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39] 때로는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D-239. Sentence
때로는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느낌의 시작
때로는, 그저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언가를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눈에 담기는 형상과 색채만으로 조용히 위로받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 그림이든, 공간이든, 사물이든, 혹은 사람의 표정이든—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긴장이 스르르 풀려나간다.
어릴 적엔 그저 ‘예쁘다’는 감상으로 멈췄던 장면들이,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름다움은 기능이 아니라 감각이며, 그 자체로 삶을 지탱해주는 조용한 언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다.
마음의 흐름
전공 때문일까, 나는 시각적인 것에 유난히 민감하다. 대학 시절, 학부 지도교수님께서 수업 중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써보아야, 그보다 더 나은 것을 디자인할 수 있다.”
교수님은 집에서 사용할 커피머신을 아내분께 부탁드렸는데, 가격이 싸서 골랐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셨다. 디자인과 교수인 자신에게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말씀이었고, 그 말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강의 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좋은 필통을 써봐야 더 좋은 필통을 디자인할 수 있다.” 그 말은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 살아 있다. 내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의 질이 곧 내가 만드는 것의 수준이 된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바쁜 프로젝트와 강의 일정 속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방학을 방학답게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예전엔 전시도 다니고, 편집숍도 탐방하고, 흥미로운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도 구경하며 눈과 마음을 자극받곤 했다. 그렇게 보고, 느끼고, 몰입하는 시간들이 내게는 ‘일’을 위한 중요한 연료였다.
요즘은 방학을 맞이한 두 아들과 일상의 전쟁을 치르며, 정신없이 하루를 버티는 중이다. 가끔 미술관에 들어서면, 조용한 공간 안에서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며 비로소 온전한 ‘아름다움’에 집중하게 된다. 그 시간이, 내 안의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다. 나는 주로 카페에서 일한다. 낯선 공간에서의 작업은 내게 기분 전환이자 소소한 취미였다. 그러나 방학이 시작되자,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동네 카페나 스타벅스뿐이다. 아이들을 돌볼 수 있어야 하니까. 효율적인 선택이지만, 취미 하나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이 따라온다. 자극이 필요하다. 디자이너로 직접 활동하진 않지만, 디자인 분야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나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 간절하다. 디자인경영을 전공하던 대학원 시절, 공기업에 합격한 나에게 트렌드를 가르쳐주시던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디자인하는 사람은 공기업에 4년 이상 머무르면 안 돼요. 고착되고, 안주하게 되니까.” 그 말은 입사한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내 몸으로 증명되었고, 결국 나는 4년 반을 다닌 후 결혼과 함께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회사를 떠났다.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디자인은 그저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빼놓고 디자인을 말할 수는 없다. 가끔 상상한다. 두 아들이 다 자라 자기 삶을 살아갈 때쯤이면, 내 취향과 감각이 온전히 담긴 집을 꾸며보고 싶다고. 그건 단지 예쁜 인테리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공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편안한 일상을 꿈꾼다. 그 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살인적인 무더위를 견디고, 전쟁 같은 하루를 버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내 안의 한 줄
아름다움은, 내 감각을 다시 숨 쉬게 한다.
**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