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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수 Jun 21. 2024

품 안의 것을 소중히 하여라

자기 품에 들어온 것을 소중히 하여라(그림;qigoodet.life)

    

 무엇이든 자기 품 안으로 들어온 것을, 스스로 원하여 선택한바 그 자체를, 세상에서 자기 도모하고자 하는 바를 아주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온통 자기 소중한 마음을 잘 담아내고, 또 지속해 생장시켜 보아라!      

    

 “호랑이가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다.

 이렇듯, 우리네 인생살이 또한 그리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한 일은 그 어디에도 없는 법이니, 매사 어설프게 달려들거나, 어정쩡하게 대드는 경우가 결코 없어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자기 도모하는 바에 한 발만을 담그고 일하듯, 제정신을 어디 딴 곳에다 두고서, 그냥 시늉만 내는 것처럼 일하다가 자주 혼쭐이 나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러한 어설픈 행동들이 자꾸 반복되기도 하고, 그래서 마냥 크고 작은 실수가 잦아지거나, 자기 생(生)에서 뜻하는바 혹은 의미 있는 그 무엇도 결코 이루어내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스포츠 경기의 예를 들어보더라도, 경기 그 자체에 어설프게 임하거나,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선수들은 어김없이 그 도전에 실패하기 일쑤이다.

 어떤 선수는 아무 개념 없이 그냥 호기로 큰소리만 뻥뻥 치다가, 자기 혹은 자기 팀 전체가 큰 위기를 맞는 경우도 자주 목격되곤 한다.

 이렇게 경기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선수, 큰소리만 뻥뻥 치는 선수, 그 행동이 아주 어설프기만 한 선수 혹은 그러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팀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그들을 위한 미래나 희망은 그 어디에도 결코 없을 것이다.     


 또한, 어떤 조직이나 회사에서도, 과연 프로답게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만은 최선을 다해 주어야, 보다 집중도를 밀도 있게 높여 주어야, 보다 의미 있는 도전을 제대로 해 주어야만, 결국은 자기와 조직을 위한 좋은 결과를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만약, 공적인 일에 대해 온전한 집중도를 제대로 가져가지 못하고서, 매우 산만해지거나, 사적인 자기감정 혹은 개인사를 많이 개입시켜 버린다면, 과연 그 조직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경우는, 마치 자기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것에 비유될 수 있을 만큼 매우 흐트러진 상태일 것이니, 과연 무슨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정신을 담아라(그림;.bing.com/images)



 우리가 크고 작은 그 어떤 조직이나 단체의 일이든, 사회 공동체의 일이든, 하물며 자기 개인적인 일이든 간에 자신이 현재 임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히‘정성’이란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하겠다.

 이러한 정성이란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에 대해 자기 정신을 온전히 담고, 또 지속해 생장시켜 나가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겠다. 만약 아주 어려운 희망이나 과업이라고 한다면, 때로 자기 혼(魂)마저도 몽땅 담아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보통 ‘프로정신’이라고 많이 부르고 있다.

 그런데, 진정한 프로정신이란 것은 단순히 전문가적인 정신이라는 정도로 보아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를 자기 자긍심 혹은 명예심과도 아주 밀접하게 연계하여 해석해 주어야만, 그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

 즉, 제대로 된 프로정신은 아마 강한 자기 긍정 즉,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긍심 혹은 명예심 등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자긍심이란 자신에게 긍지와 믿음을 스스로 가지려는 지극하고도 아주 당당한 마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니,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아주 강하게 만들면, 그 어떠한 잡음, 혼란, 외란, 고난 등도 잘 극복 가능하고, 자기가 지극히 원하는 바에도 잘 매진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니, 이 개념은 세상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잘 완성시켜 내고, 자기 스스로도 완성될 수 있는 아주 핵심적인 가치가 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명예심 또한 어떠한가?

 이는 보통 ‘수치스러움’의 반대적 개념으로 보다 쉽게 이해해 볼 수 있겠으며, 세상이 인정하고 스스로도 인정하는 이름값, 존엄이나 품위 등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주의할 점으로는, 이를 공명심(功名心; 공을 세워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하는 마음)과는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하겠다.

 공명심은 자칫, 너무 이를 지나치게 취해 나가다 보면, 자기와 조직을 모두 망칠 수도 있지만, 명예심은 항상 자기도 살리고 조직도 살리는 길이 충분히 되어줄 수 있는 개념이겠다.       


 만약, 스스로에 대한  명예심을 잃게 되면, 자신을 비롯한 세상 모두를 잃은 상태와 유사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으니, 이는 사람이 이 땅에 와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가치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명예심 또한, 온갖 유혹이나 고난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결국 지켜낼 수 있게 해주는 핵심 동인으로 작용될 수 있는 개념이기에, 지기 일을 완성하고, 세상에 와서 스스로를 완성해 나가는 데도 절대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럼 여기서,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명예심을 잘 불러일으켜, 자기 일도 잘 완성해 내고, 앞으로 이루어 내고자 하는 바도 결국 잘 성취해 낼 수 있는 진정한 프로정신의 유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한번 들어보자.

 그리고, 이러한 사례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프로정신의 수준’을 한번 잘 점검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째로, 청결 혹은 위생 상태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어떤 열차역 대합실에서, 모바일로 예매한 열차를 타기 위해 잠시 기다리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대합실의 한가운데에는 꽈배기와 음료를 만들어서 파는 제법 큰 가게가 있었는데, 이른 아침 시간이라 매장 직원은 그날의 장사를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하느라 한창이었다.

 부지런히 재료를 세팅하고, 이리저리 옮겨 놓기도 하고 있었는데, 순간 내 시선을 크게 끌었던 장면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 직원은 밀가루 포대, 설탕 포대 등이 쌓인 더미에서 그날 필요한 만큼의 포대들을 바닥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먼지가 마구 풀풀 날리는 데도 말이다.

 그러고는, 요리기 주변까지 질질 끌고 가고 있었으며, 조리장치 바로 옆에서는, 자리를 정확히 잡기 위해서 그런지 몰라도, 발로 툭툭 차기도 하였다.       


 물론 그 밀가루 포대와 설탕 포대에 담긴 내용물 자체는 그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오염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뭐라고 지적을 한다면, 그 직원은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포대 속의 내용물은 전혀 이상이 없을 것이니, 내가 이렇게 옮기든, 저렇게 옮기든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나, 그 매장 직원의 이러한 행동은 아래와 같은 점에서 크게 잘못되었다.     

 먼저, 포대 외부가 오염이 되면, 내부도 일부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

 즉, 터지거나 찢어질 가능성도 일부 있고, 설령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고 요리 과정에서 그 포대를 열기 위해 그 포대 표면을 손으로 만져야 할 것이고, 그때 그 포대 표면에 묻은 때나 먼지 등이 결국 직원의 손에 묻거나 날려서, 자연스럽게 음식 등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또, 그 포대를 옮기는 과정에서 마구 날린 먼지들은 과연 어디에 내려앉겠는가? 바로 그 매장 내부의 조기기기 주변이나 식재료 등에 내려앉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실, 이러한 그  매장의 위생이나 품질과 관련된 문제는 이차적인 문제일 것이고, 이것보다 더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고 보아야 한다.                   


고객을 위한 정성스런 손길(그림;m.10000recipe.com/en)



 바로, 그 매장 직원이 진정 그 식재료와 먹거리를 대하는 태도 및 고객을 생각하는 태도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즉, 그 직원은 자신의 현재 맡은 바 일에 대한 정성이 매우 부족하니 성의가 없을 것이고, 성의가 없으니 마치 자기 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듯 아무렇게나 일하는 것이고, 이렇게 아주 어설프고 엉터리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 꽈배기를 사 먹아야 할 어린이, 학생 등을 포함한 많은 고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도 있을 리가 만무할 것이고, 상황이 이러하니 그 식재료와 먹거리를 대하는 태도 또한 아주 엉망이었겠고, 그래서 결국은 그 매장의 위생이나 품질 문제가 대두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것이겠다.     


 얼마 전 뉴스에 치킨집(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자신이 요리하려는 핵심 원재료라고 할 수 있는 생닭을 조리실의 더러운 바닥에 비닐만 깐 상태로 널브러 팽개쳐 놓은 장면이 고발되기도 하였다. 

 또, 어느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는 햄버거에 비닐장갑이 발견되었는데, 이때 항의하는 소비자를 오히려 블랙컨슈머(악성 민원 소비자)로 몰아세우는 양아치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어느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는 비닐째 갈아 만든 감귤주스를 먹고 한 고객이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했다.    

 또 다른 음식점에서는, 어느 가족이 외식하기 위해 찾은 식당에서 닭발과 목살을 주문했는데, 닭발을 숯불에 올리려는 순간 이상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은 바로 돌돌 말려 있는 행주였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들인가?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시민들에게 목격되고 고발되어 알려진 것만도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데, 실제로 알게 모르게 당하는 소비자들이 엄청나게 더 많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음식물 혼합 재료에 이물질이 좀 들어가 있더라도, 이 재료들이 또 다른 재료와 혼합되고, 범벅이 되기도 하고, 믹서기로 갈리기도 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그 이물질은 원래의 형체가 없어져, 보통 사람의 육안이나 미각으로는 도저히 알아내기가 힘들게 되어버린다.     


 이런 경우, 일반 시민들은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고발은커녕 그 문제에 대한 인지(認知)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 시민들은, 자기도 모르게, 엄청나게 많이 당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돈을 애써 좇는 자들은 아주 많지만, 프로정신이 매우 부족하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너무나도 쉽게 범하는 장사치들이 너무도 많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다.   

  

“식당에서 주문한 닭발에서 나온 행주”(그림; n.news.naver.com/article/003/0012699163)



 둘째로, 회사 생활에 관한 이야기이다.


 회사가 만들어 내는 제품은 그 무엇이든 간에, 심지어는 그 형태가 있는 제품이든, 없는 제품이든 간에 아주 소중한 재화이다.

 회사는 그러한 재화를 만들어 판매함으로써 직원과 직원 가족의 생계도 해결해 주고, 당 회사와 협력 회사들 및 그 소속 직원들의 자아 성취나 어떤 하고자 하는 역할을 사회적으로 이룰 수 있게도 해 준다.

 그러니, 회사와 제품(재화)이라는 개념은 그 누구에게도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이 좀 있는 직원이라면, 모든 제품을 아주 소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하고, 매사 조심조심 다루려 해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자신이 진정 프로정신이 있는 자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내가 아주 오래전에 한 전자회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을 당시의 이야기이다. 

 한 친구는 자기가 직접 가담하여 만들고, 또 테스트를 해야 할 시제품을 마치 시주단지 모시듯 정성으로 대하였다.

 마치 자기 애정이 듬뿍 묻어있는 양, 아주 조심조심 다루었다.

 그런데, 다른 친구 하나는 그 시제품에, 전혀 애착이 없고 정이 안 가는 양으로, 마구 걸터앉기도 하고, 마구 함부로 다루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그야말로, 아주 대조적인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사실, 진정한 ‘프로’라면, 자신의 분신과도 같아야 할 그 시제품에 그리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부모의 마음이랄까, 그야말로 애지중지해야 마땅하다.

 좀 더 나아가서, 나중에 자신이 직접 개발한 제품을 출하하여 떠나보낼 때는 마치 자식을 시집이나 장가보내는 기분이 들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은 비단 농부의 마음과도 유사할 것이다.

 농부들은 자신이 직접 길러낸 농산품을 역시 자식 떠나보내는 듯 애정 어린 눈빛으로 떠나보낼 것이니 말이다.

 씨 뿌리고, 물 주고, 김 매고, 거름 주어, 애지중지하며 잘 길러 내고, 또 떠나보내는 농작물이 마치 어떤 면에서는 지식을 출가시키는 마음과도 유사할 것이니 말이다.      


 화훼농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며 잘 길러낸 작물이, 심지어는 돈(판매가격)을 떠나서라도, 흠집이 날세라, 다칠세라, 망가질세라, 품질이 상할세라, 아주 조심조심하여 다룰 것이고, 혹여 잘못되어 버려지지 않도록 그 유통과정에까지 신경 쓰려하고, 모든 SCM(전 과정 공급망 관리) 면에서도 최선을 다하려 할 것이며, 오직 이 세상을 위해 값진 곳에 쓰여질 것을 학수고대할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어부’ 또한 어떠한가?

 자신이 비바람 맞아가면서, 고생고생해 가며, 소중히 잡아 올린 그 고기들이 주인을 잘 만나서 소중히 다루어지고, 좋은 곳에 쓰이거나 귀중한 밥상에 오르고, 마치 세상을 위한 소금 같은 존재가 되어주기를 바랄 것이지, 결코 함부로 다루어지거나, 아무 데나 버려지거나, 이리저리 대접을 못 받는 신세가 되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싫을 것이다.            


자기 품 안의 것을 소중히 하여라(그림;.calm.com/blog/how-to-live-alone)


       

 생각의 폭을 좀 더 넓혀 보면, 하물며 길가나 해변가 등에서 채집한 풀 한 포기라도, 식물 하나라도, 돌멩이(애완돌, 수석 등) 하나라도, 조개껍데기 하나라도, 일단 자기 품으로 들어왔으니, 소중히 간직하려 하고, 만약 그것들이 어떤 이유로든 팽개쳐지거나, 망가지거나, 부서지기를 결코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품으로 들어왔으니, 아무리 미물일지언정 자기 소중한 마음이 거기에 인입될 것이고, 그것들을 잘 보살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마 인지상정인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마음 또한 우리 생(生)의 주변에서 많이 경험하게 되는 소소한 ‘프로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셋째로, 자기 작품 혹은 장인정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문학작품, 예술작품 혹은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그 누구도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피조물이자 창조물에 해당하는 작품에 대해서 아주 각별한 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직접 그것들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내었으니, 왜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혹여 돈(판매가격)이나 명성을 떠나서도, 항상 그 작품들이 타인들에게 대접받기를 원할 것이며, 특별한 애정이 가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도공)은 또 어떠한가?

 온통 자기 정신을 그 도자기에 쏟을 것이다.

 이미 우리의 ‘조선 도공’들의 땀과 정신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한 편이다.

 그들의 장인 정신은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예술혼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일본에 끌려가서도, 그 기술력과 장인 정신을 인정받았고, 일본 사무라이들을 감복시켰으며, 성대히 대접받기도, 때로는 신과 같이 여겨지기도 하였다.     


 예로부터, 총잡이는 총을 함부로 쏘지 않고, 진정한 검객 또한 그 뛰어난 검술을 결코 함부로 꺼내 놓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결심하여 꺼내면 단번에 결판을 낸다.

 이러한 총잡이나 검객 또한 자신이 지닌 무기, 기술(무술)과 정신을 참으로 사랑하며, 애지중지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대개 아마추어들이 설쳐내는 작은 골목이나 어설픈 무대를 거부하며, 함부로 아무 곳에서나 자신의 무술을 결코 꺼내 놓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기교나 수준은 이미 아마추어들의 어정쩡하게 난무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러니, 절대 함부로 나서지도 않는다. 아니, 그렇게 쉽게 나설 이유가 없다.

 오로지 자기 품 안의 것(검, 검술, 무술 정신 등)을 소중히 간직하였다가 아주 소중히 쓰려고만 한다.

 그게 바로 자기 스스로의 자긍심, 명예심 또는 진정한 프로의 정신일 것이니 말이다.      


 또 다른 예로서, 드라마 등을 통하여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인물인 ‘허준’은 동양 최대의 임상의학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동의보감’을, 도중에 선조의 죽음으로 인한 혹독한 유배 생활에도 불구하고, 지속해 편찬하여 끝내 이 땅에 내어 놓고야 말았다.

 물론, 이 책이 허준의 단독 집필은 아니었지만, 그가 총책임자가 되어, 끝까지 책임을 지고 만들어낸 것이니, 그야말로 그는 동의보감의 친아버지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동의보감은 18세기에 이미 일본과 청나라 등에서 많이 간행될 만큼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도 국내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끊임없이 번역 출판되고 있다. 

 그래서, 적국인 일본마저도 그를 가리켜 ‘한국행림(한국에 나타난 최고의 의관)’으로 우러러보았으며, 청나라에서는 ‘천하의 보배를 만든 사람’이라며 매우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허준 역시 자신의 동의보감을 아주 프로다운 정신으로 이루어낸 것이겠다.

 가히, 자신의 정신을 받쳐, 혼을 다 받쳐 매진한 덕분이리라.     


 그런데, 이러한 프로에도, 그 지향점 측면에서, 주의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지나친 프로 혹은 잘못된 프로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즉, 간혹 너무 지나침이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하여, 프로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자기 고집과 아집이 심해질 수도 있으며, 이는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사태를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프로정신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엔지니어가 자기 기술이나 재주를 너무 믿고 마구 고집을 부리거나, 학자가 교만하게도 너무 자신의 지식을 믿고 지식 장사를 한다든지, 정치인이 자기의 위력을 너무 믿고서 상대 정치인을 아예 무시하고 자기 잇권만을 챙긴다든지, 기업인이 기업가 정신은 전혀 없이 자기 아집에 의한 경영을 하여 소속 직원들이나 협력회사 전체를 거덜 내는 경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러니, 항상 닫혀진 프로정신보다는 활짝 열린 프로정신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잘 인지하여야 하겠다.   

  

 결론적으로,


 무엇이든 자기 품으로 들어왔으니, 소중히 간직하려 하고, 만약 그것들이 어떤 이유로든 팽개쳐지거나, 망가지거나, 부서지기를 결코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즉, 자기 품 안으로 왔으니, 아무리 미물일지언정 자기 소중한 마음이 거기에 인입될 것이고, 그것들을 잘 보살피려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아마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일 것이니, 이러한 마음을 늘 거부하거나 간과하지 말고서, 매사 자기 품 안의 것을 아주 소중히 하여야 하겠다.    


자기 일에, 자기 도모하는 바에 자기 정신을 담아라!”(그림;/qigoodet.life/product_details/1717584.html)

               


그러니,     


  ♡♡♡ 품 안의 것을 소중히 하여라 ♡♡♡     


자기 품으로 들어왔으니

소중한 자기 마음을 주어라.

지속해 소중히 간직하려 하고

애틋한 마음도 주어 보아라.

끝내 생장시켜 보아라.

      

품 안의 것을 소중히 하여라.

바로 거기에 소중한 자기 정신을

온전히 담고, 지속해 정성을 주어라.

도모하는 바에 정신을 담아라.

온통 자기 정신을 담아라. 

    

자기 일에 자기 정신을 담아라.

아주 소중한 자기 정신을 말이다.

당신이 하려는 일 또한 당신의 소중한

분신이요, 이 세상에서의 자취이니

아주 소중한 흔적으로 잘 남겨라. 

    

자기 일에 자기 혼을 담아라.

스스로가 자부하는 혼을 말이다.

일체의 악마성 유혹을 모두 거절하고

오직 자기 다운 혼을 잘 담아서

소중한 작품으로 완성하여라.  

   

자기 일에 자기 마음을 담아라.

간절하고 설레이는 마음을 말이다.

그 일이 잘 되게끔 항상 잘 보살피고

물과 기름진 거름을 잘 뿌려주어

당신만의 작품으로 만들어 가라. 

    

자기 일에 자기 생각을 담아라.

가치롭고 의미 있는 생각을 말이다.

오매불망 고민한 생각을 제대로 담아

그 일이 과연 남들로부터 제대로

인정받고 대접받도록 챙겨라.  

   

원하는 바에 자기 정성을 담아라.

자기 온전한 정성을 제대로 담아라.

오직 지속적이고 가지런한 정성을 담아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하여라.  

   

자기 원하는 바에 삶을 담아라.

자신의 아주 가치로운 삶을 말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가치를 듬뿍 담아내어

네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어 보아라.

거기에 흐뭇한 미소를 보내 보아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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