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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Dec 10. 2023

'대퇴사시대'가 반가운 90년대생

"저 사람, 되게 자유로워 보인다."


눈 쌓인 바르샤바의 거리를 걷다가 전동킥보드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봤다. 바퀴만 있는 외발자전거 같은 그것을 능숙한 듯 타고 가는 남자를 보고 있자니 그런 느낌이었다. 저 사람의 하루하루도 저 모양을 닮아 여유롭고 자유로울 것 같다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를 쭉 보고 있자 옆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다희야, 너보다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어."


아하핫. 맞다 나도 그렇지, 자유롭지. 남편의 말에 왠지 헤헤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언제나 '너는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아'라며 나를 오냐오냐 키운 남편 덕에 유럽에서 정말 거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고 있는 요즘. 내 하루하루의 통제권을 온전히 갖고 있음은 이런 것이구나,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Unsplash



고등학생 때부터 노트북 하나만 안고 다니며 일하고 여행하는 그런 낭만적인 인생을 꿈꿔왔지만, 나는 늘 '회사'를 안 다니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탈회사인간'이라는 진격의 2000년 대생들도 아니고, 이젠 라떼 세대에 들어가는 90년대생이다 보니 그 어쩔 수 없이 딱딱하게 굳어져있는 시선 같은 것이 남아있어서겠다. 나는 93년생, 우리 같이 이른 90년대생이 딱 과도기에 있었다. 친구들이랑 열심히 문자를 주고받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초기 스마트폰이 나왔으니. 그러니까 우리 세대는 '그냥 인터넷'에서 '완전한 인터넷과 대 SNS 시대' 사이로 넘어가는 그 시기에 어른이 되었다.



특히 20대 중후반에는 어떤 불안이 있었다.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길은 오만가지가 있어!' 라 생각하면서도, 그 나이에는 아무래도 다들 회사를 다니거나 최소 대학원에 있었으니. 좋아하는 작가님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내가 '회사 체질'이 아닌 사람임을 진즉에 알아챘지만, 늘 한켠에는 '역시 회사를 다니는 척이라도 해야 하나...'따위의 생각을 했다. 공무원을 그만둘 때도 그랬다. 주변에서 모두가 말리고, 내 사직서를 받은 40대 서무님은 이것이 기우가 아니길 빕니다,라는 말도 했었다. 그 때문에 나는 한참 동안을 혼자 고민했었다. '과연 나는 이상한 사람인가'에 대해.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완전히 지나갔나 보더라. 그리고 내 갈길을 간다 마이웨이 시대가 왔나 보다. 2030 청년들의 대퇴사 시대, 직업의 한 분야를 당당히 차지하는 SNS, 특히 코로나 이후로 자연히 자리 잡은 재택근무제와 비대면 소통. 이제 회사에 안 다니는 것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독립근무자로 일하며 먹고사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저 하나의 다른 삶일 뿐. 이 시대가 몇 년만 빨리 왔었더라면 나와 내 남편도 그리 울며불며 관두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조금 아쉽게 되었다.






대학-취업-결혼-출산-육아 끝에 이제 노년기가 되어서야 쉴 수 있는 그런,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적 단계들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기존의 것들이 유지되어야 사회 전체에는 좋을지 몰라도, 확실히 개개인에겐 이로써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변화가 마음에 든다. 왜, 청년들이 대기업, 공무원을 원하기보다 스티브잡스를 꿈꾸며 도전하는 사회가 발전한다고 하지 않나. 인스타,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크고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런 변화를 이끈 것 또한 SNS이기에 이번만큼은 장한 일을 했다고도 본다.



Unsplash



근래에는 내 친구들도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보다 아닌 이들이 더 많아졌다. 대부분 결혼도 안 했고, 부모가 된 이들은 물론 더 없다. 다들 옛날의 그 사회적 인식과 같은 것에 눈치를 보기보다는 본인에게 집중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자문하며 저마다의 인생 답을 찾아가는 듯하다. 조금 일찍 시작한 나는 '유별나다'라는 소리를 실컷 들으며 내 자리를 겨우 찾아왔지만, 요즘은 다들 그러니. '나'에 대해 온전히 집중하는 시대. 청년들이 1인가구, 비혼, 독립근무자, 경제적 자유 등 갖가지 공동체도 만들며 서로 으쌰으쌰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심지어 요즘 친구들은 한때 열심히 안 산다며 욕을 먹었던 YOLO(You Only Live Once) 욜로족도 아니다. 다들 제 한 몸 뉘일 곳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재테크도 하고, 갖가지 이유로 '무지출 챌린지'와 같은 아나바다 운동 비슷한 것도 하더라. 각자 1인분의 삶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물론, 이런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여러 방면에서의 부작용들도 나타나고 있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인한 투자 중독이나 쾌락주의의 만연, 출산율 감소 등 여타 사회적 문제들이 동반되고 있지만 이 또한 사회적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부작용이니, 누가 누굴 탓할 수 있겠나. 그저 모두가 본인에게 최선인 삶을 찾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그렇게 오픈마인드는 아닌 한국 사회에서 이런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자주 나타나고 부각된다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반드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도 안정적으로 '취업'은 해야지 하는 것도, 혼자 힘들 텐데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도,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를 한 명쯤은 나아야지 하는 그 모든 '당연히'라 여겨지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닌' 사회가 되고 있는 이 모양이 참 마음에 든다.



대퇴사시대가 되면서 나도 이제는 진짜 '회사'에 안 다니는 죄책감은 없어졌다. 사실 아주 슬쩍 남아있긴 하지만, 그만큼 여기 유럽에 사는 한 명의 디지털 노마드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되는 것이겠지. 직장인, 1인 사업가, 프리랜서, 독립근무자, 자영업자, 디지털 노마드, 욜로, 딩크 등 모든 형태의 삶을 응원한다. 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구를 사인할 때 함께 써드리곤 했는데, 그것이 딱 내 마음이다.



더 다채로운 삶이 응원받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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