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 듯이, 부부들도 저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으며 같이 무언가를 즐기거나, 다른 공간에서 각자 편하게 할 일을 하거나. 우리 부부는 이것이 반씩 섞인 형태이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보고 있지만, 각자의 것을 즐기는 방식.
바로 어제를 예로 들면 이렇다. 남편이 출근을 안 하는 주말이라 낮에는 같이 카페를 갔다가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간다. 우리 집 부엌 요정인 남편은 식사 준비를 하고, 나는 거실의 큰 TV로 밥 먹으며 볼 만한 것을 튼다. 주로 우리가 좋아하는 미드인 모던패밀리(Modern Family). 에피소드 하나가 다 끝날 때쯤, 남편의 요리가 완성이 되고, 다음 에피소드를 보면서 식사를 즐긴다. 그렇게 1차는 끝이 난다.
다음 날도 쉬는 휴일에는 2차, 3차까지 있기에 바로 준비한다. 애주가인 나는 술과 안주를, 남편은 탄산음료와 과자를 준비해 놓고 소파 양 끝에 자리를 잡는다. 큰 TV로는 둘 다 좋아하는 영화를 틀어 놓는다. 해리포터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그리고 조용한 파티를 시작한다. 나는 요즘 주로 웹툰을 보면서 글을 쓰고, 남편은 게임을 하면서 데이터 공부를 한다. 단순 유흥과 생산적인 일이 섞인 희한한 모양새이지만, 이렇게 하면 약간의 죄책감을 덜 수 있다.
잘 놀고 있어?
가끔 서로를 쳐다보며 체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이 침묵의 파티는 대게 새벽까지 이어지곤 한다. 남편은 '평일에는 못 노니 최대한 늦게까지 실컷 놀겠어!' 하는 직장인의 마음가짐이고, 출근을 하진 않지만 쉬는 날이 정해져 있는 프리랜서인 나 또한 마찬가지. 휴일은 남편 스케줄에 맞춘다. 같이 놀아야 재밌으니까. 평일에도 비슷한 모양새이다. 물론 노는 건 아니고 거실에 있는 각자의 책상에서 일과 공부를 하는데, 꼭 같은 공간에 있는다. 연애할 때부터 매일 같이 붙어있던 생활이 이런 식으로 굳어졌다.
이런 요상한 패턴이 생긴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처음에는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난 혼자 웹툰보고 싶은데, 서운해하면 어쩌지.
같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것 참 곤란한걸.
모든 것을 같이 해 온 나와 남편인지라,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남편은 노는 날이면 "오늘 영화 뭐 볼까?"라고 꼭 물어봤기에. 영화를 보면서 폰으로 딴짓을 하다가 어느 날은 당당히 말했다. 영화는 틀어놓되 나는 할 일 하면서 볼게.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그럼 나도 게임하면서 봐도 돼? 아아. 역시 남편은 나고, 나는 남편이다. 사실 그도 실컷 제 할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심심할까 봐 말을 안 한 것이었을까.
봉인이 풀리자 그때부터 우리는 모두가 충분히 만족하며 즐거이 보낼 수 있는 이 '따로 또 같이' 파티를 시작했다. 물론 새벽까지 내내 이러진 않는다. 아무래도 부부이다 보니 제 할 일들을 하다가도 은근한 시간을 가지기도 하고, 둘 중 어느 한 명이라도 하던 것에 흥미가 떨어질 때는 부둥부둥 안고 듣기만 하던 영화를 제대로 보기도 한다. 여행이나 나들이를 가지 않는 휴일은 대부분 이렇게 보내게 되었다. 만족도는 최상.
사실 나는 가끔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안방으로 슬쩍 들어가곤 하는데, 그럴 때면 5분 내로 남편이 토도도도 따라온다. 왜 여기 있어? 거실에서 같이 놀자. 허리가 아파서 침대에 엎드려 놀아야겠다며 핑계를 대면 그는 노트북과 기타 잡동사니를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침대 옆에 자리를 잡는다. 언젠가 남편은 말했다. 내가 게임을 하더라도 네가 꼭 옆에 있으면 좋겠어.
서로가 시야에서 안 보이면 불안해지는 성향들인지라, 아무래도 우리 부부는 따로 또 같이는 놀 수 있어도 따로 또 따로는 안 될 것 같다. 그래도 가끔, 다섯 번에 한 번쯤은 온전히 나와 술과 책, 나와 술과 웹툰만 있는 휴일을 시도해 봐야지.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