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벼워진다.

[D-248]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by Mooon

D-248. Sentence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philosophy_ryo



느낌의 시작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제목을 료 대표의 인스타 피드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그 한 문장에서 본능적으로 멈춰섰다.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 깊은 곳의 명령처럼.


부인한다는 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무리 해명하고 설명해봐야 결국은 내 마음속 응어리 하나, 달라지는 것이 없다. “내 탓이 아니었고”, “그때 그 상황이 그랬고”,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다”는 모든 말들이, 나에게조차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마음의 흐름


며칠 전부터 사춘기 아들의 눈빛에 어둠이 깔려 있다. 말을 걸기만 하면 시비처럼 돌아오는 말투를 참아내려 해도 쉽지 않다.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고, 포장하려 해도 들키는 그런 상태. 두 달 방학 동안 두 편의 논문을 제출하고, 퍼스널 브랜딩 관련 책도 섭렵하고, 하반기 책 원고도 아이디어로 정리하고, 8월 말엔 퍼스널 브랜딩 제안서까지 만들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의 나는 매일 11시 반에 늘봄을 마치고 둘째와 함께 서울의 여러 도서관을 떠돌며 1시간 집중조차 어려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은 손기정 어린이도서관에 다녀왔다. “이제 도서관 가기 싫어” 말하는 둘째를 달래며 차 안에서 유부초밥을 먹이고, 좋아하는 라디오를 틀어주었다. 책 찾는 방법을 묻고, 화장실을 찾고, 키보드에 ‘떻’ 자를 어떻게 치는지 물어보는 아이 옆에서 오늘도 나는 컴퓨터 앞에 1시간도 채 앉아 있지 못했다.


오후엔 학원을 마친 첫째에게 전화가 왔다. “게임해도 돼요?” 할 일을 미루고 게임을 하려는 아이, 일도 하지 못했고, 둘째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 내 오늘에 갑자기 참기 힘든 답답함이 가슴을 훅 밀어올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을 외우며 마음속 쓰나미를 잠재우려 애썼다. ‘답답하다고, 머리가 아프다고, 불평한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그 어떤 것도 부인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 두 아들, 이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런데 이제야 깨닫는다. 그건 ‘욕심’이었음을. 둘째와 온전히 보내고 싶었으나, 그것조차도 쉽지 않음을. 첫째에겐 또 같은 방식으로 화내고, 굳은 얼굴로 학원에 보낸 것이 마음에 남는다. 정답은 없다. 그러니 지금을 받아들이고, 굳어진 내 온몸의 근육을 말랑하게 만들자.



내 안의 한 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벼워진다.

--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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