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며 지내는 오늘은 어때.

[D-259] 좋은 엄마말고, 행복한 엄마가 되어주세요.

by Mooon

D-259. Sentence

좋은 엄마말고, 행복한 엄마가 되어주세요.


IMG_9614.jpg @ruar_Coffeebar 망원, 커피받침으로 사용된 책 페이지.



느낌의 시작


“좋은 엄마가 되는 것보다,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 오늘 루아르 망원에서 라떼 밑에 깔린 책 페이지에서 마주한 문장이다. 순간 마음이 멈췄다. 늘 좋은 엄마, 좋은 선생,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았지만 정작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은 드물었다.



마음의 흐름


늘 해야 할 일들을 먼저 끝내고 나서야 오후나 저녁, 혹은 밤늦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브런치 글을 쓰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일보다 브런치 글을 먼저 시작했다. 루틴을 놓치지 않고 마음을 다잡고 싶어서였다. 살다 보면 유독 힘든 하루가 있다. 같은 일, 같은 말인데도 유독 벅차고, 받아들이기 힘든 날. 신기한 건 그 원인이 상황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6년 동안 매주 새벽 기차를 타고 조치원으로 수업을 다녔는데, 이번 학기부터는 서울 소재의 새로운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9월부터는 AI 도입으로 인한 디자인 프로세스의 변화라는 주제로 연구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꼭 알아야 하고, 다룰 만한 흥미로운 주제라 감사했다. 또 매달 열리는 데스커라운지 ‘워크투게더 워크샵’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각 분야에서 깊이를 인정받은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듣고 함께 워크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오래 전부터 굴뚝같았지만, 경쟁률도 높았고, 무엇보다 저녁 4시간이라는 절대 시간이 두 아이를 둔 엄마에겐 쉽지 않았다. 선뜻 용기를 내기 어려웠던 이유다. 그런데 이번엔 ‘일단 되고 생각하자’라는 마음으로 신청했고, 감사하게도 참여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만 문제는 둘째 아들의 케어였다. 워크샵 날은 둘째의 독서 선생님이 집에 오는 날이라 마땅히 맡길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친구가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했고, 독서 수업은 보강을 하기로 하면서 겨우 해결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내 마음은 왜 그랬을까. 첫째가 개학하는 날이라 방학 때보다 일찍 깨웠는데, 돌아온 건 반항아의 정석 같은 반응이었다. 마음이 불편하게 첫째를 보냈다. 방학 중인 둘째는 조금 늦게 늘봄수업에 보냈는데, 둘째와 학교 앞에서 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불 속으로 그냥 숨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꾸 가라앉으려는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불광천을 뛰었다. 둘째 하교시간에 맞물려 엄마가 오셨고, 둘째는 엄마께 맡겼다. 요즘 자주 가던 동네 스타벅스로는 도저히 가고 싶지 않았다. 찜찜한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어 머리를 굴리다 좋아하는 루아르 망원으로 향했고, 지금 이렇게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다시 돌아보니, 아침의 무거움은 첫째의 반항기 때문이었을까. 요즘 힘들어하시는 엄마가 오시는 날이라, 그 마음을 고스란히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틈만 나면 눕고 싶을 만큼 따라주지 않는 체력 때문이었을까. 루아르 망원은 커피를 주문하면 책 페이지를 뜯어 컵받침으로 내어준다. 오늘 예쁘고 정교하게 그려진 라떼아트를 머금은 라떼 밑에 깔린 책 페이지는 ‘엄마’에 대한 글이었다.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좋은 사람, 좋은 친구, 좋은 엄마, 좋은 선생, 좋은 아내이기 전에 나 스스로 여유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두 아들을 가르친다는 명목 아래 날카롭고 예민하게 표출되는 버거움 말고, 내가 먼저 나를 진정시키는 여유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급하게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업하지 않기로 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를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그냥 조금 더 여유롭게 지내보기로 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책을 읽어볼까. 아니면 세상 처음 시도하는 멍때리기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어쨌든 오늘은, 조금 워워 하자.



내 안의 한 줄

좋은 엄마 말고, 웃는 내가 먼저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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