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54]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지?
D-254. Sentence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지?
느낌의 시작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 평온하고 평탄하며 안온한 나날만 계속되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 혹시 그런 인생이 있다면, 우리는 그 일상을 깊이 감사하며 늘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오늘은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장마 때 내리지 못한 비를 한꺼번에 쏟아붓는 것처럼 강하게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린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물줄기는 거세고 무겁게 도로를 때렸다. 매일 다니는 길은 바닥에서 물이 역류해 바퀴가 반쯤 잠길 만큼 잠겼다. 오후, 수학학원에 가는 아들을 데려다주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불광천 산책로가 완전히 물에 잠긴 것을 보고 아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벌써 세 번째 비 피해 안전문자가 왔어요.” 놀란 듯 말하는 아들에게, 나는 사람은 비를 내리게도 멈추게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니 교만해서도, 오만해서도 안 된다고.
마음의 흐름
“만약 우리 집이 반지하여서,
폭우로 네 방이 통째로 잠겨버린다면 어떨 것 같아?”
내 질문에 아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답 대신,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서 결핍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매일 따뜻한 집에서, 먹고 싶은 것 먹고, 갖고 싶은 것 가지며, 방학마다 해외여행 다니는 친구들은 과연 억수로 비가 쏟아질 때 무슨 생각을 할까 물으니, 아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 생각 없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맞다. 사람은 부하든 가난하든, 살다 보면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결핍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고통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풀어내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 TV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어린 시절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불쑥 내 앞에 찾아온다. 갑자기 시형부 생각이 났다. 남편의 누님은 우리가 결혼한 지 1년쯤 뒤 결혼하셨고, 비슷한 시기에 첫째를 가졌다. 첫째가 네 살이 되던 해, 그러니까 10년 전이었다. 5월의 어느 주말, 교회 야유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남편이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굳어졌다. 누님의 남편분이 백혈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불과 5개월 후, 그 해 10월,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돌아가시기 직전, 중환자실 면회를 마치고 나오시던 형님의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두 아들과 함께 물놀이하러 가기로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하냐며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던 그 모습. 장례식장에서 뛰놀던 첫째 조카의 해맑은 웃음과, 등에 둘째 조카를 업은 채 눈물을 참던 형님의 모습.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별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형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살다 보면 속수무책으로 별일을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무게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예전에는 너무 아파서 꺼내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웃으며 하게 되고, 예전엔 온 힘을 다해 도망가고 싶었던 일을 이제는 온 힘을 다해 맞서고 싶은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얼마 전, 어렵사리 예약해둔 전시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오늘, 운전이 어려울 정도로 거센 비가 쏟아졌다. 잠시 망설이던 찰나, 어제 대학원 언니에게서 프로젝트 제안연락이 와서 갑자기 동네 스타벅스에서 대표님과 전화미팅을 갖게 되었다. 전시는 결국 포기했다.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 이사님의 강연에 신청해 두었는데, 오늘오후 당첨됐다는 문자가 왔다. 그런데 둘째를 맡길 방법이 없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머리를 굴려봐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일상 속에서, 문득 창밖을 보니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프로젝트 전화 미팅을 마치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둘째와 재미없는 보드게임을 해주고 있는 엄마가 계시다는 것도 다행이었다. 하루의 끝에서, 다행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고 마음속에서 울렸다.
내 안의 한 줄
별일은 지나가고, 다행은 남는다.
__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