몽땅 갚아주어라.

 감사할 일이 있다면, 충분히 감사의 인사를 미리미리 전하여라.     


 이렇게 반성도 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를 바로바로 하여,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은 치르고, 그래서 마음의 빚을 잘 털어내고, 단도리도 잘하여야 비로소, 당신은 온전히 당당해질 수 있다.

 그래야, 생의 끝자락까지 당신의 영혼을 온전히 케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당신 최후의 모습도 그만큼 당당하고 멋지게 맞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보통, 우리 사회는 자기 부끄러운 줄도 잘 모르고 설쳐대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그야말로 우매한 인간이자, 엉터리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자기 부끄러운 줄을 잘 모르니, 조금만 벌어도 으스대고, 조금만 올라가도 갑질이고, 조금만 이루어도 자기 자랑이 난리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아주 큰 잘못을 하고도, 사죄 한 마디 없이, 그냥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어가 버리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자기 한계에 부딪히고, 제풀에 나자빠져, 실망하고, 투덜대고, 속으로 마구 울다 못해 그냥 주저앉아버리는 것이겠다.

      

 그러니 항상, 많이 벌었어도 자중하여 돈을 잘 다스리고, 높은 지위로 올라갔어도 마음만은 아래로 빨리 내려오고, 많은 성취를 하였어도 별 내색 없이, 오히려 친구와 이웃의 마음과 안녕을 먼저 챙겨라.

 이 길만이 당신 생의 빚을 잘 털어내고, 그럼으로써 항상 당당해질 수 있고, 생의 끝자락까지 만족할 만한, 행복할 만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생의 끝자락까지 힘차게 달려가라.

당당하고, 집중해서 달려가라.

돈의 환상을 쫓지 말고,

허상을 쫓지 말아라.

오직 당신만의 가치를 쫓아라!  

   

오만과 거만을 버리고 존중을 택하여라.

자랑을 버리고 겸손을 택하여라.

시기는 칭찬으로 바꾸어라.

질투는 격려로 바꾸어라.

타인부터 살려, 비로소 자신이 살게 하여라!  

   

자기 스스로 부끄러움을 제대로 알아라.

항상 반성하고 또 속죄를 하여라.

마음의 빚도 모두 미리 갚아라.

어떤 대가도 모두 치러라.

그래서 항상 스스로 당당할 수 있어라!  

  

네 삶의 끝자락까지 집중하여 달려가라.

삶의 의미와 보람으로 달려가라.

가치를 축적하며 달려가라.

희망으로 달려가라.

네 생의 끝자락까지 아름다울 수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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