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롬 Jan 03. 2024

아침을 차려놓는 남편


너는 내일 된장찌개를 먹을 거야.


30대는 살려고 운동한다며 남편과 함께 집 근처 헬스장에 가기 시작했다. 12월 31일부터 했으니 이틀은 넘겼다. 후.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일단 오늘도 무사히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그런데 갑작스러운 운동과 식단관리에 균형을 잡지 못했고, 운동한 것이 아깝다며 저녁을 가벼이 먹었다. 제대로 먹지 않으면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나이임을 까먹고. 그 탓에 밤부터 심하게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남편과 침대에 꼭 붙어서 각자 웹툰을 봤다. 아아, 웹툰에도 김 모락모락 음식이 나온다. 이미 양치질을 했으니 뭘 먹지는 못하겠고, 유튜브에 '한식 먹방'을 검색했다. 김치찜 남은 국물에 라면과 볶음밥을 먹는 영상이 눈에 띄었다. 우리 이거 같이 보자며 남편에게 화면을 들이댔는데, 그는 어쩐지 은근한 웃음을 짓더라.


먹방을 보니 뱃가죽이 등허리에 달라붙는 듯했다. 20대에는 땀 흘리며 운동하고서 한 끼 두 끼 굶어도 별 문제없었는데 역시 이젠 안 된다. 저 사람 너무 부럽다, 갓김치 좀 먹어주세요, 를 반복하다 먹방을 껐다. 남편은 보통 내가 자기 전까지 기다려주는데, 배가 고프니 도저히 잠이 안 오더라. 남편을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와, 진짜 너무 배고프다. 우리 내일 뭐 먹을지 같이 얘기해 보자. 그는 날 보더니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내일 된장찌개를 먹을 거야.






밤사이 배가 홀쭉해졌다. 내 다시는 저녁을 가벼이 넘기지 않으리. 배고파서 그런지 아침잠 많은 내가 일찍도 깼다. 외로이 출근 준비를 마친 남편은 늘 그랬듯 침대 쪽으로 조용히 다가왔고, 배는 고픈데 정신은 덜 깨어 헤롱헤롱하게 누워있는 내게 속삭였다.


"된장찌개 끓여놨어. 너 좋아하는 감자 많이 넣었으니까 좀 더 자고 이따 꼭 챙겨 먹어. 근데 시간이 없어서 밥은 못했어 미안. 대신 계란 삶은 거랑 같이 먹어!"


잠결에 희미하게 들리던 탁탁탁은 감자 써는 소리였을까. 본인은 출근을 하고, 난 집에 있는데도 남편은 나를 위한 아침을 차려놓는다. 만약 상황이 반대였다면 나는 하지 않았을 법한 일을. 서방님 출근하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코롱코롱 매일 늦잠 자는 잠만보 부인이 뭐 이쁘다고 매번 아침을 차려 그래.


나만을 위한 아침을 차려놓고 출근하는 남편. 그는 사무실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난 뒤, 내가 조금 더 자고 일어나서 그제야 답장하면 또 물어본다. 아침 챙겨 먹었어? 따땃하게 데워서 먹어!


8년째 남편에게 빚을 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걸 남은 70년 동안 어찌 다 갚으면 좋을까.



#

Photo: Unsplash, SHOT

작가의 이전글 내가 우울증에 안 걸리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