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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웹소설에 '첫 댓글'이 달렸어!

독자들이 주는 힘

by 다롬

웹소설 세계에 들어서기로 작정하고, 무료연재 플랫폼에 초반 몇 화를 업로드 한 어느 날,


한 번을 울리지 않고 그저 고요함을 유지하던 알림창에 드디어 '1'이라는 빨간색 숫자가 반짝, 떴다. 무심코 그걸 확인했을 때 나는 길거리에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급격히 들뜨는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다. 분명 댓글일 텐데, 댓글일 텐데···. 휴대폰 화면을 기웃거리는 손끝은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처음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세계관, 내가 만들어낸 캐릭터들과 그들이 뛰어노는 스토리 등등으로 이루어진 '소설' 형식의 글을 세상에 내보인 것은. 유일한 독자였던 남편 외에 다른 누군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철저한 익명의 누군가가 나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게다가 웹소설은 '필명'을 썼다.



출간했던 에세이나 블로그, 브런치 글은 '이다희' 내 실명 혹은 '다롬'이라는 있으나 마나 한 별명으로 하기에 꾸준히 내 글을 봐주시는 원독자님들이 있으시고, 그래서 한결같은 응원을 받고 소통을 이어왔다. '글' 자체가 어떻든 간에 반응의 큰 변수는 거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필명을 쓰는 웹소설은 아예 다른 판이 될 것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웹소설계에서는 완전한 신인. 고로, 오로지 '글' 자체로만 승부를 보는 싸움이었다. 혹여 내가 기라도 죽을까 눈치를 살피며 '일단, 재밌어. 재밌기는 해.'라는 피드백을 깔고 가는 남편과는 달리 회칼처럼 날카로운 평가를 받으리라.



무지성 비난만 아니면 돼. 좋은 말이 아니라 비판이어도 상관없어. 반년 넘게 혼자 벽보고 쓰면서 얼마나 고독했나. 다른 이들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는 내 소설의 매력도나 작품성 등등이 어떤지 얼마나 궁금했나. 그러니 다 받아들일 수 있어. 그 어떤 댓글이든···!



인도 한복판에서 의도치 않게 길막을 하며 5분 동안 스스로를 달랬다. 비판도 괜찮다 했지만 사실 깊은 속내로는 칭찬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혹시라도 부정적인 댓글일까봐 나는 검지로 알림 표시를 콕 누르면서 동시에 화면을 가렸다.



···

···

···

끼야읏!



몇 초 후, 에라 모르겠다며 손을 확 치우고 현실을 마주했다. 누가 뭐래도 난 내 소설 좋아해! 별안간 당당한 태도를 뽐내듯 눈머리 근육을 넓히며 동공을 크게 키웠다. 어떤 반응도 의연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장군의 기개와도 같았다. 그리고 시야에는 댓글이 잡혔다. 그런데···.



어? 재밌어요.


어? 재밌어요.

어? 재밌어요.

어? 재밌어요.



어? 재밌···으시대!



씰룩, 씰룩. 억센 힘을 주고 있던 이목구비에 긴장이 풀리고, 이내 숨길 수 없는 미소 따위가 입가에 경련하듯 얹어졌다. 재, 재밌나···? 정···말···? 무려 '1화'에 달린 그 댓글을 한참이나 뚫어져라 응시했다. 폰 화면이 뚫릴 듯 내 눈빛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한껏 넓혀진 콧구멍에서는 흥분이 섞인 뜨거운 콧김도 부르르 새어 나왔다.



'···재밌으신가봐!'



지인이나 친구나 가족 등등은 절대 아니었다. 웹소설은 남편 제외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진짜 정말 모르는 분이었다. 모르는 분이, 내 소설이 재밌다고 하셨다!



얼굴도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익명의 독자님을 향해 극존칭을 쓰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봄과 여름 사이의 청명한 하늘. 지금 어렴풋한 설렘과 희망이 뭉개뭉개 떠다니는 나의 이 일렁이는 마음으로 퐁실퐁실한 구름을 만들어 저 깨끗한 하늘에 올려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이거야. 난 이런 게 필요했던 거야.'



나는 버티는 힘이 필요했다. 크든 작든 그 어떤 기회라도 얻고 싶은데, 실낱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고. 어떻게 찾은 내 결의 일인데 절대 포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혼자 쓰고, 혼자 걱정하고, 혼자 견디기는 어려웠다. 힘이 필요했다. 스스로 만든 성 안에서 끝내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견딜 수 있는 그런 힘.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댓글, 하트, 관작(관심작품),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의 반응이 바로 나에게 필요했던 그 '버티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웹소설 공모전'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아니, 발견했어도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었던, 그런 대단한 독자의 힘.



내 글이 재밌다는 말이, 나는 너무도 듣고 싶었던 모양이더라. '어? 재밌어요.' 그 댓글 하나에 하루 종일 방방 뛰었고, 또 키보드 위에서는 열 개의 손가락이 유난히 신명나게 춤을 추었으니까.



첫 댓글을 받은 그날, 나는 메일을 보냈다. '발신인'은 공개되어 있는 나의 원래 비즈니스 메일 계정, '수신자'는 웹소설 필명으로 만든, 아직은 텅텅 빈 새 이메일 계정.



1.png ㅎ..ㅎ..나라도 나를 응원하자.


당당해져! 한분이라도 재밌으시면 나는 잘하고 있는 거다. 속에서부터 차오른 동기부여를 어쩌지 못해 이런 걸 보내버렸다. 그리고 다시 읽으며 괜히 혼자 울컥해서는 소매로 슥 눈물을 훔치는 별 요란한 주책을 떨기도 했다. 그만큼 감동이었던 첫 댓글이었다.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비축분 없이 시작한 웹소설 연재는 지옥의 라이브(매일 1화씩 쓰며 바로바로 업로드하는 식)가 될 뻔했다가, 다행히 격일 연재를 유지하며 세이브 원고를 충분히 만들었다. 오늘 업로드 1편, 오늘 비축분 2편. 이런 식으로 진행하다보니 연재중단이나 연재 텀이 길어지지 않는 여유도 생겼다. 아침드라마 같은 '후킹' 역시, 이제 어느 정도 익힌 듯도 하고.



어지러운 시행착오를 거쳐 나름의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독자님들도 늘어나고, 반응 역시 괜찮았다.



개재밌어요. 엉엉.


전개될 내용이나 반전 추측이 주를 이루던 내 웹소설 댓글창에서는 언젠가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댓글을 봤을 때, 명치에서부터 폭발적으로 끓어올라 관자놀이에서 번쩍번쩍하던 희열을.



그냥 재밌다도 아니고, '개'재밌어요 라니. 여한이 없었다.



그렇게 웹소설 연재 전과 후의 내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글에 대한 독자님들의 반응에서 오는 도파민으로 종일 기분이 좋았다가 또 가끔은 익숙한 불안함이 찾아오기도 하고. 그래도 이제 내 글이 '재미없나?' 이런 의심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달까. 그렇게 독자님들이 주는 힘으로 종일 노트북만 붙잡고 있는 고독한 나날들을 견뎠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시나리오 한 편을 막 끝낸 후, 습관처럼 메일함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나에게 보낸 응원의 메일 외에 당연히 텅 비어있어야 할 웹소설 계정 메일함에 알림이 떠 있었다.



출판사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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