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말고, 상식적인 사람.

[D-244] 착한사람을 그만두면 인생이 편해진다.

by Mooon

D-244. Sentence

착한사람을 그만두면 인생이 편해진다.


@착한사람을 그만두면 인생이 편해진다._데이먼 자하리아데스

느낌의 시작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무서웠고, 불편했고, 때로는 괴로웠다. 그래서 어지간한 상황에는 싫은 소리를 꺼내는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내 의견을 말하기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조용히 묻혀가는 방식으로 나를 숨겼다. 나를 숨기면서도, 괴로웠다. 그렇게 해서라도 좋은 사람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애초에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일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꼭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사람이 사람에게 착하다는 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상대적인지.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말이 누군가에겐 무례가 되기도 하고, 내가 배려라 생각한 행동이 누군가에겐 간섭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착한 사람이 되려 애썼고, 그 애씀은 어느새 나를 괴롭히는 방식이 되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오늘 그 사실을, 다시 마주했다.



마음의 흐름


전교인 여름수련회 첫날. 남해로 향하는 길, 고속도로 한가운데 휴게소에 잠시 멈췄을 때였다. 편의점 옆에 세워진 책꽂이에서 낯익은 제목 하나가 시선을 붙들었다. “착한 사람을 그만두면 인생이 편해진다.” 데이먼 자하리아데스가 쓴 책. 그래,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상식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상식을 찾기 힘든 세상 속에서 상식적으로 산다는 건 오히려 치열한 일이다. 비상식이 상식처럼 여겨지는 세상.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 말하기 어려운 지금.


나는 두 아들에게 무엇이 상식인지 알려주고 싶다. 무엇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기본인지 몸으로 보여주고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안한 삶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 편해지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만큼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지금은, 조금 불편하게, 조금 귀찮게 살기로 한다. 혼자 밥을 먹는 아이들이 아닌, 함께 밥을 나누며 대화하는 아이들이 자라나길 바라며. 예전에 아이들과 외식하러 식당에 가면 좌우를 자연스럽게 둘러보게 되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마트폰 속 만화영상에 몰두한 채 엄마 아빠가 입에 음식을 떠넣어주는 모습을 무심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느 날, 첫째가 나에게 물었다. “왜 우리집은 영상 안 보여줘요?” “왜 밥 먹을 때 다른 집 애들은 다 영상 보는데 엄마 아빠는 안 보여줘요?”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든 집에는 각자의 규칙이 있고, 우리집의 규칙은 밥을 먹는 시간에는 밥을 먹는 거야.” 밥을 먹을 땐, 밥을 먹는 것. 식사시간엔 서로의 눈을 보고 말을 주고받는 것. 그게 상식이다. 자기 밥은 자기가 떠먹는 것. 자기 가방은 자기가 드는 것.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상식이다.


하교 시간, 아이들의 책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엄마들의 모습을 자주 본다. 그 장면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가방을 들어주는 대신 이야기를 걸어주고 싶다. 가끔 친정엄마가 하교를 도와주실 때면 둘째의 책가방을 들어주시려 한다. 그럴 때마다 부탁드린다. “엄마, 너무 무겁게 느껴지시면 안에 있는 물통이나 가방을 빼서 들어주세요. 가방 자체는 아이가 들게 해주세요.”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착한 사람이 되는 법이 아니다. 중심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법이다. 내가 내 삶의 기준을 갖고, 그 기준을 매일 확인하고, 때로는 조정하며 살아가는 일. 그건 귀찮고 불편한 일이지만 그럴수록 단단해진다는 걸 엄마가 먼저 보여주고 싶다.


남해에서의 첫날 밤. 아직은, 내가 이렇게 떠나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일상을 떠나 꿈처럼 펼쳐진 이 시간이 상식을 다시 확인하고, 그 상식을 지키기 위한 중심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내 안의 한 줄

착한 사람보다는, 상식을 지키는 사람이길 원한다.


**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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