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아야 세상 민심을 얻을 수 있다!
한결같아야 세상 민심을 얻을 수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민심이 중요하다. 민심이라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여론, 국민 정서 등과 비슷하지만, 민심은 좀 더 저변에 깔린 정서(바닥 심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좀 더 폭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대표적으로 민심을 얻어 임금으로 추대되었고, 통일 국가의 위업을 달성한 인물이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왕건은 원래 궁예(弓裔) 휘하의 장수로서 주로 활동하였지만, 그의 어진 성품 덕분에 추종자도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왕건이 모시던 궁예는 평소 스스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고 자랑하였고, 이를 관심법(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으로 이름하였고, 이를 근거로 엄청난 신하들을 역모죄 가담의 죄목으로 죽였다. 그러나 민심과 신하들의 두터운 신임을 업은 왕건을 엄청난 정치적 사유와 명분 없이는 감히 죽이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신의 권좌를 위협하는 왕건에 대해서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타협 혹은 회유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민심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번은, 궁예가 많은 백성과 신하들이 자신이 아닌 왕건을 더 따른다고 생각하여 불안을 느낀 나머지, 독특한 관심법으로 왕건을 시험에 들게 하였다.
“그대가 어젯밤에 사람들과 군사를 모아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데, 이 말이 진짜 사실인가?”
이 말에 왕건은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태연하게 웃으면서 “어찌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에 궁예가 더 다그치며 물었다. “그대는 결코 나를 속일 수 없다. 나는 능히 그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지금 정신을 집중시켜 그대의 마음을 읽어보겠노라.”라고 말하고서는 집중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바로 이때 옆에 있던 최응(궁예의 책사이지만, 왕건을 존경한 인물)이 고의로 붓을 떨어뜨리고서 그것을 줍는 척하면서 왕건에게 귓속말로 “지금 복종하지 않으면 위태로워지십니다!”라고 귀띔을 해주어, 이를 금방 알아차린 왕건은 “사실은 제가 모반을 계획하였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하였고, 이 말에 궁예는 껄껄 웃으면서 “그대는 과연 정직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하면서, 오히려 주연을 베풀어 주고, 이어 금은으로 장식한 말안장과 굴레, 황금 한 덩이를 왕건에게 내려주었다는 고사가 전해온다.
나중에 왕건은 자신의 겸양에도 불구하고, 신숭겸, 복지겸, 홍유 등에 의해 극구 추대되어 궁예를 몰아내고 새 임금이 되었으며, 국호를 고려로 하고, 백제와 신라에 대한 정복 전쟁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후백제의 왕실은 자체 내분으로 인하여, 임금인 견훤이 맏아들인 신검(神劍)에 의해 추방되어 금산사에 유폐되기에 이르렀으며, 나중에 금산사를 탈출하여 고려에 귀부하였고, 오히려 신검에 대한 고려의 정벌에 견훤이 직접 동참하게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백제와의 전투에서는, 그 전세가 고려로 완전히 기울게 되었다. 후백제 왕실은 그야말로 극심한 민심이반(民心離反)을 겪게 된 것이고, 그것은 멸망의 길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한편 신라 경순왕은 결 국 고려에 투항할 의사를 피력하고, 마의태자 등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건에게 자진 귀순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정복 과정들을 보면 왕건의 좋은 인품과 사람 됨됨이가 백성들 사이에 널리 입소문으로 퍼지게 되었고, 그 이미지 또한 상당히 훌륭했었기 때문에, 왕건에게 있어서 통일 전쟁이 대체적으로 순조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 이후에도 전체 유민과 백성의 화합을 위해, 고려가 고구려 및 발해의 계승자임과 동시에 신라의 계승자임을 내세웠던 점, 불교의 장려를 통해 전체 백성의 사상적 통일을 꾀한 점 등은 모두 초심을 잃지 않고 민심을 챙기려는 한결같은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민심을 잡는 자가 결국 권력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쿠데타 등으로 한 나라의 정권을 잡는다고 하여도 민심의 이반이 나타나면 금방 반대 세력에 의해 축출당할 수 있다는 것이 긴 역사적 관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요즘도 많은 정치인이 정치를 한다고 나서지만, 저마다 민심 혹은 여론에 초민감 상태인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인터넷매체, 모바일 매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바닥 민심 잡기가 자신의 정치적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혹은 권력을 한번 멋지게 잡아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여론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을 연일 해나가고, 고민하는 것이 요즘의 보통 정치인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관점이 또 하나 있다. 진정 자신에게 유의미한 민심(여론)은 그리 짧은 시간에 오지도 않고, 오더라도 그것이 얄팍하다면 금방 사라질 것이며, 설령 운이 좋아 민심을 얻어 좋은 권세를 비교적 쉽게 잡았다고 하더라도 그 진정성의 깊이가 얕고, 국가와 국민에 대한 참된 봉사 정신이 약하다면, 즉 그 진정성과 참됨(한결같음)이 없다면, 금방 다시 역풍을 맞을 것이 자명함을 역사는 수없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의 독재적 정권이나 군사 정권들이 그렇게 가식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려고 애써도, 결국은 나중에는 여론의 심판이자, 국민의 심판을 받고 쓸쓸히 퇴장하거나 몰락의 길로 가지 않았던가? 다시 말해서, 민심을 원한다면, 고금을 통해서, 태조 왕건처럼 그 진정성의 깊이가 있게, 변함없는 마음으로 아래로부터 국민에게 다가서야 국민이 결국 인정하여 마음을 열어 기회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