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보겠습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무언하를 할 때 '작업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먼저 찾고 시작한다.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그저 센스 좋은 채널 운영자들의 감성을 믿고, 끌리는 썸네일을 클릭할 뿐. 그 덕에 내 유튜브 메인 화면은 온갖 장르의 플레이리스트로 가득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 한참 늦은 시간에 무언가 할 일이 생겼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음악을 훑었다. 하나가 눈에 탁 띄었다.
유럽의 어느 허름한 바에서 재즈가 흘러나왔다.
누구라도 한 번쯤 주춤하게 되는 제목. 유럽의 어느 허름한 바라니. 로맨틱해. 게다가 거기서 재즈가 흘러나온다고. 심지어 썸네일의 저 유럽 아저씨는 와인을 마시고 있어. 아니 이건 당장 들어봐야 해. 아, 역시 몸이 녹는다. 말 그대로 내가 지금 유럽의 어느 허름한 바에서 흘러나오는 재즈를 듣고 있는 것 같아. 낭만적이야. 당장 부엌에 있는 와인을 가져오고 싶은데. 저런 허름한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런데 문득 든 생각.
낭만의 끝이라는 프랑스 파리나 체코 프라하는 아니지만 폴란드 바르샤바도 멋지니까. 내가 지금 당장 밖에 나가서 골목의 허름한 술집을 찾으면 바로 저 모습이 아닌가. 재즈는 안 나오면 대충 이어폰 꼽으면 되고. 그렇네. 유럽의 어느 허름한 술집, 나는 당장이라도 갈 수 있는 거였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김혼비님의 <아무튼, 술>
가장 좋아하는 만화&드라마는 <와카코와 술>
새로운 술과 술집에 눈이 번쩍 뜨이는 나는야 애주가
늘 생각해 왔다. 도쿄에 가게 된다면 <와카코와 술>에 나왔던 가게들에서 똑같은 안주와 술을 먹어보리라. 하지만 나는 지금 유럽에 있고, 언제 일본에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 그런데 만약 유럽판 와카코와 술이 있다면. 아니, 없으니 '26세 무라사키 와카코' 대신 30세의 내가 대신 유럽의 허름한 술집을 찾아다닌다면 어떨까. 굳이 허름하기까지는 않더라도 그 자체로 낭만이 흘러넘치는 유럽의 어느 골목 술집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안주와 더 새로운 술을 시도하고, 그것을 글로 남긴다면.
캬- '유럽의 허름한 술집을 찾아다니며'부터 침이 고였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술은 너무 많다. 유럽은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 비쌀지언정 술술술 술만은 합리적인 가격인 유럽이니. 나는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무척 많지만 그중에서도 사실 술이 제일이다. 내 책의 작가소개에도 적혀있는 내 블로그 이름은 '맛있는 술을 찾아 세계여행 중입니다'. 김혼비 작가님의 <아무튼, 술> 북토크에 가는 것이나 확장판을 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에 있고, 레스토랑에 가서 메뉴판을 받으면 일단 맨 뒷장을 먼저 살핀다. 여기는 이런 술이 있으니 나는 오늘 이걸 마셔야겠다. 그럼 이와 잘 어울릴 법한 메뉴를 고르면 되겠군. 그러니까 술이 일단 먼저고, 술이 일단 기준이 된다. 그에 맞춰 그날의 식사 분위기가 정해지는 것인데, 아무튼 술이 좋다는 말.
주절주절. 술에 관해서라면 기어코 혀가 길어지고야 만다. 유럽의 허름한 술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저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아마 언젠가는 유럽판 와카코와 술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주절주절 길어진 글 끝에는 결국, 곧 매거진 하나가 더 추가될 예정이라는 말! 이름은 역시 [유럽의 어느 골목 술집]이 좋겠지. 구글맵으로 미리 검색하지 않고 정처없이 걷다가 발견하는 그런 곳들이 우선이 될 것이다.
+ 혹시 독자님들 중에 가보고 싶으셨던 유럽의 술집, 혹은 궁금했던 유럽의 술이 있으시다면 살짝 알려주세요! 대신 가드립니다 :) 저는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에 살고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주변 유럽 국가 여행을 가기에 다른 나라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계신 분이 있다면, 같이 가는 것도 환영입니다, 애주가 친구 두 팔 벌려 대환영! 한국 당근마켓 밥친구처럼 유럽 브런치스토리 술친구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