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세상을 아주 멋진 모습으로 한번 살아보아라)
세상을 아주 멋진 모습으로 한번 살아보아라!
우리는 생을 살아가며, 모두들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인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인생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을 모두들 아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겠으나, 그 궁극적 지향점은 바로 자기 행복과 보람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행복과 보람이라는 지향점에 그래도 가장 가까운 실천적 모습으로, 바로 ‘멋진 모습’을 한번 제시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멋진 모습’을 또 다른 표현 방법으로는, 바로 ‘매우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름답다는 개념의 의미는 단순히 예쁘다 혹은 화려하다는 등의 미적 개념이 아니고, 그 상위적 개념으로서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특히 내적 아름다움, 자기 인격의 향기, 삶의 내재적 가치 등을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잘 생각해 보면, 과연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인생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치가 이 지구상에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마 그 유사한 수준의 표현은 있을 수 있어도, 그 이상의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완성되고, 고결할 수 있는 의미의 가치가 바로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인생 혹은 멋진 사람과 멋진 인생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만, 이러한 “아주 아름답고 멋짐”(이하 ‘멋짐’)을 우리 삶에 제대로 현현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첫째, 무엇보다 우선, ‘자신감’이다.
우리에게 만약 자신감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자기 삶을 아주 멋지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자신감이라는 것은 자기 삶을 아주 멋지게 살아낼 수 있는 가장 기초적 단서가 되어줄 수 있음이 확실하다.
그러니,
“ ‘자신감’이라는 것은 과연 자기 인생의 절반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며, 많은 사람을 대하다 보면, 유난히 자신감을 아주 두둑하게 가진 사람을 제법 보게 된다.
그런 사람은 늘 자신감 넘치는 말도 잘하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내면적으로 풍겨 나오는 그 무엇이 그의 행동에서, 그의 말소리에서 느껴진다.
심지어, 이들은 가진 게 적어도, 외모가 별로 잘 나지 못해도, 비록 옷을 헙수룩하게 입어도, 왠지 모를 그 풍모 혹은 카리스마가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고, 그 품성적 느낌이 남다르다고 평할 수 있겠다.
반면에, 가진 게 많고 생활이 넉넉한 데도 불구하고, 왠지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매우 왜소해 보이고, 생각보다는 많이 위축되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가진 게 그렇게 많고, 생활도 매우 넉넉한 편인데, 왜 그렇게 자신감을 못 가지는 것일까?
이 경우는 아마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자기 내적인 힘(주로 정신적·지식·지혜 측면에서의 내공)이 매우 약하거나, 자기만의 어떤 트라우마를 적절히 극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꼭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호언장담을 잘 늘어놓거나, 큰소리를 잘 치는 것과 큰 자신감을 지닌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이 둘을 잘 구분하여 사람을 대하여야 하겠다.
특히, 호언장담이나 큰소리를 너무 그럴싸하게 잘 치는 사람에게 당신이 만약 귀를 너무 얇게 한 상태로 접근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화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니, 매사 이런 유형의 사람을 늘 경계해야 하겠다.
실제로도, 진정 자신감이 큰 사람은, 옆에 조금만 같이 있어 보아도, 그 사람의 내면적인 세계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힘이 은근히 대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반면에 이러한 자신감보다는 그냥 크게 떠벌리기를 요령 있게 잘하는 사람은, 자칫 당신이 넘어가기도 쉽겠지만, 한 꺼풀만 더 들어가 들여다보면, 그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그 깊이가 매우 약하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며, 또 자기주장에 자랑을 유난히 많이 섞으려 하거나, 뭔가 모를 조급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줄 것이다.
여기서 특히, 상대의 그렇게 대단한 ‘자랑’에는 전혀 주눅이 들거나,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랑이라는 것은 보통, 자기 애정 결핍증이나 허세의 발로이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히려 연민을 보내야 마땅하다.
그럼, 자신감을 제대로 갖추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무엇보다, 자기 개인적 철학이 두둑해야 한다.
제대로 된 자기 개인 철학(사유와 정신 측면의 내공)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을 볼 줄 아는 눈, 세상일을 잘 헤아릴 줄 아는 통찰적 관점과 판단력,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직관적 능력 등을 두루 갖춘 내적인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간은 어차피 물리적 힘(power)보다는 머리에 든 생각이나 지혜의 대결에서 상대를 이겨낼 수 있어야,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겠다.
그러니, 자기 개인적 철학이 아주 두둑한 사람을 그 누군가가 힘으로 아무리 찍어 누르려해 보아도, 모두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행동은 순간 따르는 척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마음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대목이 바로, 자기 개인 철학이 가지는 강한 힘과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를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단면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둘째, 상대를 항상 존귀하게 대하여라.
우리가 과연 스스로 멋진 사람으로서, 자기 인생을 아주 멋지게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항상 상대를 존귀하게 대하려는 마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겠다.
그래야, 그 누구에게도 자기 내면세계를 한껏 열어젖히고, 아름다운 마음의 향기를 그윽이 내뿜을 수 있을 것이고, 세상을 항상 진실된 시선으로, 매우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즉, 자기 마음부터 아주 활짝 개방하면서, 상대를 먼저 존귀하게 대해준다면, 상대도 당신을 위해서, 혹은 주변 모두를 향해서, 일단 나름의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할 것이다.
당신의 이러한 개방된 마음이야말로, 얽힌 모든 문제를 완화시키고, 생의 의미를 참으로 더해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많이 인용하는 “고래도 칭찬하면 춤춘다.”라는 구절을 그저 쫓아가듯, 상대에게 없는 칭찬거리도 기어이 만들어 내어 칭찬해 보아도, 그러한 진정성이 부족한 칭찬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상대도 그러한 진부한 칭찬에는 진실됨이 부족함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한 막연한 칭찬, 진실성이 떨어지는 칭찬은, 생각보다는 그 효과나 영향이 매우 적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경박한 칭찬류들은, 설령 그것을 엄청난 양으로 주고받게 되더라도, 그 기쁨이나 좋은 느낌이 매우 촌각에 지나가 버리고, 금방 잊혀 갈 것이다.
즉, 칭찬이라고 다 듣기 좋고, 바람직하다기보다는, 실제와 다소 동떨어진 칭찬 혹은 실체가 부족한 칭찬은, 그 칭찬을 아무리 화려하고 유창하게 말하더라도, 그 의미 자체가 아주 미미하거나, 거의 없을 수도 있다.
간혹은 오히려 상대를 기만하거나 우롱한다는 오해까지 받을 수가 있어서, 역효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것이라면, 과연 칭찬이라는 단어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차라리 상대에게 ‘존귀함’의 감정을 한번 선사해 보아라.
즉, 당신이 먼저 상대를 진심으로 존귀하게 대해준다면, 상대는 그러한 감정을 본능적으로, 마치 텔레파시처럼,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상대도 점차 당신에게 호의를 보여 올 것이며, 이렇게 서로 귀하게 여김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호의는, 그것이 대개 진실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오래, 그것도 당신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세상에는 못난 사람도 많고, 엉터리 인격도 많고, 심지어는 사기꾼이나 범법자들도 많은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마저도 존귀하게 대하라는 겁니까?”
사실, 여러 비행으로 비뚤어지고 결국 감옥행으로 가는 사람들에 대한 원인 제공자의 역할은 상대를 존귀하게 대하지 않고, 오히려 마구 깎아내리려 하고, 심지어는 너무 지나치게 비딱하게 보려는 사람들이 그 한몫을 분명히 하였을 것이다.
즉, 우리의 심리는, 조금만 상대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그 사람이 진짜 문제가 많다는 확실한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마구 상대에게 불편한 시선과 거부하려는 듯한 안색을 너무도 쉽게 보여주는 경향이 크다.
이렇게 됨으로써, 상대에게 부당하게 상처를 주게 되거나, 필요 이상으로 상대를 미워하려는 성향도 많이 생기게 되니, 상대는 너무도 어이없는 이유로 삐뚤어지게 될 수 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잘못 꼬여진 실타래 같은 관계가 계속 쌓이게 된다면, 그 누구도 쉽게 고립시킬 수가 있어서, 서로 적이라도 된 양으로 척을 지는 경우도 많고, 아무리 좋은 바탕을 가진 사람이라도 금방 나쁜 사람 혹은 타락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악의 덫을 쳐버릴 수 있다.
즉, 우리가 만약 너무도 쉽게 이러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불편한 시선을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다고 가정해 보면, 아무리 선량한 사람도 금방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기가 쉬울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지금 죄를 지어 감옥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 스스로의 인격이 부족하고, 원래 태어날 때부터 나빴다기보다는, 그보다 더 원초적이고 근본적으로는, 그들을 그렇게 되도록 사회적으로 몰아붙인 우리 일반 시민들의 탓이 더 컸을 수도 있는 것이겠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주변에 많은 문제를 가진 자, 일그러진 인격의 소유자들을 그냥 많이 불편한 시선과 불쾌한 마음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 모두의 사회적 책임도 많이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여, 최대한 너그럽게 그들을 바라보아 주고, 보다 열린 마음과 밝은 안색으로 그들을 대해주는 것이 마땅하겠다.
셋째, 뒤끝이 없고 쿨해야 한다.
뒤끝이 없고 쿨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인생은 뭐 그리 대단한 것 같이 보이기는 해도, 어떤 측면에서는, 사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고, 아주 대단한 것도 아니니, 그 모든 것을 너무 진지하게는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항상 ‘새옹지마’의 교훈으로, 모든 것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무 순간순간에 빠져 있지도 말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밝게 살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아주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이러한 뒤끝이 없고 쿨한 성격이 그냥 자기 삶의 경험적으로 터득한 처세술의 수준이어서는 그 의미가 매우 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자기 내공의 힘에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자기는 그렇게 매사 뒤끝이 없고, 항상 쿨하게 행동하여, 자주 손해를 보는 듯할 수는 있어도, 사실은 자기 삶이 스스로의 내재적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가히 아주 작고 사사로운 것에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하겠다.
이렇게 항상 뒤끝이 없고 쿨한 마음의 상태에서는, 웬만한 문제가 발생하여도, 웬만한 손해가 좀 나더라도, 그런 것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서, 절대 거기에 함몰되지 않으려 할 것이며, 항상 차분히 그러한 문제의 뒷수습 그리고 보다 다음 단계의 처신에만 집중하려 한다.
특히, 자기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절대 대갚음이나 복수 같은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며, 항상 모든 면에서 삶의 부가가치를 잘 만들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수습해 나가려고 할 것이다.
만약, 이렇게 뒤끝이 없고 항상 쿨한 당신의 모습을 주변에서 보게 된다면, 매우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나중에 당신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해 보았을 때도, 역시 아주 멋졌고,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또, 이렇게 뒤끝 없이 항상 쿨하게 살아내려면, 매사 너무 신중하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아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이 너무 신중하면, 그 말과 행동하는 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신뢰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왠지 살갑지 않고, 정이 가기 어렵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를 제대로 풍겨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사람이 너무 부담 없이 가볍기만 하다면, 살갑게 느껴지고 정도 많이 갈 수는 있겠지만, 말이나 행동에 신뢰가 떨어지기 쉬우니, 그 감정이 오래 유지되기가 어렵다.
우리에게 진정 감동을 줄 수 있는 성품은, 너무 신중하여 사람 냄새를 풍기지 못하는 경우가 없어야 하겠고, 그렇다고 하여 너무 가볍게 처신하거나 경박함을 보여주어서는 아주 곤란하겠다.
그러니, 누구를 대하든 간에 은근히 유쾌하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깊은 믿음을 줄 수 있는 성품을 지니려 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살다 보면, 이렇게 두루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매우 훌륭하다고 평할 수 있는 자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러나, 그 흔치 않음이 당신에게는 오히려 큰 기회로 다가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당신이 만약 이렇게 유쾌하고 편하면서도, 비교적 믿음을 줄 수 있는 성품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앞서 만들어 나간다면, 점차 그런 성품이 일반 타인들의 눈에는 매우 도드라지게 보일 수 있을 것이고, 여기저기서 매우 좋은 평을 두루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니, 나중에는 당신의 삶이 얼마나 편하고 보람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넷째, 거침이 없어라.
당신 생에 있어서, 매사를 아주 거침없이 생각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 또한 아주 훌륭하고 멋질 것이다.
이는 매사를 너무 소심하게 생각하거나, 이리저리 자로 재거나, 마구 계산하려는 태도를 경계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리 소심하게 굴어서는 작은 것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할 것이며, 당신이 자로 잰 듯이 모든 것이 움직여 나가지도 않을 것이며, 이것저것 너무 잔머리를 굴려 가며 계산하게 되면, 주변에 신망을 잃게 되고, 외톨이가 되기도 쉽다.
그러니, 당신의 판단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매사를 쉽게 쉽게 거침없이 판단하고, 또 그 판단에 따라 시원시원하게 처리해 나가는 것이 매우 좋겠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 시원시원하게 결정을 내리다 보면, 무엇인가를 잘못 결정하여, 일을 다소 그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현재 되어가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기꺼이 인정하고서, 그냥 조금씩 더 고쳐가며, 계속 거침없이 진행하면 될 일이다.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것이 처음부터 너무 소심하게 굴거나, 매사 멈칫멈칫하는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결과를 낳기가 쉽다.
우리는 과연, 매사를 주저주저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는가?
아니면, 항상 거침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바로 정답이다!
그러나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는, 이런 모습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도 많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으로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자기 행동 습관을 만들어 나간다면 어느덧, 나중에 당신은 아주 멋진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져 있을 것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니, 그만큼 세상일이 예전보다는 훨씬 더 편하고 부드러워질 것이 아니겠는가?
다섯째, 그윽한 인품을 지녀라.
사람의 인품 혹은 인격을 제대로 키워나갈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바로, 자기 자존감을 듬뿍 키워나가는 일일 것이다.
자존감이란, 오직 스스로에 만족하고, 자신을 전정 존경함으로써, 이를 바탕으로 남들도 존경해 마지않는 자세일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존감을 잘 지닐 수 있으려면, 자존심이나 부질없는 생각들의 허울을 모두 최대한 벗어버려야 하며, 좀 더 나아가서는, 매사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서, 두루 교류를 잘할 수 있는 공평의 마음을 잘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도 많고, 못난 사람도 많다.
그러나, 큰 단점 몇 가지를 안 가진 사람도 없고, 큰 장점 몇 가지를 안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러니, 알량한 자존심을 절대 내세우지 말고, 사람의 신분이나 처지를 가리지 않고 두루 넓게 사귀되, 특히 사회적으로 많이 부족한 사람, 처지가 약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더욱 당신의 부드러운 눈빛과 손길을 내밀어 주는 아주 큰 산이 되어주는 것이 참으로 훌륭하겠다.
그러니, 매사 우리 사회의 매우 낮은 곳일수록, 어두운 곳일수록, 사회적 혜택의 우선권을 기꺼이 먼저 주려 해야 하고, 아주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야 할 것이며, 더군다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금의 차별적 시선이나 안색마저도 보여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의 자존감 회복을 자주 실천하여, 매사 민감함이나 조바심을 잘 떨쳐 내고, 스스로에게 만족해할 줄 알아, 항상 아주 은은하고 그윽한 인품을 발산할 수 있어야 하겠다.
우리가 어디서든 인품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왠지 내 마음마저도 이유 없이 매우 행복감으로 가득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만약 인품이 매우 낫거나 어리석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 마음마저도, 이유 없이 짜증이 나게 되거나, 매우 안타까움마저도 몰려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윽한 인품의 의미와 소중함을 대변해 준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여섯째, 너그러움이 커야 한다.
당신이 진정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가 듣기에는 아주 보배로이 들리게 한번 해보아라.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상대가 보기에는 아주 멋지게 보이게 한번 해보아라.
이러한 주문이 당신에게 너무 이상적인 상태 혹은 이루어내기 어려운 상태로 들릴지는 몰라도, 잘 생각해 보면, 이는 누구나 충분히 가능한 덕목일 수 있다.
즉, 자기 말과 행동을 보배롭고 멋지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꼭 많이 배울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습관적으로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고, 특히 많은 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당신 생각의 크기를 크게 키워보는 등으로 당신의 내적 함량과 너그러움을 잘 만들어내어 그 바탕이 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상대의 실수나 ‘옥에 티’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대하게 생각하여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서, 자기 잘못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바로바로 흔쾌히 사과를 내어놓는 것이 좋다.
당신이 이렇게 사과를 한다고 하여, 그 상대가 만약 좀생이이거나 아주 구질구질한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을 못난 인간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당신의 사회적 평가 점수를 깎으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과를 바로바로 할 수 있는 당신을 상대는 매우 인상적이고 멋지게 바라볼 것이다.
이렇게 당신이 스스로의 내적 함량을 바탕으로 한 큰 포용력을 가질 수 있어야, 진정으로 멋진 인생에 대한 이니시어티브를 스스로 거머쥘 수 있게 될 것이며, 타인에게도 멋진 사람으로 인식되어 많은 느낌과 감흥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정리해 보면,
한 번 사는 이 세상을 당신이 진정 멋진 사람으로 살아내고, 또 멋진 인생을 제대로 구가하려면, 얄팍한 처세술 혹은 입에 발린 칭찬 늘어놓기의 수준으로는 전혀 안 통할 것이며, 오직 진정한 자신감과 상대를 항상 존귀하게 대하려는 진심의 자세가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상대가 듣기에는 아주 보배로이 들리게 한번 해보아라.
당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상대가 보기에는 아주 멋지게 보이게 한번 해보아라.
무엇이든 항상 쿨하게 판단하고, 거침없이 나아가라.
좀 틀려도 좋다. 부족해도 된다. 그냥 바로바로 인정하고 수정하면 된다. 거침없는 당신에게 머뭇거림이란 없다.
또한, 설령 상대가 많은 실수를 하였거나, 당신이 그로 인해 피해를 많이 입은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상대에게 대갚음이라든지 복수하려는 부질없는 심리에 사로잡히지 말고, 항상 쉽게 툴툴 털어버리고서, 오직 그 문제의 해결점과 당신 가치의 지향점에만 집중해 나가는 것이 좋다.
특히, 처지가 매우 약한 자들이나, 어쩌다 실수를 범한 자에 대해서는 차라리 심적으로 아주 큰 산이 되어주어, 보다 너그럽게 넘겨주고, 보다 관대한 시선과 밝은 안색 그리고 더욱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며, 항상 용기의 한 마디와 응원을 잊지 않는 것이 참으로 좋겠다.
이렇게. 크게 열린 사람이야말로, 바로 ‘멋진 사람’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