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포정해우’이다

항상 자신이 마음먹고 하고 있는 일을 경지로 향하게 하여라!

by 신정수

누구나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제대로 집중하여 그 일을 스스로 경지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면서 남들이 하는 일을 아무런 생각 없이 모방하는 것은 금물이다. 모든 일은 자신이 충분히 생각과 고민을 해본 후 제대로 선택을 하여야 하고, 그 선택 후에는 한결같이 집중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과연 선택이 중요한가, 선택 이후의 실천 혹은 집중이 더 중요한가의 문제이다.

보통 사람들은 선택이 상당히 중요하고, 여기에 인생의 승부를 걸려고 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많이 잘못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선택지에서 어느 것을 하는가의 문제보다 선택 이후의 실천과 집중이 실제로는 훨씬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익숙히 알려져 있는 “왕후장상 영유종호(王侯將相 寧有種乎; 왕, 제후, 장수, 재상의 지위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 중국 진나라 말기 ‘진승’이라는 농민 봉기자(선동자)에 의해 사용된 말인데, 이후 우리나라의 ‘만적의 난’ 등에서 사용된 구호로도 유명하다.

이 말을 요즘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대통령감이나, 장관감, 국회의원감, 유명인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라도 노력하고 소질을 잘 개발한다면 너끈히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볼 수 있겠다. 즉, 누구나 그 귀함과 천함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그 직분의 높낮이 또한 정해진 것이 아니며, 자기가 만들어 나가기 나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른 예로, 어떤 학생이 공무원의 길을 선택하든, 회사원의 길을 선택하든 별로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사람의 소질이라는 것이 하나로 딱 고정되어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개발하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개발될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을 선택하는가 혹은 회사원의 길을 선택하는가의 문제 보다 오히려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 그 선택 이후에 자신이 진정으로 보여주는 행보일 것이다.

설령 어떤 학생이 자기의 소질에 조금 맞지 않는 길을 선택하였다고 하더라도 선택 이후에 일에 대한 매진을 잘 해나간다면 매우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거꾸로 아무리 자기 적성에 맞는 선택을 잘 선택하였다고 하여도 선택 이후의 행보가 좋지 못하면 아무런 결실도 만들어내지 못할 수 있다.


예전, 중국 전국시대에 포정이라는 솜씨 좋은 백정이 있었는데, 어느 날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소에 손을 올리고 어깨로 받치며, 발로 밟고 무릎을 굽힐 적마다 칼질하는 소리가 ‘싹싹 쓱쓱’ 울려 퍼져 마치 음악과 같은 가락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에 문혜군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훌륭하도다! 사람의 재주가 어찌 여기까지 미칠 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면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느냐? 자세히 설명을 좀 해보아라.”

그러자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도(道)로서 이는 손끝의 재주보다 뛰어난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겁이 나고, 손을 제대로 댈 수도 없었으나, 3년이 지난 이후부터는 어느새 소의 온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마음으로 소를 대하고 있는 것이며, 결코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러운 작용만 남았습니다. 그러면 천리(天理)를 따라 쇠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 기술의 미묘한 적용으로, 저는 아직 한 번도 칼질을 실수하여 살이나 뼈를 다친 적이 없습니다.



포정해우1.jpg 포정해우(庖丁解牛, 그림; chinaplus.cri.cn/chinaplus/nihao/fun-chinese)


솜씨 좋은 소잡이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제 칼은 약 20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마치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 칼을 사용하였어도 칼날이 마치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군데, 뼈와 힘줄이 엉켜 있는 곳에 다다르면 그것이 어려운 일인 줄 알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하여 눈은 한곳을 응시하고 칼질은 더디어지면서 칼놀림이 몹시 미묘해집니다. 그리고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일이 끝나면,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잠시 숨을 고른 후, 이내 흐뭇해져 칼을 닦아 넣어 둡니다.”

이 말을 들은 문혜군이 감동해서 말했다.

“정말 훌륭하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 자연의 이치를 좇고, 무엇이든 인위적이거나 의식적으로는 행하지 않으려는 도가의 수련법)의 도를 터득했도다.”

이러한 ‘포정해우(庖丁解牛)’의 고사는 『장자』의 「양생주(養生主)」편에 나오는 말로서, 기술이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남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 되었다.


또 다른 예로, 많이 알려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에서는,

아버지가 수양딸(송화)한테 판소리 공부를 시키는데, 옆에 있던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까짓 소리를 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그까짓 것 때려치워 버려라. 굶어죽게 생겼는데, 무슨 소리냐?”

이에, 아버지가 매우 답답해하며, 아들을 막 때리면서 대답을 하기로,

“ 야 이놈아 쌀이 나오고, 밥이 나와야 소리 하냐?

자기 소리에 자기가 미쳐서 득음을 하면, 황금보다도 좋고, 부귀공명보다도 좋은 것이 바로 이 소리판이다. 이놈아!”

포정해우2(서편제)_4.jpg 영화 ‘서편제’


그야말로, 소리에 자기 일생을 건 한 예술가로서의 삶을 잘 표현한 말이겠다.

또한, 주인공인 송화에게 아빠가 들려주는 말 중에 이런 대사도 나온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하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 이렇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재주의 경지를 높게 달성한 이들을 우리는 흔한 말로, 달인, 도사(道士), 천재, 영웅 등으로 부르면서, 그들의 능력에 감탄해 마지않기도 한다.


한편, 요즘 우리 사회에는 디깅(digging ; 어떤 취미나 트렌드 등의 측면에서 자신이 원하는 특정한 곳에 집중해서 깊이 파고드는 성향), 덕후(특정 분야에 몰두하여 스스로 거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 열정과 흥미를 지니고 있는 사람), 굿즈(특정 상품의 브랜드나 유명인, 연예인 등이 출시하는 파생 상품 혹은 기획 상품) 등의 신조어가 판을 친다.

이런 신조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개별적 성향이나 취향을 충분히 즐기더라도 ‘포정해우(庖丁解牛)’처럼 스스로 제대로 된 가치 철학을 담을 수 있다면, 그것들과 함께 네 인생은 보다 의미와 가치가 더해갈 것이고, 더욱 더 빛날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항상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판단이나 쾌락을 추구하면 안 되고, 보다 자기 성찰을 통해 자기 내면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데, 여기에서 꼭 주의할 점이 있다.

득도(得道)를 한답시고, 경지에 오른답시고, 혹은 디깅(digging) 등을 마음껏 즐긴답시고 절대 무리한 행동 혹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저지르면 안 된다. 서편제에서 아버지는 딸을 득도시키기 위해서, 딸에게 눈을 멀게 하는 약을 달여 먹이게 된다. 즉 눈을 멀게 하여 딴 생각은 전혀 못하게 하여 소리에만 미쳐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죽기 전에 딸 송화에게 말하기를, 자신이 딸의 눈을 멀게 한 장본인이었다고 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후회를 하고, 또 한탄을 해보아야 이미 그릇되게 저질러진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닌가!

아무리 자기 자식이라고 하여도, 마무리 자기 제자라고 하여도, 자신의 생각이나 철학을 절대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올바를 인격으로 자라고, 스스로 깨달음의 삶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어른이 한순간 엄청나게 그릇되거나 엉뚱한 생각과 행동에 사로잡혀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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